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한 詩]반쯤/고운기

토요일의 햇살은 반쯤 누워 오는 것 같다

반공일처럼

반쯤 놀다 오는 것 같다

종달새한테도 반쯤 울어라 헤살 부리는 것 같다

반쯤 오다 머문 데

나는 거기부터 햇살을 지고 나르자

반쯤은 내가 채우러 갈 토요일 오후의 외출.

■예전엔 토요일을 반공일(半空日)이라고 불렀다. 오전에는 일을 하고 오후에는 놀았기 때문이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토요일이면 왠지 싱숭생숭하고 공연히 좀이 쑤시곤 했다. 업무를 마치고 나면, 물론 어딘가에 매여 있지 않은 사람이더라도, 토요일엔 누군가를 만나거나 뭔가 재미있고 그럴듯한 일을 해야만 할 것 같았다. 아마도 하루 종일이 아니라 그 절반이 주는 애틋함과 또한 꼭 그만큼 갑절로 부푼 기대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내일이 토요일이다. 내일 하루는 햇살도 "반쯤 놀다 오"도록 내버려 두자. 그냥 그렇게 햇살과 함께 좀 쉬자. 왕사탕 두 알을 양 볼에 쟁여 놓고 오후엔 무얼 할까 누굴 만날까 그런 괜한 생각이나 하면서.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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