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원기자
"저희는 DNA 기술을 활용해 변형·편집·가공된 촬영물까지 수집할 수 있습니다. 변형되지 않는 인간의 '유전자'와 같은 정보를 토대로 불법 촬영물을 찾아냅니다."
디지털성범죄 피해는 확산과 유포가 이뤄지기 쉽다는 점에서 치명적이다. 이 때문에 온라인상 유포된 피해 영상·사진을 최대한 발견해 삭제하는 지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국내에서는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의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디성센터)가 큰 역할을 하고 있다. 2018년 개소한 이래 6년간 총 100만건이 넘는 불법촬영물을 삭제했다. 지난해에는 1년간 27만5520건의 영상물 삭제를 지원했다.
적은 인력으로 수십만 건의 지원 성과를 낸 배경에는 자체 구축한 'DNA 검색 기반 시스템'이 있다. 신보라 한국여성인권진흥원장은 "DNA 분석 프로그램은 PC 기반의 여타 프로그램보다도 불법촬영물 매칭률이 높은 핵심 시스템"이라며 "디성센터 직원들은 1년 365일 이 시스템을 들여다보며 삭제를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디성센터는 영상을 아무리 변형해도 남아있는 정보, DNA 기반의 '삭제지원시스템 2.0'을 구축해 불법영상물을 잡아내고 있다. 이때 DNA란 말 그대로 변하지 않는 인간의 유전자와 같은 의미다. 색상, 모션, 장면 전환, 특징점 등 정보를 담고 있다. 원본 영상이 흑백 처리, 잘려져 있거나 자막이 삽입된 등 편집된 영상까지 DNA를 통해 감지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디성센터는 이 DNA 기술로 특허를 받은 민간 업체와 함께 자체적인 삭제지원시스템을 만들어냈다.
해외 기관들은 DNA가 아닌 해시(HASH)를 이용해 영상을 검색한다. 해시는 영상의 길이, 파일 용량 등을 담은 값으로 인간에 비유하면 '지문'과 같다. 닳거나 훼손되면 '같은 지문'을 찾을 수 없듯이, 해시로는 해상도, 자막 등으로 변형된 촬영물을 찾아낼 수 없다.
삭제지원시스템이 딥페이크 성적합성물 등을 더욱 잘 감지할 수 있도록 기술을 고도화할 준비도 하고 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과 개발한 '얼굴 검색 시스템'을 시스템에 접목해 피해촬영물에서 동일한 얼굴을 찾아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현재 얼굴검색 시스템의 기술 개발은 마친 상태지만, 피해 지원에 적용할 수 있을 정도의 시스템 고도화를 위한 예산이 필요한 상황이다. 진흥원은 시스템 고도화를 위해 30억원의 추가 예산을 기획재정부에 요청할 방침이다.
디성센터는 삭제 지원 접수부터 상담까지 '삭제지원시스템'을 통해 전 과정을 처리한다. 시스템은 24시간 자동으로 310개 성인사이트에서 불법촬영물을 '크롤링'해 수집한다. 크롤링이란 웹페이지를 그대로 가져와 데이터를 추출하는 것을 의미한다. 피해자나 수사기관, 혹은 전담 기관이 시스템 내 창구를 통해 촬영물 원본이나 URL과 함께 삭제 지원을 요청할 수 있다. 이후 담당자가 지정되면 DNA 검색 시스템을 통해 크롤링으로 불법 사이트에서 수집된 모든 촬영물에서 유사성을 비교해 해당 영상을 찾게 된다. 흑백 전환, 화면 반전, 자막 추가, 배속 영상까지 유사성을 판별해 99% 이상 정확도로 검출할 수 있다는 것이 센터의 설명이다.
담당자는 시스템이 유사하다고 판별한 결과물을 직접 확인하고, 해당 사이트에 영상 삭제를 요청하게 된다. 사이트 운영자가 삭제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호스팅 사업자에게도 삭제를 요청하게 된다. 해외 서버 사이트에 '불법성 증명 공문'을 보내기도 한다. 이때 수사 중인 사건번호를 활용해 공신력을 높인다. 그런데도 삭제까지 걸리는 '평균 기간'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협조 여부는 시시각각 다르다고 한다. 박성혜 삭제지원팀장은 "삭제에 불응해 한 건도 삭제하지 않는 사이트도 있고, 요청하면 반 이상 삭제되는 곳도 있어서 평균치를 말하기 어렵다며 "불응하는 곳은 국제 협력이나 공문을 고도화하는 방식을 써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비협조적 사이트에 대응하기 위해 디성센터는 법 조문에 센터의 이름과 기능 등이 담은 '설치 근거법'이 마련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박 팀장은 "(삭제 요청을 하면) 불법 사이트에서 (당신들은) 어떤 권한을 갖고 있는 센터냐고 회신이 온다"며 "저희는 기관 이름이 명시된 법적 근거를 회신하고 싶은데 지금은 설치 근거법 자체가 전무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성폭력방지법에는 '촬영물 또는 복제물이 유포돼 피해를 입은 사람에 대해 촬영물 등의 삭제를 위한 지원을 할 수 있다'고만 명시돼 있다.
처리하는 업무에 비해 인력이 적은 점도 문제다. 현재 삭제지원팀 인력은 15~20명에 불과하다. 지난 한 해 실적인 24만건에 비춰보면 1명당 약 1만2000개의 영상을 담당하는 꼴이다. 기간제 인력이 차지하는 비중도 커 업무 숙지 및 교육에도 어려움을 겪는다. 불법촬영물 삭제에 대한 교육 체계나 기관이 별도로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직원끼리 멘토링을 하는 등 업무를 전해주는 상황이다.
이에 한국여성인권진흥원과 여성가족부는 대성센터 설치의 법적 근거를 담고 삭제 지원 주체에 지자체를 추가하는 등의 법 개정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 21대 국회에서 이러한 내용을 담은 성폭력방지법 개정안을 조은희 국민의힘 의원실을 통해 발의했지만, 국회 임기가 만료되며 폐기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