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욱기자
서울 아파트 거래량이 4000건을 넘어섰고, 매매 가격도 뛰면서 주요 아파트 인근 공인중개소에서는 "부동산 시장이 살아나고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반면, 부동산 전문가들은 "부동산 시장에 ‘회복’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섣부르다"고 11일 진단했다. 지금처럼 투자 수요가 없는 실수요 중심으로는 거래량이 늘어나는 데 한계가 있고, 매매 가격도 고점 대비 여전히 낮은 수준이라는 것이 이들의 분석이다.
장재현 리얼투데이 리서치본부장은 최근 서울 아파트 가격 상승세는 "일시적 현상"이라고 선을 그었다. 장 본부장은 "반등한 것으로 보이나, 시간이 지나면 다시 하락할 가능성이 있다"며 "거래량이 크게 늘고, 가격 상승 폭도 매주 크게 나타나야 회복기라고 부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실수요 중심 거래로는 시장이 회복됐다고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투자 수요가 뒷받침돼야 거래량이 크게 늘 수 있는데, 최근 시장은 실수요를 중심으로 거래가 이뤄지는 양상"이라며 "신생아 특례대출, 생애최초 대출로 청년들이 낮은 금리로 돈을 빌릴 수 있는 점은 거래량이 증가할 수 있는 요소지만 여전히 시장 전체 분위기는 어둡다"고 진단했다.
거래량이 적은 상황에서 새 아파트가 공급되면, 매매 가격이 오른 것처럼 보이는 ‘착시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예컨대 강남의 새 아파트 입주가 시작되면 이 아파트 가격이 높게 책정되는 바람에 주변 아파트의 호가까지 상승하게 된다. 이처럼 거래가 이뤄지지 않더라도 호가 상승으로 인해 실거래가까지 오를 수 있다. 장 본부장은 "거래량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다양한 변수가 있는 만큼 현재 시장을 판단하기에는 무리"라고 강조했다.
함영진 우리은행 부동산리서치랩장도 서울 아파트 가격이 반등한 것은 맞지만 상승이 본격화한 것은 아니라고 분석했다. 그는 "서울 아파트 누적 가격 상승률은 여전히 고점 대비 낮은 수준"이라며 "한 주 단위 가격 상승세가 이어져 집값이 내려가지 않겠다고 판단할 정도"라고 말했다.
최근 집값 오름세는 높은 분양가와 서울 아파트 공급 감소, 전세가 상승에 따른 영향이라고 했다. 함 랩장은 "최근 공사비 상승으로 분양가가 올랐고, 신규 아파트 공급도 지연되거나 공급량이 줄면서 수요가 분양시장으로 분산되기 어렵다"며 "이런 배경 때문에 서울 아파트 가격이 오르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또한 함 랩장은 "전세가가 오르면서 매매가를 끌어올리는 측면도 있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함 랩장은 거래량이 많지 않은 점에 주목했다. 그는 "집값이 오르긴 했지만, 급매물이 많은 편이 아니라서 거래량이 과거보다 많지는 않다"며 "지금 상황에서는 가격이 박스권에 머물며 올랐다 멈추기를 반복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권영선 신한은행 부동산 애널리스트는 "올해 서울 아파트 매매 시장의 상승 폭이 크지 않은 채로 강보합 상태에 있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는 "서울 아파트 공급이 위축된 상황에서 실수요를 중심으로 거래가 이뤄지는 것으로 보인다"며 "실수요자가 중심인 시장에서 가격 상승 폭이 크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권 애널리스트는 "최근 집값 상승은 전세가가 오르고 전세에 수요가 집중되는 상황에서 차라리 매수를 택하는 수요자가 증가한 결과"라고 했다. 또 그는 "서울 아파트는 지방과 비교할 때 안전자산으로 여겨져 지방에서도 수요가 몰리는 측면이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투자 수요가 커지기 어렵다고 봤다. 그는 최근 거래는 강남구·서초구·송파구 뿐 아니라 성동구·마포구·광진구 등에서 거래가 증가하는 반면 강북구 쪽은 거래가 잘 안 되는 점을 볼 때 확실한 곳에 투자하자는 인식이 있는 것 같다"며 "이처럼 수요자들이 시장을 관망하는 상황에서는 투자 수요가 따라주기 어려워 거래량이 늘어나기 어렵다"고 예상했다.
향후 대세 상승기가 찾아오기 힘들다는 전망도 나온다. 박원갑 KB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지금보다 거래량이 더 늘어나기 힘들고, 집값 상승도 어렵다고 전망했다. 박 위원은 "최근 서울 아파트 매매 시장은 회복기라기보다는 일시적인 반등기"라며 "서울 집값이 기본 12억원인 상황에서는 거래량이 잘 나와야 4000건대 정도 나올 수 있다. 이 이상으로 늘어나긴 어렵다"고 말했다.
특히 박 위원은 "이전처럼 갭투자를 통한 대세 상승기가 찾아올지 확신할 수도 없다"며 "2013년부터 2022년까지 9년 동안 대세 상승장이었지만 앞으로는 이런 장기 상승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갭투자가 성행했던 2016년도에 전세가율이 75%로 최고치였지만 지금은 53% 수준"이라며 현재 시장을 일시적인 반등기라고 했다.
또 박 위원은 "집값이 회복하고 있다는 것은 과거의 대세 상승기를 추종하는 것"이라며 "인구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과거처럼 거래가 살아나기는 힘들다"고 판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