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석기자
[아시아경제 나주석 기자] 선거대책위원회 전면 쇄신 작업에 착수한 국민의힘의 상황은 40여일 전 더불어민주당 선대위에서 벌어진 일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 ‘재건을 위한 혼돈’의 과정을 겪었거나 겪고 있는 양 당 모두 ‘매머드 선대위’를 슬림화하겠다는 같은 방향성은 갖는다. 그러나 진행 과정이 사뭇 다르다는 점에서 국민의힘 선대위 개편이 민주당처럼 반전 카드 확보에 성공하는 결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3일 저녁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선대위 전면 쇄신안 후속대책을 논의한 뒤 당사를 나서고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위로부터 쿠데타, 아래로부터 혁명 = 김종인 국민의힘 총괄선대위원장 입에서 시작된 3일 선대위 개편작업과 관련해 당 안팎에서는 ‘쿠데타’라는 표현이 등장했다. 김 위원장은 윤석열 대선후보와 사전에 교감하지 않은 채 선대위 전면 개편 방침을 공개했다. 후보와 조율되지 않은 개편 논의가 전격적으로 발표되면서 혼란이 커졌다. 결국 쫓기듯 김병준 상임선대위원장과 김기현 원내대표 등 4인의 공동선대위원장, 임태희 총괄상황본부장을 비롯해 김한길 새시대준비위원장까지 릴레이 사의 표명이 이어졌다. 소속 의원들도 당직을 포기하겠다며 백의종군을 선언했다. 김 위원장에서 촉발된 개편 논의가 선대위 전반으로 급속히 확산된 방식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4일 경기도 광명시 기아자동차 공장에서 '대한민국 대전환과 국민 대도약을 위한 비전'이라는 주제로 신년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국회사진기자단
반면 민주당의 선대위 개편은 아래서부터 들고 일어난 형식으로 진행됐다. 지난해 11월 18일 초선의원인 이탄희 민주당 의원은 "선대위에 현장성과 전문성을 갖춘 인사들을 전면배치하고 나머지 의원들은 지역과 현장으로 가서 시민을 직접 만나야 한다"며 선대위 산하 대국민 소통 강화 기구인 ‘너목들위(너의 목소리를 들으러 가는 위원회)’ 위원장 사퇴를 선언했다. 이어 김두관 의원이 공동선대위원장 사퇴를 알리며 선대위 개편 논의가 시작됐다.
◆대선후보가 개편의 주인공인가 아닌가 = 민주당의 경우 선대위 개편은 결국 이재명 대선후보에게 전권을 넘기는 방식으로 이어졌다. 지난해 11월 21일 민주당 의총에서 소속의원 169명 전원이 "이 후보에게 당의 쇄신과 선대위 혁신을 위한 모든 권한을 위임하고 결정에 따르기로 했다"고 결의한 것이다. 그러나 국민의힘의 경우 원하던 아니던 김 위원장이 개편의 키를 쥔 꼴이 됐다. 김 위원장은 의총에서 윤 후보를 상대로 한 발언을 소개하며 "당신의 비서실장 노릇을 선거 때까지 할 테니 후보도 우리가 해달라는 대로 연기만 좀 해달라"고 했다. 비유적 표현이라는 설명 등이 뒤따랐지만, 일련의 상황을 지켜보면 김 위원장이 대선까지 주도권을 단단히 쥐겠다는 뜻으로밖에 볼 수 없는 상황이다.
김종인 국민의힘 총괄선대위원장이 3일 오후 서울 여의도 당사를 나서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결과적으로 이 후보는 일련의 쇄신 작업을 거치면서 민주당에 대한 장악력을 높여 ‘이재명의 민주당’을 완성하고 선거운동에 박차를 가할 토대를 마련했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윤 후보가 최종 결정권자임에도 불구하고 ‘김종인의 선대위’를 받아들여야 할 것인지 아닌지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또한 민주당은 선대위 개편 작업이 대선 100일 전에 이뤄졌지만 국민의힘은 대선을 불과 두 달여 앞둔 상황에서 큰 혼란에 직면한 차이도 있다. 설 연휴가 올해 대선의 주요 변곡점이 될 것임을 고려하면 반전의 기회 자체가 상대적으로 적어진 셈이다.
나주석 기자 gonggam@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