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조어사전] 샷건 - 분노 폭발에 키보드 던지며 화풀이

[아시아경제 김희윤 기자] 조선시대 역사서 연려실기술은 병자호란 이후 포로로 끌려간 아들 소현세자를 맞는 인조의 모습을 다소 폭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삼전도의 굴욕을 겪고, 생떼 같은 아들들을 청나라에 보낼 때도 세자가 추위에 약하니 꼭 온돌방에서 재워달라 부탁했던 부정은 온데간데없었다. 8년 만에 돌아온 소현세자가 아버지를 알현하고 청 황제의 선물인 벼루를 바치자 별안간 인조가 매우 화를 내며 세자를 향해 벼루를 집어 던졌다고 한다. 실록에는 기록되지 않은 사건이라 지어낸 야사일 가능성이 높지만 부자간 대립이 극명하게 드러난 이야기로, 인조의 매정함을 이야기할 때마다 언급되는 소재다. 인조의 분노는 앞서 고려 때의 일이 재현될까 하는 두려움에서 왔을지도 모른다. 고려 말 원나라는 충렬왕을 돌연 왕위에서 끌어내리고 그 아들 충선왕을 세웠다가 1년 만에 충렬왕을 복위시켰다. 아들을 정적으로 삼아 얼마든지 왕좌에서 끌어내릴 수 있다는 역사 속 위협의 메시지를 청나라도, 인조도 잘 알고 있었다. 벼루를 집어던진 아버지 인조는 자신의 자리를 세자가 노리고 있다는 심증을 확신으로 굳힌다. 급기야 대신들 앞에서 "전일에는 (청나라가) 세자에 대한 대우를 지나치게 박하게 하다가 이제는 오히려 지나치게 후하게 한다 하니, 나는 의심이 없을 수 없다"고 공언하기에 이른다. 아버지의 분노 때문이었을까, 소현세자는 귀국 3개월 만에 학질(말라리아)에 걸려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샷건은 게임 또는 기타 업무로 컴퓨터를 사용하다가 화가 나는 일이 있을 경우 과다한 공격성이 일어나며 순간적인 분노로 키보드나 책상을 내려치거나 집어던지는 것을 뜻하는 신조어다. 게임 BJ들이 방송에서 키보드를 내려치거나 부수는 모습이 대표적인 샷건 영상으로 남아 시청자의 웃음을 유발하기도 한다. 한때 암호화폐 시장이 급성장하며 비트코인을 대거 사들인 투자자들이 대폭락 때 분노를 참지 못하고 키보드, 모니터는 물론 세면대와 변기, 살림살이를 부순 인증사진을 올려 또 다른 샷건으로 회자되기도 했다. 하지만 순간의 분노를 이성적으로 제어하지 못할 경우 재산상 손해를 입게 됨은 물론, 간헐적 폭발장애를 키울 수도 있다고 하니 조심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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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례
A : 오늘 수업 끝나고 PC방 가서 배그 한판 할까?B : 그래, 근데 지난번에 갔던데 말고 다른 데 가자.A : 왜? 거기 음식도 맛있고 컴 사양도 좋아서 괜찮은데...B : 지난번에 혼자 갔을 때 근처 중학교 애들이 와서 게임하는데 샷건 대잔치였다니까. 어떤 애들 둘이 키보드를 때리고 내리찍고 하는데 알바도 사색이 돼서 못 말리고 있더라고.A : 헉, 그랬어? 어린 친구들이 무섭네... 그래. 다른 데로 가자.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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