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무줄 잣대' 산안법, 연중 '공장 셧다운' 우려도

산업안전보건법 우려 확산
경총 등 경제 4단체 의견 취합
55조 사고땐 동일작업 중지 가능
공장 전면중단 수백억 손실 발생
중지해제 심의위 구성에만 며칠
도급인 안전조치 범위도 모호

[아시아경제 안하늘 기자] "공정 한 곳에서 사고 났다고, 전체 공장 문 닫아야 하나요?"

정부가 추진 중인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에 대해 산업 현장에서는 세부 규정이 모호해 자칫 연중 '공장 셧다운'이 될 수 있다는 우려를 하고 있다.

31일 업계에 따르면 대한상공회의소, 한국경영자총협회, 중소기업중앙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 등 경제 4단체는 조만간 고용노동부에 산안법 시행령과 관련한 의견서를 제출한다. 이들 경제단체는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업종별 협회를 통해 의견을 취합했다.

정부는 지난해 10월 산업 현장의 안전규제를 대폭 강화하는 산안법 전부개정안을 의결했다. 이어 지난 4월 법안의 세부 내용을 담은 시행령을 입법 예고 했으며, 다음 달 3일까지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수렴한다.

산업 현장에서는 법의 취지와 필요성에 대해서는 인정하면서도 세부 내용이 구체적이지 않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고무줄 잣대'로 인해 경영 환경이 크게 악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업계에서 가장 난감해하는 대표적 내용은 중대재해 발생시 고용부 장관이 해당 작업과 동일한 작업에 대해 작업 중지를 명령할 수 있다는 '작업중지(55조)' 조항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디스플레이 공장 경우 수많은 반복 공정으로 이뤄져 있는데, 산안법 시행 규칙을 적용하면 한 공정에서 난 사고로, 공장 전체가 멈출 수 있다"며 "공장이 하루만 멈출 경우 수백억원의 손실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제조업의 경우 공정이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만큼 한 공정에 대한 작업 중단 만으로 공장 전면 중지와 같은 효과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교수 "본 조항을 위반할 경우 5년 이하 징역, 5000만원 이하의 벌금이라는 형사처벌을 받게 된다"라며 "국민 기본권에 직결되는 만큼 엄격한 해석을 통해 법을 집행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작업중지를 해제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작업중지해제 심의위원회'를 별도로 개최, 위원회 의결을 받아야한다는 내용도 다소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다. 개정안에서는 작업중지에 따라 고용부 근로감독관이 사업장을 확인한 이후 별도로 외부 전문가가 포함된 심의위원회 개최해 심의 후 이를 해제하기로 했다.

경제단체 한 관계자는 "300인 이상 사업장의 경우 2명의 외부 전문가가 포함된 위원회를 꾸려야 하는데, 이를 구성하는데만 수일이 걸려 문제를 해결하고도 3~4일간 공장 문을 닫아야 하는 상황이 발생될 수 있다"라며 "조치가 간단한 사고의 경우 현행처럼 고용부 근로감독관의 판단으로 작업중지 해제가 가능하도록 해야한다"고 말했다.

도급인의 안전조치에 대한 내용과 범위가 너무 포괄적이고 불명확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산안법 63조에서는 도급인이 제공, 지정한 장소에 대해 도급인과 동일한 안전ㆍ보건조치 해야한다고 명시돼 있다. 법조문을 넓게 해석하자면, 서울에 사업장을 가지고 있는 도급인이 지방 협력사를 통해 부품을 받는 경우에도 해당 업체에 도급업체와 같은 안전 보건 시설을 마련해줘야 한다.

또 전문성이 없어 도급을 계약을 맺는 경우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가령 엘레베이터에 문제가 발생해 수리를 맡기는 경우에서도 원청 근로자가 수리 업체에 대해 안전ㆍ보건에 대한 지도감독을 해야한다.

김형현 한국경영자총협회 안전보건본부 책임위원은 "법조문에 도급인이 '제공ㆍ지정한' 장소가 어디까지인지에 대한 설명이 전혀 없다"며 "도급인이 해야 할 의무의 내용 역시 규정돼 있지 않아 현장에서는 다양한 혼란이 발생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안하늘 기자 ahn708@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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