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집다운 집에서 살고 싶다' 추위·코로나19와 싸우는 쪽방촌 사람들

추위·감염병 이중고 겪는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
정부·소유주 갈등으로 재개발 난관 봉착
코로나19, 쪽방촌 사람들 삶 더욱 어렵게 만들어
1인가구 주민들 고독사 잇따르기도

12일 방문한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의 골목길 / 사진=임주형 기자 skepped@

[아시아경제 임주형 기자] "날씨가 풀리는 줄 알았더니 또 추워지네."

아침 최저기온은 영하 12도까지 떨어진 12일 오전,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 주민 A씨는 야속하다는 듯이 하늘을 올려다봤다. 이날 날씨로 인해 한강과 수도관은 얼어붙었다. 칼바람은 뼛속까지 스며들었다. 남루한 외투, 목도리, 털장갑으로 온몸을 꽁꽁 싸맨 A씨는 "여름보다 겨울이 더 힘든 것 같다. 더우면 버티기라도 하지만 추울 때는 대책이 없다"라고 토로했다.

쪽방촌이 혹한과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힘겨운 겨울을 보내고 있다. 화려한 상가와 고층빌딩이 밀집한 대도시 서울의 이면에는, 환기는커녕 기본적인 난방 시설조차 구비되지 않은 열악한 주택가들이 버티고 서있다.

이곳 거주민 중 상당수는 정부 지원을 받고 사는 빈곤층이다. 정부는 쪽방밀집지역의 주거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공공주도 재개발을 추진하려 했지만, 인근에 있는 주택을 보유한 임대인들의 강한 반발에 직면해 교착상태다.

쪽방촌 앞에 걸린 공공개발 반대 현수막. 건물 옆 횡단보도를 마주하고 서울의 고층 빌딩이 보인다. / 사진=임주형 기자 skepped@

동작동 쪽방밀집지역은 서울역 인근의 화려한 빌딩숲 한가운데에 있다. 멀리서 보면 평범한 음식점, 제과점, 편의점 등이 있는 상가처럼 보이지만, 어둑한 골목길 안으로 들어서면 쪽방촌이 시작된다.

'서울역 동자동 공공주택 토지 강제수용 결사반대'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지나쳐 쪽방촌 입구로 향하자, 가장 먼저 시야에 들어온 것은 텅 빈 식당들과 건물 사이사이에 박힌 '빨간 깃발'들이었다.

계단에 앉아 있던 한 주민에게 깃발의 용도를 묻자 "집주인들이 설치하고 간 것"이라며 "나라가 하는 재개발은 반대한다고 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공공 재개발을 원하는 동자동 주민들과 이에 반대하는 임대인들의 갈등은 골목길 곳곳에서 드러났다. 담벼락이나 주택 외벽마다 "우리도 집다운 집에서 살고 싶다", "공공주택사업" 등의 문구가 다닥다닥 붙어 있었고, 그 맞은편에는 어김없이 '빨간 깃발'이 꽂혀 있었다.

쪽방촌 주택가에는 공공개발을 찬성하는 이들과 이에 반발하는 '빨간 깃발'이 대치하고 있다. / 사진=임주형 기자 skepped@

동자동 쪽방 세입자로 살면서 작은 상점을 운영하는 70대 B씨는 "재개발이 이뤄진다면 거주민으로서는 좋은 일이다. 사람도 몰리고 장사도 더 잘 될 것"이라고 말했다.

B씨의 상점 현관문은 미닫이 방식이었는데, 낡아서 고장이 났는지 완전히 닫히지 않았다. 이 때문에 B씨는 추운 겨울날에도 이불로 몸을 감싼 채 현관문을 반쯤 열어둔 상태로 영업을 해야만 했다. 그런 B씨의 상점에도 빨간 깃발은 달려 있었다.

동자동 건물주들이 정부의 공공개발 방침에 항의하는 뜻으로 걸어둔 깃발 / 사진=임주형 기자 skepped@

B씨는 "여기 사는 사람들은 사실 재개발이 어쩌니 하는 얘기 잘 모른다. 모두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것도 급급하다"라며 "주민 중 건물주는 거의 없고 대부분 세입자다. 그마저도 기초생활수급자들이 70%는 넘을 것"이라고 말했다.

