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종기자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
이날 권 부회장은 "지난 25일 서울중앙지방법원의 1심 판결을 보고 여러분 모두 상심이 크실 것으로 생각한다"며 "저희 경영진도 참담한 심경"이라고 말했다. 이어 "변호인단은 '1심의 법리판단, 사실인정 모두에 대해 수긍할 수 없다'며 항소를 결정했다"며 "불확실한 상황이 안타깝지만 우리 모두 흔들림없이 진실이 밝혀지기기를 기다린다"고 말했다. 간접적으로 이번 1심 선고에 대한 불만을 드러냈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권 부회장에 이어 윤부근 대표는 지난 31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IFA2017 국내 기자 간담회도 현재 심경을 가감없이 드러냈다. 글로 표현된 권 부회장의 메시지가 정제돼 있었다면 윤 대표의 발언은 보다 직설적이었다.윤 대표는 자신과 같은 전문경영인을 '선장'에, 삼성전자를 '선단'에 비유하면서 "지금은 선단장이 부재중이기 때문에 미래를 위한 투자라든지 사업구조 재편에 대한 애로사항이 많다"고 말했다. 각 전문 경영인이 해당 사업을 잘 이끌 수는 있으나 큰 틀의 사업재편이나 장기적인 전략 수립까지 하기에는 어렵다는 것이다. 윤 대표는 "어떻게 보면 개인적으로는 참 무섭다"며 "워낙 변화가 빠르기 때문에 함대가 가라앉는 것은 순식간이고 잠도 잘 못잔다. 참담하고 답답하다"고 현재 심경을 토로했다.◆윤 대표, "함대가 가라앉는 것은 순식간…잠도 못자"=정보기술(IT) 산업이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총수 부재로 중요한 의사결정이 계속 지연될 경우 삼성전자가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다는 위기감을 표현한 것이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최근 인공지능(AI) 업체를 인수하려 했다 안타깝게 무산된 경우도 있었다고 윤 대표는 전했다.이번 1심에서 이재용 부회장 실형 선고 이후 일각에서는 "이 부회장 없이도 삼성전가가 최고의 실적을 거듭하고 있다"며 위기론을 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삼성전자가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데서 비롯된 오해라는 게 삼성전자 고위 관계자들의 일관된 지적이다.이날 윤 대표도 전문경영인이 1~2년의 전략을 짤 수는 있지만 삼성그룹과 삼성전자의 장기적인 사업구조 개편까지는 결정하기는 어렵다는 점을 강조했다. 윤 대표는 "현장을 보고 거기서 보고 듣고 느끼고 글로벌한 네트워킹을 통해 세상의 리더를 만나고 그걸 통해 얻는 인사이트(통찰력)를 통해 미래를 만들어나가야 하는데 그걸 하나도 못하고 있다"고 우려했다.윤부근 삼성전자 대표
이 부회장은 중국 보아오포럼, 미국 선밸리컨퍼런스 등 국제적인 행사에 참여하면서 해외 주요 인사와 글로벌 기업 최고경영자(CEO)들과 교류해왔다. 이를 통해 세계적인 트렌드를 읽고 삼성전자의 차기 먹거리를 준비해왔다. 대표적인 것이 하만 인수를 통해 본격적으로 전장 사업에 진출한 것이다. 이러한 일은 권오현 부회장, 윤부근 대표, 신종균 대표 등 전문 경영인이 대신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당장 삼성전자는 반도체 초호황에 힘입어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하고 있으나 이러한 상황이 계속되리란 보장은 없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1~2년 이후에는 메모리 반도체 성장도 정체될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 기업들이 반도체, 디스플레이, 스마트폰, TV, 가전 등 현재 삼성전자가 1위를 하고 있는 각 분야에서 무섭게 쫓아오고 있다. 3~5년 후에 삼성전자가 현재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한때 전세계 휴대폰 1위를 지키던 핀란드 노키아는 스마트폰 시대에 대응이 늦어 한순간에 몰락했다. 윤부근 대표가 "함대가 가라앉는 것은 순식간"이라고 표현한 것도 이같은 상황을 우려한 것이다.재계에서는 일본 전자 기업들이 쇠퇴를 거듭하고 있음에도 삼성전자가 꿋꿋이 글로벌 IT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것은 오너를 중심으로 신속하고 과감하게 의사결정을 했기 때문으로 분석하고 있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지난 2월 이부회장 구속 이후 이렇다할 인수합병(M&A)을 하지 못하고 있다. 윤 대표는 "오너십의 발로가 오늘의 삼성을 이뤘다"며 "지금은 이 부회장 부재로 그런 게 막혀 있어 두렵고 무섭기까지 한다"고 안타까워했다.강희종 기자 mindle@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