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수연기자
김진영기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27일(현지시간) 이번 대선 첫 후보 TV 토론에서 4년 만에 다시 맞붙었다. 오는 11월 대선을 앞두고 두 후보자 지지율이 초박빙인 가운데 90분간 1대 1로 맞붙은 이번 토론은 향후 판세에 큰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두 후보는 사전 규칙에 따라 90분간 펜과 종이, 물 한 병만 들고 맞붙었다. 미리 작성한 자료를 지참하거나, 캠프 참모들과 소통은 금지돼있다. 양측은 스튜디오 입장 후 악수나 인사 없이 각자 연단에 서며 토론이 시작되기 전부터 신경전을 벌였다. 토론 중에도 '중범죄자', '최악의 대통령', '끔찍한 일' 등 거센 언사가 오갔다.
첫 주제는 경제다. 바이든 대통령은 토론이 시작되자 트럼프 전 대통령의 경제 정책에 날을 세웠다. 그는 "미국 경제는 엉망이었다. 자유낙하 중이었다"며 "코로나19 팬데믹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많은 사람이 죽었다"고 말했다.
또 "일자리가 없었으며 실업률이 15%까지 올라갔다"며 80만개 제조업 일자리 창출 등 임기 내 성과를 부각했다. 현재 미국 내 심각한 경제 문제로 부각되는 인플레이션에 대해선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일부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트럼프 전 대통령은 "우리는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경제를 갖고 있었다"며 "그(바이든 대통령)가 만든 유일한 일자리는 불법 이민자를 위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또 "그는 미국의 인플레이션에 매우 형편없이 대응했다. 이는 절대적으로 우리나라를 죽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가장 위대한 경제였다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발언에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그뿐"이라며 "미국 역사상 가장 큰 감세를 했으며, 임기 중 더 큰 재정적자를 만들었다"고 받아쳤다.
미국 유권자들의 주요 관심사인 불법 이민 문제에서도 치열하게 대립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바이든 정부에서 더 많은 이민자가 유입돼 범죄가 증가하고 있다며 "더이상 국경이 없기 때문에 그들이 뉴욕, 캘리포니아 등 미국의 모든 주에서 미국 시민을 죽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자신의 집권 시기엔 "역사상 가장 안전한 국경을 가졌다"며 "(현재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수의 테러리스트가 지금 바로 미국에 들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최근 실시한 행정 조치를 언급하며 "지금은 불법으로 국경을 넘는 사람이 40%나 줄었다. 그(트럼프 전 대통령)가 백악관을 떠났을 때보다 더 나아졌다"며 반박했다. 또 "트럼프 전 대통령 당시 아기를 엄마로부터 분리해 철창에 가두는 상황에 처했다. 그것은 옳은 일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낙태권도 이번 대선 토론의 주요 주제 중 하나였다. 바이든 대통령은 2022년 연방 대법원이 여성의 낙태 권리를 보장하는 '로 대 웨이드' 판결을 폐기하도록 한 사실을 거론하며 "끔찍한 일"이라고 말했다. 당시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뒤집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대법관 3인이 트럼프 전 대통령 때 임명된 것을 지적한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재선에 성공할 경우 로 대 웨이드 판결에 명시된 낙태 관련 조항을 연방법으로 성문화하겠다고 밝혔다. 미국 전역에서 낙태를 합법화하겠다는 것이다. 반면 트럼프 전 대통령은 예외적인 경우는 허용하되, 주(州)별로 결정하자는 입장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등 국제 정세도 거론됐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바이든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2억달러 이상을 지원했다며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미국에 올 때마다 600억달러를 받아 간다"고 지적했다. 또 자신이 대통령이라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취임하기 전에 당선인 신분으로 푸틴과 젤렌스키 간 전쟁을 끝내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구체적인 시행 방안은 언급하지 않았지만, 러시아가 점령지를 소유하고 우크라이나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을 포기하면 전쟁을 끝내겠다는 푸틴 대통령의 조건에 대해선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푸틴은 전쟁범죄자"라며 "이 남자(트럼프 전 대통령)는 나토에서 탈퇴하고 싶어한다. 난 이처럼 어리석은 소리를 들은 적 없다"고 응수했다. 이어 "한국 등 전 세계 50개 국가가 우크라이나를 지지하게 했다"고 말했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 대해서는 자신이 제시한 3단계 휴전안이 최선책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바이든 대통령의 중동 정책을 비판하며 "팔레스타인 같다"고 했다.
이번 대선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주요 공약 중 하나인 10% 보편 관세 부과에 대해서도 설전이 오갔다. 10% 보편 관세 부과가 물가 상승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할 것이냐는 사회자의 질문에 트럼프 전 대통령은 "가격을 더 높이지 않을 것"이라며 "(관세는) 수년간 우리를 벗겨 먹던 중국 등에 공정함을 가져올 것이다"라고 말했다.
