나주석기자
"우리도 발렌베리재단 같은 공익법인 하나 키워봐야지 않겠어요."
박수영 국민의힘 의원은 최근 아시아경제와 인터뷰에서 기업들이 공익법인에 주식을 출연하면 면세 한도를 대폭 확대하는 내용의 상속세 및 증여세법(상증세법) 개정안을 마련하고 입법 시기를 조율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회에서는 그동안 이와 관련한 입법 시도가 있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박 의원은 기존의 입법 움직임을 뛰어넘는 큰 폭의 안을 제시했다. 이른바 대기업으로 알려진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상출집단)이라 하더라도 의결권을 제한할 경우 최대 15%까지 공익법인에 출연해도 면세 혜택을 부여하고, 의결권 등을 행사하지 않는 경우에는 주식의 50%까지 공익법인에 출연해도 증여세를 부과하지 않는 내용이 담겼다. 공익법인의 활동 영역도 사회복지나 장학 등 영역을 넘어 과학기술이나 학문, 예술 지원 등으로 확대하는 방향을 추진하고 있다.
공정거래법 개정으로 불식됐다고는 하지만 규제 완화의 장애물이었던 우회지배 우려와 관련해 박 의원은 "기업 우회 지배 우려가 발생하더라도, 세금 징수를 통해 재정을 확보하는 게 목적인 상증세법이 아니라 기업 우회지배 차단을 목적으로 하는 공정거래법을 개정해야 할 일"이라고 밝혔다. 우회지배 문제는 공정거래법 차원에서 고민할 문제지 상증세로 막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보수의 싱크탱크인 한반도선진화재단의 대표도 지냈던 박 의원은 국가가 할 법한 일들을 해내는 스웨덴의 발렌베리재단을 보면서, 우리 사회에도 규모를 갖춘 공익법인이 출현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졌다. 기획재정위원회의 여당 간사이자 실질적 세법 심사를 담당하는 조세소위의 위원장을 맡은 박 의원은 조세소위가 본격적으로 가동하기 전에 법안 발의에 나설 계획이다.
공익법인 관련해 준비 중인 법안의 내용은?
간단히 말하면 기업들이 공익법인에 주식을 출연하는 것과 관련해 공정거래법과 상증세법의 소유 한도 체계를 일원화하는 것이다. 현재 상증세법은 공정거래법상 의결권 제한이 없던 시기에 기업 우회지배 방지 목적으로 규정된 면제 한도를 그대로 두고 있다. 특히 상출집단의 경우 의결권 행사 여부와 무관하게 면제 한도가 5%에 불과하다. 이미 공정거래법은 개정이 됐다. 공익법인 주식 출연과 관련해 우회지배나 우회 상속, 이런 것에 대한 우려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공정거래법이 바뀌었으면 상증세법도 바뀌었어야 했다. 기업들이 의결권 행사를 하지 않고 좋은 일 하겠다는데 나라가 왜 그것을 막는가.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공정거래법에선 의결권을 제한하는 경우 15%까지 주식을 출연할 수 있도록 한 만큼, 상증세 역시 15%까지 면세 규정을 두자는 것이다. 의결권을 일절 행사하지 않고 공익목적에 부합한다면 50%까지 면세하는 내용도 담으려고 한다. 다만 일반공익법인과 달리 상출집단의 경우 의결권을 그대로 유지한다면 현재와 같이 5%만 면세를 허용하되, 공정거래법에 따라 제한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할 경우는 15%로, 의결권을 행사하지 않을 경우는 50%까지 면세를 적용하는 안이다. 이외에 공익법인도 발렌베리처럼 기초 교육이나 과학기술도 할 수 있지만, 문화나 예술 이런 부문에도 기여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문화 부문에 대해서도 기부를 할 수 있게 된다면 국민들이 접하는 문화의 질도 달라지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런 것들도 가능하도록 공익법인의 역할 범위를 자선·장학·사회복지 외에 학문 증진에서부터 문화예술 지원까지 담은 공익신탁법 수준으로 넓히려고 한다.
공익법인을 통한 우회지배 우려가 있는 사안이다. 이런 이유로 정부도 신중론을 펴왔지 않나.
그동안 상출집단 공익법인에 대하여 주식 의결권은 100% 보유한 경우나 상장사로서 적대적 M&A에 대한 방어가 필요한 경우 등 매우 예외적인 상황에만 의결권 허용한다. 공정거래법은 공익법인이 총수 일가 지배력 유지 확대에 활용되는 것을 막고 있다. 5% 지분을 넘으면 증여세를 적용하는 규제는 1994년 도입됐는데 규제 수위가 갈수록 높아졌다. 만일 기업 우회 지배 우려가 발생하더라도, 세금 징수를 통해 재정을 확보하는 게 목적인 상증세법이 아니라 기업 우회지배 차단을 목적으로 하는 공정거래법을 개정해야 할 일이다. 공정거래법에서 명시한 내부거래의 규모 및 내용 등에 대한 이사회 의결 및 공시의무 등이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지 사후관리도 지속해야 한다.
주식 출연이 늘더라도 실제 공익적 활용을 늘리기 위한 장치가 마련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는 출연재산가액 1% 이상 직접 공익목적 사업에 사용해야 하고, 운용소득에 대해서는 대통령령으로 정한 일정 비율을 곱해서 직접 공익목적 사업에 사용하도록 하고 있다. 이런 규정이 잘 지켜지는지 검토가 필요하다. 기업이 자의적 배분에 따라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면, 공익사업에 대한 수요가 높은 분야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기 위해 일정 비율 이상을 재출연하도록 의무를 부과하는 안을 검토할 수도 있다. 이외에도 사후 대책 부분은 정부가 안을 마련해 논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법안을 발의하려는 이유가 궁금하다
예전에 한반도선진화재단 대표를 하면서 이 문제에 대해 관심이 많았었다. 당시 스웨덴에 대한 관심이 높았는데, 이때 발렌베리 재단 관련 내용을 접하고 깜짝 놀랐다. 홈페이지에서 이들이 용역을 준 걸 보니까 국가기관이 할 법한 일들이었다. 이들은 주식 출연 등에 제한이 없다 보니까 가능하다. 우리에게도 비슷한 공익법인이 있으면 이런 부분을 메워줄 수 있다. 스웨덴은 노벨상을 주고 좋은 주제이면 발렌베리 재단에서 연구를 더 가속하게 하고 기업하고 연결한다. 국가 발전을 위해서 정말 좋은 기회가 아닌가 싶다. 그리고 제 주변에 기업을 경영하시는 분들을 보면 가진 주식 절반은 자식 주더라도 절반은 공익을 위해 기부하고 싶다는 분들이 있다. 그런데 이들은 세금 때문에 결심을 못 한다. 공무원 30년 해봤지만, 국가가 구석구석까지 다 역할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공익법인 등의 역할 확대를 위해 고민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