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한 詩] 낮잠/이담하

낮잠은 밀린 잠의 이자

자꾸 잠의 빚을 진다

떨어지지도 달아나지도 않는 잠

매일 갚아도 원금보다 늘어나는 이자

잠이 들어서도 중얼거리며 갚는 중이다

■ 덥다. 더워서 밤에 도통 잠을 잘 수가 없다. 찬물로 샤워를 하고 에어컨을 틀어 놔도 더운 기는 영 가시질 않는다. 그래서 요즘은 밤이면 밤마다 자는 둥 마는 둥 거의 뜬눈으로 밤을 새운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낮이면 매일같이 꾸벅꾸벅 존다. 일이 없는 날엔 아예 대놓고 잘 때도 있다. 요맘땐 하루가 그냥 그렇게 가곤 한다. 그런데 이런 여름날의 낮잠은 뭐랄까, 생경하고 허망하고 슬프다. 말하자면, 자고 일어났는데 오후라고 할 수도 없고 저녁이라고 할 수도 없고 그래서 어색하고 낯설면서도 뭔가를 시작하기엔 좀 늦은 것 같긴 한데 그렇다고 하루가 다 지난 것은 아니어서 애매하고 그러다 울컥하는 마음도 들고 괜히 서럽고, 여하튼 자고 일어나면 좀 그렇다. 꼭 내 나이처럼 말이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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