반면 바이든 대통령은 "트럼프는 관세를 추가해 중산층 세금을 올릴 것"이라며 "이는 연평균 2500달러 이상을 더 지불하게 한다"고 지적했다.
환경 문제에 대해서도 대립했다. 기후 위기에 대한 정책을 묻는 질문에 트럼프 전 대통령은 "완전히 깨끗한 물과 공기를 원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가졌다"고 말했다.
이에 바이든 대통령은 "도대체 어디에 있었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또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임 기간 파리 기후변화 협정에서 탈퇴한 것을 거론하며 "그는 우리가 한 일을 되돌리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안 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협정은 우리에게 1조달러를 부담시키는데 중국, 러시아, 인도는 아무것도 안 한다. 나는 돈을 낭비하고 싶지 않아서 탈퇴했다"고 말했다. 또 바이든 대통령의 환경 정책을 "새 녹색 사기"라고 비판했다.
상대 후보를 향한 거센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발언 순서가 아닌 후보의 마이크는 꺼져서 상대방의 말을 끊는 일은 없었지만, 면전에서 '최악의 대통령' 등 공격적 발언을 하며 난타전을 이어갔다.
바이든 대통령은 트럼프 전 대통령을 '유죄 평결을 받은 중범죄자'라며 '성추행 입막음 돈' 의혹 등 사법 리스크를 부각했다. 전직 성인 영화 배우 스토미 대니얼스가 트럼프 전 대통령이 멜라니아 여사와 결혼했을 시기 자신과 성관계를 가졌다고 주장한 것을 언급하며 "아내가 임신한 사이 포르노 스타와 성관계를 했다. 길고양이의 도덕성을 갖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바이든 대통령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패배하면 이번 대선 결과를 받아들일지 의심스럽다며 '투덜이(whiner)'라고 부르기도 했다. 과거 2020년 대선에 불복해 1·6 의회 폭동 사태를 주도했다고 지적하는 것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민자들은 고급 호텔에서 생활하지만 참전 용사들은 거리에 나와 있다며 바이든 대통령이 참전 용사를 홀대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바이든 대통령은 거짓말이라고 반박하며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임 기간 미군 전사자를 '패배자'(loser) 등으로 언급한 것을 언급했다.
그러자 트럼프 전 대통령은 바이든 대통령의 차남 헌터 바이든이 총기 불법 소지 혐의로 유죄 평결을 받은 것을 지적하며 "끔찍한 일을 저질렀다"고 받아쳤다. 또 자신의 사법 리스크가 정치적 공격이라며 "내가 기소된 것은 바이든의 정적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고령 논란으로도 두 후보자는 맞붙었다. 올해 81세인 바이든 대통령은 "이 사람(트럼프 전 대통령)은 나보다 3살 어리지만 훨씬 능력이 떨어진다"며 "나는 한국에 가서 삼성이 수십억달러를 투자하도록 설득했다"고 강조했다. 또 자신은 운전면허도 있고 건강에 이상이 없다고 전했다.
'골프'를 둘러싸고 때아닌 설전도 오갔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자신의 건강을 과시하며 "나는 두 번이나 골프 클럽 챔피언십에서 승리했다. 고령자 대상 대회가 아니었다"면서 바이든 대통령을 향해 "그는 골프공을 50야드도 못 친다"고 말했다. 그러자 바이든 대통령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만약 골프 가방을 직접 들고 다닐 수 있다면 기꺼이 골프를 치겠다"고 응수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자신에게 '대참사'를 남겼다고 말하며 토론을 끝냈다. 2기 행정부에선 "더 공정한 조세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며 "4만달러 이하 소득자들의 증세는 없을 것"이라고 트럼프 전 대통령의 부자 감세 정책과 대립각을 세웠다. 또 노인 처방약 비용이 2000달러를 넘지 않도록 하고, 세제 혜택을 제공해 육아를 지원하며,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겠다고 밝혔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바이든 정부를 지적하고 자신의 임기 동안 성과를 자랑하며 토론을 마무리했다. 바이든 대통령을 '불평하는 사람'이라 부르며 "규제를 철폐하겠다고 말만 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불법 이민자가 대거 유입되고, 아프가니스탄에서도 실책을 범했고,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발발하고 헤즈볼라가 기승을 부린다며 "나는 국방 개혁을 단행했고 역사상 최대 규모의 감세와 규제 삭감을 이뤄냈다. 바이든 대통령이 일자리를 늘릴 수 있었던 이유는 내가 일자리 규제를 삭감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