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나훔기자
이승진기자
[아시아경제 강나훔 기자, 이승진 기자] 산업계 전반에서 임금을 둘러싼 잡음이 끊이질 않고 있다.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 합리적인 보상체계를 지니고 있다고 평가되던 게임업계에서도 올해 역사상 첫 파업이 벌여졌다. 문제는 연봉제라는 틀 속에 자리 잡고 있는 높은 연공성(근속 연수에 따라 임금이 오르는 구조)에서 비롯됐다. 좋은 성과에도 연차가 높은 선임보다 적은 월급을 받을 수밖에 없는 현재의 낡은 임금체계에 대한 개편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고용노동부 등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임금체계는 3번의 시기를 거치며 변화했다. 경제개발이 본격화된 1960년대 초반 이후부터 1987년 민주화 운동까지(1기), 1987년부터 1998년 외환위기까지(2기), 외환위기 이후부터 현재까지를(3기) 등으로 크게 3개의 시기로 구분된다.
1기에는 1960년대 초반 이후 연공급적 성격의 임금체계가 본격적으로 확산된다. 연공급은 호봉급이라고도 하며 임금의 주된 부분이 근속년수에 의해 결정되는 임금체계를 말한다. 근속년수에 따라 더 높은 임금이 지급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연공급은 우리나라의 지배적인 임금체계로 과거 일본 역시 연공급이 주된 임금체계였다.
산업계 전반에 호봉제가 널리 적용된 시기는 2기다. 1987년 이후 노동조합의 요구로 생산직 근로자에게도 호봉제가 널리 적용되었고, 연공적 성격도 강화됐다. 경제단체협의회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생산직 근로자에게 순수 연공급 임금체계를 적용한 사업체의 비율은 1987년 15%에서 1990년 25.8%로 늘었다. 특히, 이 시기 인사평가에 의한 차등인상 관행이 대폭 축소되고 일률적인 인상이나 일률적인 승급이 일반화 된 것으로 나타났다.
3기의 가장 큰 특징은 1997년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한 연봉제의 확산이다. 사업체노동력조사에 따르면, 100인 이상 사업체 중 연봉제를 도입한 곳의 비중이 1997년 3.6%에서 2015년 74.5%로 증가했다. 하지만 수십년간 임금체계의 토대가 된 호봉제 탓에 대부분의 기업들이 높은 연공성에 기반한 연봉제를 사용하며 사실상 호봉제와 큰 차이를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해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이 발표한 ‘한·일·EU 근속연수별 임금 격차 국제비교와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연공성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2020년 기준 우리나라 근속 30년 이상 근로자의 월 임금총액(초과급여 제외) 평균은 697.1만원으로, 근속 1년 미만 근로자 월 임금총액 평균 236.5만원보다 2.95배 높았다. 반면, 일본은 2.27배, EU 평균은 2018년 기준 1.65배였다. EU 15개국 중 근속연수에 따른 임금 격차가 작은 국가는 핀란드(1.24배), 스웨덴(1.30배)이었다. 상대적으로 큰 국가는 오스트리아(2.03배), 그리스(2.09배)로 나타났다.
우리나라의 근속 1년 미만 근로자 월 임금총액 평균은 지난해 기준 2744달러로 일본(2392달러) 에 비해 14.7% 높았다. 특히 근속 30년 이상 임금은 우리나라가 8089달러로 일본(5433달러)에 비해 48.9% 높았다. 2001년 대비 2020년 우리나라의 임금수준은 전 근속연수 구간에서 크게 증가한 반면, 일본은 저연차 구간에서만 소폭 증가했을 뿐 고연차 구간에서는 오히려 감소한 것으로 분석됐다.
미국, 일본 등 주요 선진국들은 지속적인 임금체계 개편을 통해 연공성을 약화시키고 있다. 직무에 따른 급여 구간을 정해두거나, 개인성과를 임금에 더 크게 반영하는 식으로 조정해 나가는 식이다.
미국의 경우 현재 직무중심의 임금체계를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개인성과와 직무의 시장가치 변동 등에 따른 기본급 인상은 이뤄지지만 근속 연수에 따른 임금인상은 거의 없다. 대표적으로 ‘브로드밴딩’ 방식이 주요 산업군에 적용돼 있는데, 이는 직무등급을 통폐합해 직무등급의 수를 줄이고 임금구간을 확대해 동일 직무등급에서의 임금 차등을 두는 방식이다.
우리와 가장 유사한 임금체계를 지니고 있는 일본은 직무·역할급(직무 내용·수행 능력 기준으로 설정한 역할등급 달성 정도에 따라 보상) 도입을 확대해 임금체계 연공성을 완화해 나가고 있다. 직무에 따른 임금 수준이 정해져 있지만 성과에 따른 보상 체계를 강화했다. 특히 고과승급에 있어서 평가대상이 되는 성과는 개인의 장단기 업적이 가장 많고, 자동승급하는 경우는 거의 없도록 해 연공성을 제한시켰다.
임금체계의 높은 연공성은 MZ세대를 중심으로 촉발되고 있는 공정분배에 대한 불만 외에도 고령층 고용유지에도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윤석열 정부는 법정 정년을 현행 만 60세에서 65세로 연장하는 방안을 추진 중인만큼 연공성 완화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의 ‘경제환경 변화에 대응한 임금체계 개편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연공임금은 고령층의 조기퇴직 압박으로 작용했다. 근속연수가 10년에서 20년으로 증가할 때 연수 증가만으로 임금이 15.5% 증가하며 기업의 인건비 부담이 가파르게 증가한다는 분석이다. 또 OECD 자료에서도 연공성과 고령층의 고용유지율은 음의 관계를 가지는 것으로 나타나 연공성이 높으면 고령층의 고용유지율이 낮아지는 것으로 분석됐다.
보고서는 국내의 호봉제 임금체계는 생산성과의 괴리로 정규직 보상에도 비합리적이며, 청년고용과의 갈등은 물론 조기퇴직 등으로 고령자고용에도 부정적이라는 점을 들어 연공성 완화를 중심으로 한 임금체계 개편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일러스트 오성수 gujasik@
인포그래픽 이진경 leejeen@
강나훔 기자 nahum@asiae.co.kr이승진 기자 promotion2@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