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한 詩]심해어/진수미

내게는두 개의 눈이 있고눈을 반쯤 감은 현실이 있고스크린이 있고액자처럼세계를 껴안은 어둠이 있다.어둠은 사라지지 않는다.당신의 이름도 사라지지 않는다.스크린에는하염없이 이어지는 빗줄기가 있고납작 엎드린 고요가 있고우리는왜 이리 슬픈 일이 많은 건가요?지층처럼 단단해진 어둠못생긴 입술이 있고눈을 감으면왜 동시에 감기나요?느릿느릿 어둠을툭 밀어내는 물음이 있고
■시인이 밝힌 바에 따르자면 "우리는" "왜 이리 슬픈 일이 많은 건가요?"는 "장애인 야학 수업에서 한 학생이 던진 질문을 그대로 옮"긴 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심해어'는 '깊고 깊은' 바닷속이 아니라 그곳에서도 '가장 낮은' 곳에 사는 물고기인 셈이다. 이런 맥락에서 "눈을 감으면" "왜 동시에 감기나요?"는 우리 세계의 '심해'에 사는 사람들을 보고도 못 본 척 두 눈을 감아 온 우리를 향한 질책일 것이다. 아니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바로 우리가 장애인을 저 '심해' 속으로 가두어 버린 "어둠"인 것이다. 채상우 시인<ⓒ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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