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토 항의했다고 '무차별 폭행'…잇따르는 분노 범죄, 이대로 괜찮나

길 한복판서 택시 기사 무차별 폭행 20대 '공분'
먼저 뚫어지게 쳐다봐놓고…"눈 마주쳤다" 70대 무차별 폭행한 20대

지난 5일 서울 신림동의 도로에서 한 남성이 택시기사를 마구 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해 공분을 사고 있다.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아시아경제 허미담 기자] 최근 화가 난다는 이유로 일면식 없는 상대를 무차별 폭행하는 이른바 '분노 범죄'가 잇따라 일어나고 있다. 피해자 다수는 노인·여성 등으로, 가해자는 자신보다 약해 보이는 상대를 노려 무차별 폭행을 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시민들은 언제 어디서 일어날지 모르는 범죄에 분노를 표하며 무차별 폭행 가해자들에 대한 엄벌을 촉구하고 있다. 전문가는 가해자들이 자신의 억눌러있던 분노를 해소하기 위해 이 같은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최근 도로 한가운데서 60대 택시기사를 무차별 폭행한 20대 남성 A씨를 향한 시민들의 공분이 이어지고 있다. 시민들은 A씨의 얼굴·이름 등 신상정보를 커뮤니티를 통해 공개하는가 하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등에 글을 올려 엄벌을 촉구하고 있다.

앞서 A씨는 지난 5일 오후 10시께 서울 신림동 난곡터널 부근에서 60대 택시기사를 도로 위에 드러눕혀 마구 때린 혐의를 받고 있다. 당시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A씨를 현행범으로 체포했다.

이 사건은 당시 A씨의 폭행 장면이 담긴 폐쇄회로(CC)TV 영상이 공개되면서 공론화됐다. 영상을 보면 화가 난다는 이유로 도로 한복판에서 60대 노인을 상대로 무차별 주먹을 휘두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폭행을 당하던 택시 기사는 처음에는 의식이 있는 듯 저항을 하지만, 곧 의식을 잃는다.

그럼에도 이 남성은 지속해서 주먹을 휘두르고 잔혹한 폭행은 경찰이 현장에 도착해서야 끝났다. 택시기사는 치아가 깨지고 뒷머리가 찢어지는 등의 부상을 입고 인근 병원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관련해 A씨는 경찰 조사에서 "기사가 구토한 것을 나무라자 화가 나 폭행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도로에서 택시기사를 폭행해 다치게 한 혐의를 받는 20대 남성 A씨가 지난 7일 오후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 들어서고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시민들은 법정 최고형을 촉구하는 등 그야말로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직장인 김모(29)씨는 이에 대해 "자기 아버지뻘인 사람한테 어떻게 저럴 수 있나. 택시에서 구토하면 그날은 택시가 영업을 못 하는 날이나 다름없다. 거기에 대한 지적은 택시기사가 당연히 할 수 있는 것 아니냐"라며 "본인이 잘못한 일에 대해 지적 한 번 했다고 무차별적으로 폭행하는 게 참 어이가 없다"고 분노를 표했다. 이어 "가장 강한 처벌을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처럼 말다툼 등 사소한 갈등이 폭행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잇따르고 있다. 피해자는 주로 노인·여성 등 사회적 약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앞서 지난달에도 20대 남성이 70대 노인에게 무차별 폭행을 가하는 사건이 발생해 공분을 샀다. 지난달 22일 20대 남성은 서울 마포구의 한 아파트 1층 현관에서 '눈이 마주쳤다'는 이유로 피해자를 주먹과 발로 마구 때렸다. 가해 남성은 키 180㎝가 넘는 건장한 체격으로, 주변 사람들이 말렸음에도 불구하고 20여 분간 70대 노인을 폭행했다.

또 이후 공개된 CCTV 영상에서 가해 남성의 주장과는 달리 그가 먼저 피해자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는 장면이 담겨 비난 여론이 일기도 했다. 결국 폭행으로 인해 피해자는 안구 주변이 함몰되고 팔 여러 곳이 골절되는 등 심하게 다쳐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아파트 현관에서 70대 노인을 마구잡이로 폭행해 다치게 한 혐의(중상해)를 받는 20대 A씨가 지난달 24일 서울 마포구 서부지법에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이 같은 범죄는 분노 등 감정 조절이 어려워 홧김에 저지른 우발적 범죄가 살인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경찰청 '2018 범죄통계'를 보면 '살인 동기가 우발적이었다'는 비율은 전체의 32.9%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친누나를 살해한 뒤 인천 강화도 농수로에 시신을 유기했다가 4개월 만에 검거된 20대 남동생도 경찰 조사에서 우발적인 범행을 주장해 논란이 일었다.

그는 "누나와 평소 사소한 다툼이 있었다"며 "(범행 당일) 늦게 들어왔다고 잔소리를 해 말다툼을 하다가 우발적으로 범행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렇다 보니 시민들은 언제 어디서 당할지 모르는 범죄에 불안감을 호소하고 있다. 대학생 김모(26)씨는 "이런 '묻지마 폭행'을 당하는 일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최근 들어 더 많이 일어나는 것 같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보다는 미리 관련 대책을 세워놔야 할 필요가 있다"라며 "범죄가 자주 일어나는 지역에는 순찰을 강화하고, 무차별 폭행 가해자들에게는 엄벌을 내려야 한다"고 했다.

또 다른 직장인 구모(27)씨는 "낯선 사람과 대화할 때 종종 불안감을 느낄 때가 있다. 세상이 워낙 흉흉해서인지 길에서 낯선 사람이 말을 걸면 무섭더라"라며 "또 낯선 사람과 대화할 때 그 사람의 기분을 최대한 나쁘지 않게 하려고 노력한다. 괜히 기분 나쁘게 했다가 봉변당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라고 토로했다.

전문가는 대다수의 가해자들이 본인의 분노를 해소하기 위해 자신보다 약한 상대방을 노려 폭행을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일면식도 없는 사람에게 무차별 폭행을 하는 경우 가해자에게 여러 원인이 있을 수 있다"라며 "사회에 대한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또는 개인 사정과도 연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건 본인이 화나는 일을 겪었을 때, 이를 자기보다 약한 상대에게 분노를 표출한다는 거다. 또 이로 인해 쾌감을 얻는 이들도 있다"고 분석했다.

허미담 기자 damdam@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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