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북송 위험'…유엔, 中 탈북여성 인권유린 첫 추궁

유엔 여성차별철폐위, 中 강제송환 정책 지적
中 인권심의 때 탈북여성 인권유린 첫 쟁점화
"강제송환 정책으로 인신매매·가족분리 발생"

세계 각국의 여성인권 실태를 평가하는 유엔 산하 위원회가 강제북송 위험에 노출된 중국내 탈북 여성 문제를 주요 현안으로 다뤘다. 북한이 아닌 중국을 상대로 탈북여성이 겪는 인권 유린을 문제삼은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중국 정부에 대한 상당한 압박으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16일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CEDAW)에 따르면 위원회는 지난 12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중국 여성인권에 대한 심의에서 재중 탈북여성이 직면한 인권 유린을 논의했다. 위원들은 중국내 탈북 여성이 강제추방 위험에 노출돼 있다는 점과 이로 인해 발생하는 인신매매, 자녀의 출생신고 불가 등 문제를 잇따라 지적했다.

2018년 9월 한복을 차려입은 북한여성들이 평양 외곽에서 열린 ‘조선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국제 행군’에 참여하고 있다. [이미지출처=AFP·Getty image]

달리아 레이나르테 위원은 "중국내 탈북여성들은 불법체류자라는 이유로 아이를 낳아도 강제추방 위험 탓에 출생신고를 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태"라고 지적했다. 그는 "중국인 아버지는 북한 출신 어머니가 추방당한 뒤에야 출생신고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는 모성을 박탈하는 행위인데, 이렇게 등록된 아이들의 수가 얼마나 되는가"라고 중국 정부를 추궁했다. 또 중국에 자녀를 놓고 북한으로 '강제 송환'된 탈북 여성의 규모와 탈북여성 및 자녀에게 난민 지위를 부여하기 위한 중국의 법제 및 정책 등에 대해 답변할 것을 요구했다.

탈북민은 유엔 난민지위협약에 따른 인도적 고려 대상이지만, 중국 정부는 이들을 북한으로 돌려보내는 '북한 강제송환' 정책을 펴고있다. 이는 '탈북어민 강제북송' 사건 당시 논란이 됐던 국제법상 고문방지협약을 위반하는 것으로, 재중 탈북여성이 인신매매에 노출되는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강경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중국 외교부 당국자는 "중국 정부는 '경제적 이유'로 중국에 들어온 사람들에 대해 난민 지위를 부여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대부분의 북한 여성들은 '돈을 벌기 위해' 중국에 입국한 만큼 난민 지위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또 "외국 국적 여성이 중국 남성과 결혼하면 혼인신고를 안내한다"며 원론적인 답변으로 지적을 피해 갔다.

유엔이 중국내 탈북여성 인권 문제를 직격하면서 중국 정부에는 상당한 부담이 될 것으로 평가된다. 중국은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 회원국으로, 자국 영토내 '모든 형태의 여성 인신매매와 성 착취를 억제하기 위해' 적절한 조치를 취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 정부는 1995년 베이징여성대회 선언 이후 자국의 여성인권 신장을 적극 홍보해왔다.

"탈북여성 인신매매 노출"…공론화 시도 주효했다

북한 인공기

앞서 북한인권시민연합(NKHR)·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북한인권증진센터(INKHR) 등 인권단체 3곳은 지난달 10일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에 중국 내 탈북여성의 인권 유린 실태를 다룬 공동 보고서를 제출한 바 있다. 해당 위원회에 재중 탈북여성의 문제를 제기한 보고서도 이번이 처음이었다.

보고서는 북한 여성 및 소녀들이 중국에서 강제결혼이나 매춘 등에 동원된 결과로 발생하는 재원이 1억 5000만 달러(한화 1970억원) 규모로 추산된다는 점을 거론하며, 중국 정부의 강제송환 정책이 탈북여성에 대한 조직적인 인신매매를 불러왔다고 지적했다. 특히 이 문제가 탈북여성 자녀들이 겪는 강제적인 가족 분리 등 2차 피해로 이어질 것을 우려했다. 이후 지난 8일 중국 심의를 앞두고 열린 비정부기구(NGO) 공청회에서 요안나 호사냑 북한인권시민연합 부국장은 "중국 내 탈북여성의 인권 유린 문제가 30년 넘게 국제사회에서 외면당했다"며 "탈북여성을 제대로 보호하지 않아 인신매매에 더 취약한 상황을 야기했다"고 거듭 강조했다.

신희석 전환기정의워킹그룹 법률분석관은 "이번 논의를 계기로 중국이 탈북여성을 포함하는 난민 지위 인정 절차를 마련하고 북한으로의 강제송환을 중단할 것을 다시 한번 촉구한다"며 "북한인권 단체들은 내년 초 예정된 중국의 제4차 보편적 정례인권검토(UPR)에서도 재중 탈북민 인권 문제를 계속 제기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편,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는 1979년 12월 채택된 여성차별철폐협약에 대한 당사국의 이행 실태를 감독하는 기구로, 4년마다 각국의 보고서를 심의하고 권고사항을 채택한다. 이번 회기에서 재중 탈북여성 인권 유린 문제에 대한 우리 인권단체들의 공론화 시도가 주효했던 만큼 오는 26일 회기 종료 때 나올 결론에 중국 정부를 향해 어떤 지적이 담길지 주목된다.

정치부 장희준 기자 junh@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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