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길기자
신찬벽온방
‘신찬벽온방(新撰?瘟方·보물 1087호)’은 허준이 1613년 광해군의 명을 받아 편찬한 의서다. 17세기 출현한 온역(溫疫·티푸스성 감염병)을 예방하고 치료하는 방법이 담겼다. 온역은 1612년~1623년 조선 전역에 창궐했다. 허준은 전염 원인으로 크게 세 가지를 주장했다. 자연 운기의 변화와 함께 위로받지 못한 영혼과 청결하지 못한 환경, 청렴하지 않은 정치다. 공동체가 고통을 분담해 대처하는 인술(仁術)과 통치자의 반성이 있어야 종식된다고 역설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혼란에 빠진 지금도 다르지 않다. 공포를 함께 이겨내고자 하는 의지가 필요하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선조들이 전염병을 어떻게 이겨냈는지 돌아보는 테마전을 마련한다. 상설전시실 1층 중근세관 조선2실에서 6월21일까지 하는 ‘조선, 역병에 맞서다’이다. ‘신찬벽온방’ 등 전염병 극복 의지가 담긴 자료 스물일곱 건을 전시한다. 박물관 관계자는 “전염병은 끔찍한 공포이기도 하지만 인류 역사에서 큰 변곡점이 되기도 했다”며 “지금보다 더 참혹했을 역병 속에서도 삶을 살아낸, 그 공포를 적극적으로 함께 이겨내고자 했던 선조들의 의지를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제중신편
‘신찬벽온방’ 못지않게 널리 알려진 자료로는 ‘등준시무과도상첩(登俊試武科圖像帖)’이 꼽힌다. 1774년 무과 합격자 열여덟 명의 얼굴을 담은 초상화첩이다. 김상옥, 전광훈, 유진하의 얼굴에서는 두창(痘瘡)의 흉터가 보인다. 천연두(天然痘), 마마(??) 등으로도 불린 급성 전염병이다. 오한·두통·요통 등의 증세와 함께 피부 및 점막에서 발진이 나타난다. 환자와의 접촉으로 전파되는데, 밀폐된 실내에서 공기전염되기도 한다. 두창을 앓고 회복한 사람에게는 곪은 부분에 생긴 딱지가 떨어지면서 피부 표면이 움푹 파이는 흉터가 생긴다. 일명 ‘얽은 자국(곰보)’이다. 박물관 관계자는 “조선 시대 초상화에서 두창 흉터가 자주 발견된다”며 “그만큼 당시 두창이 만연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무시무시한 위력은 예학자 정경세가 쓴 제문에서도 짐작할 수 있다. 두창에 감염돼 죽은 아들을 기리는데, 전염병의 참상과 슬픔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노론의 대표 학자인 이재는 시를 남겼다. 두창에 걸린 두 손자를 치료해 준 의원의 의로움과 의술에 감사를 표기하기 위해서다. 당시 의술 수준은 ‘제중신편’에서 확인된다. 어의 강명길이 정조의 명을 받아 편찬한 종합 의서다. ‘동의보감’ 뒤 발전한 의학 이론과 민간의 임상 경험이 체계적으로 정리됐다. 박물관 관계자는 “관주도 의료 체계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실용성과 전문성을 겸비한 새로운 표준 의서를 제시해 민간의료를 지원하고자 했다”고 했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