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희기자
[아시아경제 박병희 기자] '사물놀이의 창시자' 예인 김덕수는 6·25 전쟁 중(1952년) 태어났다. 다섯 살 때 남사당패에 들어갔다. 아버지로부터의 대물림이었다. '수출만이 살 길이다'라며 경제 개발이 한창이던 시절, 김덕수는 한국민속가무예술단, 리틀엔젤스 등에 몸담았다. 세계 곳곳을 누비며 한국을 알렸다. 1978년 입지가 좁아진 전통 예술의 명맥을 잇고자 '사물놀이'를 만들었다. 1987년 6월 민주화 운동 때에는 시위 중 경찰의 최루탄에 유명을 달리한 연세대 학생 이한열의 넋을 위로하기 위한 진혼춤 '바람맞이' 공연에 참여했다.
68년 중 63년. 김덕수의 예인으로서의 삶은 굴곡진 한국 현대사를 관통한다. 오는 28~31일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음악극 '김덕수전(傳)'이 마련된 이유다. 세종문화회관과 현대차 정몽구재단이 공동으로 기획해 만든 명인 시리즈로 김덕수의 삶과 예술세계를 조망한다. 공연은 1, 2부로 나뉜다. 1부는 사물놀이 탄생 이전으로 김덕수씨의 어린 시절과 문화사절단으로 세계를 누비던 이야기를 다룬다.
김덕수씨는 11일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다섯 살 때인 1957년 아버지로부터 대물림을 받아 남사당패에 입문했다. '수출만이 살 길이다' 했던 시절이었다. 1960년에 한국민속가무예술단이라고 하는 예술단체가 창단했다. 그 단체에서 처음 해외공연을 나갔다. 이후 리틀엔젤스 단원으로, 1968년 멕시코 올림픽 때부터는 한국민속예술단으로 해외 공연을 다녔다. 1년에 6개월은 해외에 있었다."
김덕수씨는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도 떠올렸다. "해외 공연 때 몇 번 뵀다. 그 때마다 맛있는 밥을 사주셨던 기억이 난다."
김덕수씨가 11일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열린 '김덕수전' 기자간담회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 세종문화회관 제공]
김덕수씨는 1978년 사물놀이 공연을 처음 했을 때를 예인 생활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꼽았다. 그는 사물놀이에 대해 "아버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전통을 저희 세대에서 새롭게 창조적으로 계승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탈춤 판이든, 풍물 판이든 마당과 직결된다. 마당은 가장 한국적 미학의 근본이고 버릴 수 없는 것이다. 1960년대부터 마당에서 공연을 하면 집시법, 도로교통법으로 잡혀갔다. 우리 같은 전통 예인들은 살 길을 찾아야 했다. 소극장이 막 생길 때였다. 소극장에서 연주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라는 고민이 사물놀이 탄생의 배경이다. 실내 공간을 어떻게 마당화할 것이냐가 문제였다. 사실 거문고, 대금 외에도 우리 악기로 실내에서 한 공연도 많았다. 앉은반 고사라는 것도 있었다. 나는 좁은 무대 공간을 대청마루로 보고 병풍 치고, 돗자리 깔고, 제사상을 만들었다. 남사당 때 내가 본 마을의 집안 모습이었다. 공연 로비가 마을 어귀가 되는 셈이다."
김덕수씨는 1978년 2월20일 건축가 김수근씨가 설계한 창덕궁 옆의 '공간사랑'이라는 소극장에서 처음 사물놀이 공연을 했다. 사물놀이는 첫 공연 직후 국내외에서 폭발적인 호응을 얻으며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 중 하나로 세계에 알려졌다. 하지만 전통 예술계 내에서는 전통 계승 여부에 대한 논란이 적지 않았다. 지금도 일각에서는 사물놀이에 대한 좋지 않은 시각이 존재한다. 김덕수씨는 "많은 분들이 사물놀이가 마당이라는 풍물의 원형을 깬 것이라고 지적하지만 나는 전혀 다른 시각을 갖고 있다. 시각적으로 즐기던 놀이를 청각적으로 극대화한 것이 사물놀이"라고 말했다.
김덕수씨는 평양 공연과 1987년 바람맞이 공연도 기억에 남는 공연이라고 했다. 그는 1990년 10월 범민족통일음악회, 1998년 11월 윤이상통일음악회를 계기로 두 차례 평양에서 공연했다.
"우리는 하나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를 느꼈다. 어느 나라에서도 느끼지 못한 환영을 받았다. 1987년 박종철, 이한열군 죽음 때 연우 소극장에서 한 바람맞이 공연도 잊지 못할 공연 중 하나다. 그 때는 몰랐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사회 참여하는 광대 정신을 그때 보여준 것이었다."
왼쪽부터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 박형배 현대차 정몽구재단 사무총장, 김덕수씨, 어린 덕수 역을 맡은 강리우군, 박근형 연출, 오정화 세종문화회관 공연기획팀장 [사진= 세종문화회관 제공]
김덕수전은 1년여에 걸친 김덕수씨와의 일곱 차례 구술 인터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다.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가 제작총괄과 극본을, 극단 골목길의 박근형 대표가 연출과 각색을 맡는다. 무용가 정영두가 김덕수씨의 아버지 역할로 연기와 무용을 선보이며 오랜 시간 김덕수와 호흡을 맞춰온 국악그룹 '앙상블 시나위'가 음악을 연주한다. 김덕수씨도 직접 무대에 올라 60여년 예인 생활 동안 쌓은 기량을 선보일 예정이다. 공연은 한국 전통예술이 갖고 있는 종합예술적 면모를 볼 수 있는 무대로 구성되며 에필로그에서는 덕수타령을 처음으로 선보인다.
2부 공연에서는 사물놀이의 전성기 시절 이야기와 함께 김덕수씨 가족, 동료들에 대한 이야기로 채워진다. 김덕수씨는 사물놀이 원년 멤버들을 회고하면서 사물놀이를 함께 탄생시킨 그들에 대한 경의를 표할 예정이다. 김덕수씨는 "독백같은 씬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 지, 결국은 고해성사인데 가장 어려운 부분"이라고 했다. 그는 "세월이 많이 흐르다 보니 홍길동전, 춘향전, 흥부전은 들어봤지만 김덕수전이라고 해서 아주 생소했다. 중압감을 느꼈다"고도 했다.
박근형 연출은 "장인, 예술가로서의 면모는 당연하고 사람, 인간으로서의 모습도 보여주고 싶다. 흥이 나는 공연의 그 이면에서 힘든 일도 겪었을 것이고 그만큼 노력했을 것이다. 그런 모습들들이 관객들에게 느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평범한 사람이 큰 산이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비바람을 맞고 이겨냈는지 느끼게 해주고 싶다. 또 공연을 통해 우리의 어르신들이 가난하지만 따뜻하게 살아왔던 시절을 되새기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