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한 詩] 그냥/이순희

치렁치렁한 변명도 필요 없고날 선 긴장감도 없는몸빼같이 헐렁한 '그냥'이라는 말이 헐렁한 말의 옷 한 벌머리맡에 걸어 두었네어느 하루 아득한 날그 치장기 없는 말의 옷을 입고당신을 찾아갔네그냥이라고옷매무새를 매만지는 나에게당신은 고개를 끄덕여 주네긴 시간 너머를 다 이해한다는 듯,■'그냥'이라는 말, 참 한없는 말, 한없이 하염없는 말, 한없이 하염없고 하염없어서 무연한 말. 아무리 생각하고 생각해 봐도 다만 미안하고 미안해서 '그냥'이라는 말 말고는 달리 할 말이 없는 말. 달리 할 말이 하나도 남지 않아 그저 나 혼자 중얼거리는 말. 자꾸 중얼거리다 그 뜻도 까닭도 놓친 말. 그러다 싱거워지는 말. 짠맛도 단맛도 모두 사라지고 보탤 맛도 덜어 낼 맛도 남지 않은 말. 싱겁다 못해 "헐렁"해진 말. 하도 헐렁해 아득해진 말. 그런 말 하나 들고 "긴 시간 너머" 문득 찾아갔더니 당신 또한 오롯이 "그냥"이라고만 하네. '그냥' 이젠 다 괜찮다고. 채상우 시인<ⓒ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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