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원기자
[코마롬(헝가리)=아시아경제 김혜원 기자] "전기차 배터리 사업을 처음 기획한 이후 기울인 노력이 유럽 공장 건설로 결실을 맺고 있다. 머지않아 전 세계 전기차에 SK 배터리를 공급하는 날이 오기를 희망한다."(2018년 3월8일 최재원 SK그룹 수석부회장)
SK그룹 창업 3세인 최태원·최재원 형제가 ‘제2의 반도체’로 일찍이 점찍고 각별히 애정을 쏟는 미래 신성장 사업은 배터리다. 최 부회장이 2018년 유럽 공장 기공식에 다녀갈 때만 해도 SK이노베이션은 배터리시장에서 후발주자라는 쓴소리를 들어야 했다. 하지만 불과 3년 만에 SK이노베이션 배터리 사업부가 물적 분할해 SK온이라는 배터리 전문 회사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은 220조원에 달하는 수주잔고가 뒷받침한 덕분이다.
지난해 11월 문재인 대통령의 헝가리 국빈 방문 당시 사절단으로 동행한 최 회장은 짬을 내 SK온 헝가리 공장을 직접 찾기도 했다. 이 자리서 최 회장은 고객사를 위한 양질의 제품 생산 외에도 SK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관점의 프로그램을 개발할 것을 주문했다고 한다.
한때는 노키아 휴대폰이 점령했던 산업단지 코마롬이 SK온 배터리 공장이 들어선 이래 활기를 되찾았다는 이야기를 듣고서 지역사회 일원으로 기여할 방법을 찾으라는 취지였다. 오너 일가 외에도 지동섭 SK온 사장이 SK이노베이션에서 배터리 사업 대표를 맡은 뒤 가장 먼저 찾은 해외 생산 거점도 코마롬 공장이었다. 그만큼 SK그룹 내에서는 상징성이 큰 곳이다.
◆제2의 반도체, 기술력 응집한 복잡한 공정 첫 공개= 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에서 북서쪽으로 1시간30분가량 달리자 끝이 보이지 않는 광활한 SK온 배터리 공장 부지가 위용을 드러냈다. 코마롬에 있는 SK온 배터리 1, 2공장이다. 부다페스트에서 남서쪽으로 약 50㎞ 떨어진 이반차에 짓고 있는 3공장보다는 작지만 그래도 크다. 코마롬 공장은 현관 출입구부터 진입이 까다로웠다. 국가 보안 시설이다 보니 관리가 엄격해 모든 전자기기의 반입을 불허했고 1공장을 오갈 때도 방진복과 에어샤워는 필수였다. 공장 내부에서 직원이 촬영한 사진은 모두 반출 불가 판정을 받았다. SK온 헝가리 공장이 상업 생산 중인 라인을 언론에 공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배터리를 제조하는 과정은 양극과 음극을 만드는 전극(극판) 공정을 시작으로 우리가 사용하는 배터리 형태를 갖추는 조립 및 패키징에 이어 배터리 셀에 전기적 특성을 부여하는 화성 공정으로 크게 나뉜다.
SK온 헝가리 코마롬 배터리 공장에서 현지 직원들이 라인을 점검하고 있다. SK온이 배터리 공장 내부를 언론에 공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사진 제공=SK온
대형 드럼통에서 배터리 원재료를 혼합하고 말려 탄생한 전극을 다시 자르고 수분을 제거하는 전극 공정을 지나 조립 공정에 들어서니 일자형으로 길게 뻗은 라인 속 수많은 설비가 유리창 안에서 쿵쾅 소리를 내며 쉴 새 없이 움직인다. 조립 공정을 담당하는 홍정균 PM은 "코팅을 끝낸 여러 개의 단일 극판 사이에 분리막을 지그재그로 쌓아 올리는 스태킹 작업이 SK온의 독보적인 기술 중 하나"라며 "한 장 적층에는 0.6초, 배터리 완제품의 중간 모습인 젤리롤을 만드는 데는 1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Z폴딩’ 기법이 화재 발생 0건의 비결이라고 한다.
스태킹 머신은 라인당 18~22개씩 설치돼 있었다. 곳곳에 엑스레이 등 테스트 장비가 있는데, 이 과정을 통과한 젤리롤에는 고유 번호를 부여한다. 불량을 찾아낼 때 데이터를 역추적하기 위한 것인데 하나의 배터리로서 ‘이름’을 갖는 벅찬 순간이기도 하다. 다음은 파우치 안에 젤리롤을 넣고 밀봉하는, 붕어빵 기계에서 붕어빵을 찍어내는 것과 흡사한 패키징 작업이 이어졌다. 여기서 전해액 주입 전후의 무게를 측정해 불량을 또 한 번 걸러낸다. 조립 공정을 마친 배터리는 외형은 배터리지만 전기적 특성을 지니지 않고 있다. 때문에 물류 트레이를 통해 자동으로 전기적 특성을 부여하는 화성 공정으로 넘어가는데 그곳은 적정 온도와 습도에서 보관해야 해서 육안으로는 확인할 수 없었다.
◆‘통 큰 투자’ 헝가리에만 공장 3개 신·증설= 헝가리 코마롬 공장은 SK온이 보유한 유럽 내 최초의 생산기지이자 합작이 아닌 100% 단독으로 투자한 첫 해외 공장이다. 1공장(7.5GWh)과 2공장(10GWh)에 투입한 돈은 2조원 가까이이며 이반차 3공장까지 합하면 헝가리에만 3조원이 넘는 투자비를 쏟아부었다. 주문량에 맞춰 추가로 증축할 부지도 확보한 상태라서 총 투자비는 수조 원 이상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SK그룹이 천문학적인 돈을 아끼지 않은 것은 유럽 전기차시장의 성장성에 선투자한 성격이 크다. 넷제로(탄소중립) 1번지 유럽은 정부의 강력한 친환경 시책에 따라 미국에 비해 전기차 보급 속도가 빠르며 코로나19에도 친환경차 수요가 줄지 않은 몇 안 되는 국가다. 현대차·기아를 비롯해 내로라하는 완성차 업체가 유럽에 제조 공장을 보유하고 있어 배터리 공급사로서 지리적 이점도 많다. 코마롬 1공장에서 만든 배터리 셀은 육로로 5시간 거리에 있는 현대자동차 체코 공장에서 생산하는 코나 전기차(EV)에 납품한다. 다임러그룹과 폭스바겐그룹, 포드도 SK온 헝가리 공장의 고객사다. 한상규 SK 배터리 헝가리 법인장은 "시장 환경 외에도 저렴한 인건비와 훌륭한 노동 품질, 헝가리 정부의 인센티브 정책이 맞아떨어진 최적의 입지"라며 "고객사와 추가로 비즈니스 물량이 잡히면 언제든지 증설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애로사항이 없는 것은 아니다. 공장 운영 초창기인 데다 사실상 완전 고용에 가까운 헝가리 특성상 인력 관리에 어려움이 있다. 한 법인장은 "실업률이 낮은 대신 이직 및 퇴사율이 헝가리 전체적으로 매우 높은 편"이라며 "우리 공장의 경우는 이직률이 1%대로 낮지만 언제든지 인력 공백 사태를 맞을 수 있어 장기 근속 포상 등 촉진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용 창출 보조금 때문이 아니라도 자동화 100% 공장인데도 코마롬 1, 2공장에 근무하는 직원이 2000명이 넘는 이유이기도 하다.
코마롬(헝가리)=김혜원 기자
김혜원 기자 kimhye@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