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미담기자
서울시 종로구 이화마을에 위치한 엽서가게 '이화상점' 외부 전경. 사진=허미담 기자 damdam@asiae.co.kr
[아시아경제 허미담 기자] '사랑을 쓰려거든 연필로 쓰세요'라는 흘러간 노랫말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휴대전화로 당장 보고픈 이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고, 서로의 안부를 주고받을 수 있는 시대다. 그래서일까. 굳이 펜을 이용해 보고픈 마음을 꾹꾹 눌러담을 수 있는 공간이 주목받고 있다. 이곳에서 어떤 이들은 절절한 그리움을 써내려 가기도 하고, 어설픈 사랑의 문장으로 편지지를 가득 채우기도 한다. 오롯이 그리운 이에게 집중할 수 있는 그곳, 서울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엽서가게 '이화상점'이다.
서울 지하철 1호선 동대문역 1번 출구로 나와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따라 걷다보면 가파른 계단 끝으로 옹기종기 모여있는 작은 집들이 보인다. 높은 지대 덕에 '하늘동네'라고 불리는 이화마을이다. 이곳에서 발걸음을 옮기다 보면 구석구석 수놓아진 벽화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천사 날개 그림을 비롯해 영화 '어벤져스' 주인공들까지 담벼락에 삼삼오오 모여 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좀 한다는 이라면 카메라에 담벼락 풍경을 다양한 각도로 담아간다. 그 알록달록한 벽화들을 따라가면 샛노란색의 외벽이 눈길을 끄는 이화상점이 나온다. 요즘 보기 드문 엽서가게다.
입구 옆 매대에는 행인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할 만한 매력적인 엽서들이 쌓여 있다. 비빔밥, 불고기 등 한식 조리법이 그려진 엽서부터 이화마을의 벽화가 담긴 사진엽서까지, 여러 종류의 엽서가 호기심을 자극한다. 400가지가 넘는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벽면엔 푸른 바다를 주제로 한 사진엽서들이 가득하다. 그 옆은 붉은 꽃이 그려진 엽서가 자리해 상반된 느낌을 준다. 고양이와 이화동을 소재로 한 엽서들도 벽면을 장식하고 있다. 매대를 가득 채운 엽서들은 각각의 개성이 뚜렷해 보는 재미를 더한다.
이화동과 관련한 사진 엽서. 엽서에는 이화동 곳곳을 수놓은 벽화 등이 담겨 있다. 사진=허미담 기자 damdam@asiae.co.kr
이예슬 대표(39)는 엽서를 '선물'이라 표현했다. "엽서를 쓰는 동안만큼은 온전히 편지를 받는 상대방을 위해 시간을 할애하게 된다. 상대방은 엽서와 함께 그만큼의 시간을 선물 받게 되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예상치 못한 누군가의 진심만큼 근사한 선물은 없으리라는 얘기다.
엽서의 단골 소재는 이화동이다. 이 대표에게는 더욱 특별한 동네다. 아무 연고도 없이 놀러 온 이 동네의 풍경에 반해 덜컥 자리를 잡게 됐다고 한다. 2015년 처음 이곳을 방문했을 무렵, 이 동네는 벽화마을로 유명했다. 그러나 몰려드는 관광객으로 인해 소음과 사생활 침해 문제 등을 겪었던 일부 주민은 2016년 들어 벽화를 일부 지웠다. 이런 모습을 지켜본 이 대표는 시시각각 변하는 마을의 모습을 엽서에 담기 시작했다. 마을 약도를 그린 것이 대표 엽서가 됐다. 이화동 곳곳에 남아있는 벽화 명소와 여러 가게의 위치를 표시하기도 했다. 새로운 상점이 생기는 등 변화가 일어나면 약도 또한 바로 수정한다.
이화상점을 찾는 이들은 누구일까. 의외로 주 고객층은 외국인 관광객이라고 한다. 한국적인 멋과 감성이 가득 담긴 엽서에 주목하는 것이다. 기념품으로도 손색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고양이 엽서 같은 독특한 제품을 비롯해 최소 3개 이상의 상품을 사간다고 한다.
이 대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전에는 북한만 빼고 전 세계 손님들을 다 만날 수 있을 정도였다"고 자랑했다. 단골 중에는 하와이에 거주하는 이도 있는데, 파일럿인 남편을 따라 한국을 들를 때마다 방문해 엽서를 사간단다.
고양이를 소재로 한 엽서들이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사진=허미담 기자 damdam@asiae.co.kr
원하는 날짜에 엽서를 보내주는 '센딩 서비스'는 또 다른 매력 포인트다. 구매한 엽서에 글을 써 원하는 날짜와 장소를 알려주면 가게에서 때에 맞춰 원하는 곳으로 보내준다. 지금 당장 보고 싶은 누군가에게 진심을 전할 수도, 특별한 날이 아니더라도 누군가를 기분 좋게 할 만한 선물이 될 수 있는 셈이다. 국내는 물론 외국 배송도 기본이다. 서비스 요금은 국내외 상관없이 모두 1500원이다.
손님 중 일부는 이곳의 마스코트 고양이 '철이'와 '미애'에게 각별한 관심을 갖기도 한다. 애교가 많은 두 녀석은 처음 온 손님들과도 스스럼없이 어울려 인기가 많다. 그러나 당분간 모습을 보기 힘들게 됐다. 코로나19 사태가 오래 이어지다보니 좀처럼 가게에 데려오기가 쉽지 않아서다. 이 대표는 "집에서 휴양 중"이라고 멋쩍게 말했다. 가게 곳곳에는 두 녀석의 흔적이 남아있다. 전신이 그려진 엽서부터 발바닥 모양의 배지까지, 고양이를 모티프로 한 디자인 용품들은 두 녀석을 떠올리게 만든다.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 느낌이 물씬 나는 엽서. 이 대표는 한 통의 엽서가 이화동을 찾는 이들에게 멋진 추억으로 남길 희망했다. 그는 "엽서는 받는 사람은 물론 쓰는 사람에게도 좋은 기념품이 된다"면서 "엽서를 쓰는 것이 여행자들에게도 멋진 경험으로 남으리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허미담 기자 damdam@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