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원래 혼자였다

명법스님(구미 화엄탑사 주지)

나이든 사람들 중에는 주변에 사람이 없다고 하소연하는 분들이 많다. 젊었을 때는 친구도 많고 아는 사람도 많았는데 언젠가부터 주변에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그 중에는 생사를 달리한 이도 있고, 사는 곳이 달라지고 일하는 공간이 달라져서 만나지 못하는 이도 있다. 그뿐만 아니다. 가까이 있지만 만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서로 의리가 상해서, 서로 실망해서 가까이 있으면서도 연락을 취하지 않거나 연락하고 싶어도 못하는 이들이 있다. 좋은 사람이었는데 미처 깨닫지 못해 놓친 사람도 있고, 오해나 실수로 멀어진 사람도 있다. 돌아보면 아쉽고 후회되지만 시간을 돌이킬 수 없으니 어쩌겠는가.그리고 역설적이지만 서로 너무 잘 알기 때문에 만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중에는 잘 나갈 때 주변에 몰려들었다가 그렇지 않은 듯하자 일찌감치 떨어져나간 이들도 있고, 단물 다 빨아먹고 나서 배신하고 떠난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믿을 것은 피붙이 밖에 없다고 하여 일가친척만 챙기는 사람들도 있다.그런데 전통적인 의미의 가족이 해체되고 일인가구가 급속히 증가하고 있는 오늘날, 끝까지 내 곁에 남아줄 사람이 가족일까 의심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15년 기준으로 일인가구가 전체의 36.3%에 육박한다고 한다. 고령화와 저출산 탓에 젊은 세대뿐만 아니라 노인 세대에서도 일인가구가 증가하고 있다.최근에 만났던 젊은 직장여성은 가족이 가장 큰 숙제라고 토로했다. 가족이 짐이고 형벌인 사람들에겐 가족은 최후의 보류가 아니라 어서 빨리 벗어나야 할 구속에 불과하다. 사람 귀한 줄 몰랐던 어느 전직 대통령에게 가족은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 중한 것이었는지 몰라도, 그가 보여준 가족에 대한 맹목적인 집착은 반대로 가족이 더 이상 완전하지도, 견고하지도 않으며, 욕망으로 얽힌 허약하고 불완전한 제도라는 사실을 확인시켜주었을 뿐이다.가족의 구속에서 벗어나 혼자 사는 사람들에게는 혼자 사는 편함과 자유로운 의사결정의 반대급부로 고독은 피할 수 없는 것이 되었다. 그러고 보면 자유로운 의사결정이 진짜 자유로운 결정인지 의심스럽다. 다른 한편으로 원치 않아도 혼자 살아야만 하는 사람, 버려진 사람도 늘어나고 있다.이 불안하고 불완전한 세상에서 사람만큼 소중한 존재도 없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감하듯이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이 사람과 함께 사는 일이다. 시중에 나온 자기계발서에는 여러 가지 조언들이 넘쳐나지만, 결국 이 문제는 공동체의 회복을 통해서만 극복될 수 있을 것이다.하지만 불교적 관점에서 본다면 사람은 원래 혼자다. 이 세상에 올 때도 혼자 왔고 갈 때도 혼자 갈 테니까 말이다. 나이가 들었다고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없어진 것이 아니라 원래 없었는데 나이가 들고 나서야 그 사실을 깨달았을 뿐이다. 젊었을 때는 헤어졌다가도 다시 만나기도 하고, 그들이 아니라도 다른 사람들이 있어 사람 귀한 줄 몰랐다가, 나이가 들면서 새삼 주변에 사람이 없음을 실감하게 되는 것이다.따라서 정말 필요한 것은 서툰 테크닉보다 원래 혼자였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것이 아닐까? 믿고 의지할 누군가를 찾으려는 헛된 기대와 쓸데없는 희망을 품지 않고 원래 혼자임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오히려 소외된 고독과 욕망을 넘어 진짜 소통과 연대의 기반이 아닐까?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스스로 등불이 되라고 한 부처님의 마지막 말씀을 전하고 싶다.명법 스님 구미 화엄탑사 주지<ⓒ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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