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은기자
영하 10도 안팎의 매서운 추위가 찾아왔던 지난 8일 서울 중구 황학동 중고 주방·가전 거리에서 만난 상인 박모씨(72)는 팔리지 않는 온풍기를 만지작거렸다. 박씨의 가게 앞에는 폐업한 고깃집에서 가져온 연통과 화로 등이 먼지에 뒤덮인 채 산처럼 쌓여 있었다.
박씨는 몇 달 전 도매상에서 3만원에 사 온 중고 온풍기를 새것처럼 세척해 8만원에 팔고 있다. 날씨가 추워지면 금방 팔릴 것으로 예상됐던 온풍기는 몇 달째 가게 앞에 놓인 채 찬바람을 맞고 있다. 박씨는 가게 앞에 대기하고 있는 트럭을 가리키며 "팔리지 않는 물건은 고물상이 1㎏당 가격을 매겨 헐값에 사 간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중고 가전 등을 싼값에 팔아 자영업자 성지로 자리매김했던 황학동 중고 주방·가전 거리가 활력을 잃고 있다. 내수 침체 여파로 자영업자 폐업은 늘고 있는데 창업을 하려는 이는 줄면서 손님이 뚝 끊겼기 때문이다.
정운천 국민의힘 의원실이 중소벤처기업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8월 말 기준 폐업 점포 철거지원 사업을 신청한 건수는 2만4514건으로, 코로나19가 확산하기 전인 2019년보다 3.8배 늘어났다. 소상공인 폐업 점포 철거지원 사업을 신청한 건수도 2019년 6503건에서 2022년 2만4524건으로 4배 가까이 늘었다.
창업을 택하는 자영업자 비중도 줄고 있다. 통계청의 지난해 8월 통계에 따르면 전체 근로자 가운데 비임금근로자(자영업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23.4%로 2007년 이래 가장 낮았다.
가게를 여는 사람은 없고 닫는 사람만 늘면서 황학동 상인들은 넘쳐나는 재고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중고 가구점을 운영하는 이모씨(71)는 최근 들어 서울 곳곳의 개인 카페가 폐업하면서 몰려든 인테리어 가구로 속이 타들어 간다.
이씨는 "개인 카페들이 문을 닫으면서 다양한 색과 디자인의 가구들이 매물로 들어온다"며 "요즘은 지방 변두리에 소규모로 카페를 차리려는 사람들만 있어 디자인이 통일되지 않은 이런 가구들은 팔리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상인들은 경기침체가 피부로 느껴진다고 입을 모았다. 이곳에서 6년째 중고 그릇 가게를 운영하는 김모씨(58)는 "황학동 점포의 평균 임대료가 월 300만원 정도인데 외국인 근로자 월급도 기본 220만원은 줘야 하지 않나. 2~3개월만 장사가 안 되면 현금 흐름이 끊겨서 가게를 접어야 한다"며 "벌써 주변에 아는 상인 2명이 가게를 접었다"고 말했다.
여러 자영업자도 코로나19 이후 경기가 반등하지 못하면서 가게가 존폐기로에 선 상황이라고 토로한다.
충북 음성군에서 카페와 분식집을 운영하는 윤순현씨(56)는 "코로나19 당시엔 긴급재난지원금을 받은 손님들이 돈을 쓰면서 그나마 숨은 쉴 수 있었다"며 "최근엔 관공서나 기업들마저 경기침체로 직원들의 간식비를 대폭 줄이면서 주문이 절반이나 줄었다"고 말했다.
강원 춘천시에서 개인 카페를 운영하는 이언영씨(66)는 "점심과 저녁 영업을 하던 주변 상인들이 최근엔 인건비를 아끼기 위해 점심 영업만 하는 경우가 많다"며 "영업시간을 단축해서라도 운영비를 줄이려는 점주들이 늘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