난항 빚는 재개발 계획…추위 코로나19 노출된 주민들은 '이중고'

쪽방은 약 1960년대 전후로 형성된 국내 빈민 주거시설을 이르는 말이다. 사람 한명이 간신히 누울 수 있는 수준의 공간이기 때문에 쪽방이라고 불린다. 이런 형태의 방이 한 건물 안에 다닥다닥 밀착돼 있으며, 샤워실·화장실 등 위생시설은 대부분 공용이다. 이런 쪽방 건물이 밀집된 지역을 '쪽방촌'이라고 부른다.

한 쪽방 밀집 주택 입구. / 사진=임주형 기자 skepped@

서울에는 현재 총 다섯 곳의 쪽방촌이 있다. 서울 종로구 돈의동과 창신동, 중구 남대문5가, 영등포, 동자동 등이다. 이 가운데 영등포 쪽방촌은 지난해 1월 재개발 계획이 발표돼 사업을 추진 중이다.

동자동 또한 비슷한 시기에 재개발 계획이 나왔다. 앞서 국토교통부는 지난해 2월5일 '서울역 쪽방촌 주거환경 개선을 위한 공공주택 및 도시재생사업 추진계획'을 발표했다. 이 사업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서울주택도시공사(SH)가 동자동 일대 4만7000㎥를 지난해부터 2030년까지 개발해, 주택 총 2410호를 공급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개발이 진행되는 동안 쪽방 주민들을 다른 임시 단지에 이주시킨 뒤, 개발이 완료되면 재정착한다는 방안도 포함돼 있었다.

그러나 이 계획은 곧 난관에 봉착했다. 공공 주도가 아닌 민간 주도 개발을 원하는 동자동 쪽방촌 건물의 실제 소유주들이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갈등이 커지면서 동자동주민대책위원회(대책위) 측은 지난해 8월 노형욱 국토부 장관 자택 앞에서 릴레이 1인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당시 시위에 나섰던 오정자 대책위원장은 국토부의 공공 주도 개발안에 대해 "쪽방촌을 빌미로 한 동자동 토지 강탈 시도"라고 주장하며 "우리 대책위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모아 주민이 제안할 민간개발 '따뜻한 상생개발'을 준비 중이었는데, 국토부는 면담 뒤 '민간개발을 할 수 없다', '공공주택지구 지정이 최상이다'라고 하면서 말을 뒤집었다"라고 규탄했다.

쪽방이 있는 복도 모습. / 사진=임주형 기자 skepped@

상황이 이런 가운데, 서울 쪽방촌 주민들은 코로나19와 추위의 위험에 고스란히 노출돼 있다. 시민단체 '홈리스 행동'이 지난해 11월 한달 동안 주거 취약 계층 내 코로나19 집단감염 사례를 조사한 결과, 종로구 쪽방촌에서만 57명의 감염자가 나왔다.

감염 위험이 커지면서 봉사 활동 단체 등의 발길이 뜸해지자, 쪽방에서 생활하던 1인 가구 주민들이 남들 모르게 고독사하는 안타까운 일도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달 28일 종로구 한 쪽방촌에서는 40대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C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경찰은 이 수급자와 연락이 끊겼다는 사회복지사의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한 뒤 C씨의 시신을 발견했다. 조사 결과 C씨는 크리스마스였던 지난달 25일 급성심장사로 숨을 거둔 것으로 드러났다.

그런가 하면 이 쪽방촌 인근 한 고시원에서도 80대 주민 D씨가 숨진 채 발견되기도 했다. 지난 2016년 가족들과 교류가 끊긴 뒤 혼자 고시원 생활을 이어오던 D씨의 시신은 경찰이 수습했다. 종로구는 D씨에 대해 '무연고 사망자 장례(연고가 없거나 알 수 없는 시체에 대해 지방자치단체가 장례처리를 지원하는 것)'를 치르기로 했다.

전문가는 현재 쪽방촌 거주민들이 겪는 열악한 주거환경 문제를 해결하려면 재건축에 준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동현 홈리스 행동 상임활동가는 "이전에도 쪽방 지원 사업의 일환으로 지자체에서 크고 작은 리모델링 작업을 했었다. 하지만 쪽방 자체가 워낙 오래 전에 지어진 건물이다 보니 보수 공사만으로는 주거 환경의 질을 개선하기 힘들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결국 재건축에 준하는 작업이 필요한데, 이 과정에서 사실상 취약계층인 거주민들에게 부담이 가지 않게 하려면 공공 사업 성격의 공사로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임주형 기자 skepped@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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