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길의 영화읽기]백인우월주의로 요리한 당근 케이크

조던 필레 감독의 '겟 아웃'

영화 '겟 아웃' 스틸 컷

[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조던 필레 감독(38)의 영화 '겟 아웃'은 흑인남자 크리스 워싱턴(다니엘 칼루야)이 백인 여자친구 로즈 아미티지(앨리슨 윌리암스)의 부모 집을 방문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공포 스릴러다. 또 다른 흑인남자가 납치되는 신으로 문을 연다. 투구를 쓴 남성이 뒤에서 불쑥 나타나 목을 조른다. 쿠 클럭스 클랜(Ku Klux Klan)을 연상하게 하는 폭력이다. 백인우월주의 비밀결사단체로, 복면과 마스크를 쓰고 흑인과 흑인 해방에 동조하는 백인들에 테러를 자행했다. 그 회원은 한때 600만 명에 이른 것으로 추정된다. 아미티지의 집과 마을은 KKK와 같이 가족 모임의 성격을 보인다. 한마음으로 워싱턴을 환대하고 그가 방심한 틈을 타 최면을 건다. 이어 노예 경매나 다름없는 빙고게임을 한다. 낙찰된 이의 뇌를 흑인의 머리에 심어 새로운 삶을 부여한다는 설정이다. 이 반전은 극 초반 배치된 저녁식사 신에서 암시된다. 로즈의 남동생 제레미 아미티지(케일럽 랜드리 존스)와 워싱턴의 대화다. "이종격투기 좋아해요?" "UFC 같은 거요?" "네" "안 좋아해요. 너무 잔인해요." (중략) "당신 체형이나 유전적 장점 때문에 운동을 열심히 했다면 짐승처럼 강했을 거예요." 제레미의 어머니가 등장해 싸늘해진 분위기를 환기시킨다. "당근 케이크 대령이오." 이 음식은 중세 유럽에서 유래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설탕이 귀해 당근으로 단맛을 냈다. 2차 세계대전 때 물자가 부족했던 영국에서도 설탕 대신 당근을 배급했다. 먹기 장려운동도 했다. 아미티지 가족에게 워싱턴은 당근과 같다. 제레미는 워싱턴이 사진을 잘 찍는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외형만 보고 상품성이 낮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영화 '겟 아웃' 스틸 컷

그런데 이 전반에 내재된 백인우월주의는 KKK와 성격이 판이하다. 이마누엘 칸트는 저서 '실용적 관점에서의 인류학'에서 흑인을 인류의 최하 등급으로 분류했다. 과학적 인류다원론을 창시한 존 앳킨스는 흑인은 원숭이와 교잡이 가능하다고 주장했으며, 유기분자설을 수립한 조르주루이 르클레르 뷔퐁도 흑인이 모든 면에서 원숭이 같은 동물이라고 했다. 프랑스의 여행가 프랑수아 베르니에의 논문에서 아프리카인은 '스패니얼종의 개'로 표현되기도 한다. 언어학자들은 이들을 가리켜 '함'이라 불렀다. 함은 성경 창세기에서 대홍수를 피하는 노아의 셋째 아들이다. 포도주를 마시고 취해 천막 안에서 벌거벗은 채로 잠이 든 아버지를 보고 비웃는다. 다른 두 아들인 셈과 야벳은 노아의 몸을 다소곳이 옷으로 덮어준다. 잠에서 깬 노아는 함이 자신을 업신여겼다며 함의 자손 가나안에 저주를 내린다. 이들이 영원히 셈과 야벳의 자손들의 종이 될 것이라고 선언한다. 히브리어 본에 노아의 아들 각각의 후손들이 특정 피부색을 띠게 됐다는 이야기는 없다. 그러나 기독교가 전파되기 시작하면서 검은 인종을 함의 자손으로 여기는 전통이 생겼다. 훗날 흑인노예제도는 이를 근거로 한 저주로 여겨졌다.

영화 '겟 아웃' 스틸 컷

겟 아웃에서 흑인은 최하 등급의 인종이 아니다. 오히려 백인들은 그들의 장점을 인정하고 탐한다. 다른 인종을 향한 시선도 다르지 않다. 로즈의 아버지 딘 아미타지(브래드리 휘트포드)는 워싱턴에게 집을 소개하면서 발리에서 사온 장식품을 자랑한다. "여행을 갈 때마다 기념품을 사오게 된단다. 서로 다른 문화를 체험할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특권이지." 그는 이미 세 차례 이식 수술에 성공했다. 1936년 베를린올림픽에서 제시 오언스에 밀려 본선을 뛰지 못한 아버지에게 튼튼한 근육을 안겼고, 당근케이크를 해주던 어머니에게 젊음을 선사했다. 흑인 특유의 예술적 감성에도 군침을 흘린다. 음악가 앤드류 로건 킹(키스 스탠필드)에 이어 워싱턴의 몸까지 빼앗으려 한다. 여기에 내재된 백인우월주의는 자신들이 흑인보다 현명한 판단을 한다는 확신에서 비롯된다. 당근케이크를 두고 다시 이어지는 제레미의 말이 이미 모든 것을 설명한다. "주짓수에서 힘의 차이는 큰 의미가 없어요. 전략적인 움직임이 중요하죠. 체스와 같이요. 남들보다 한두 수를 먼저 읽어야 이길 수 있죠."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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