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시간끌기 3가지 노림수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 신사옥

책임회피 위한 명분쌓기 포석'협상력 극대화' 차원의 전략실추된 이미지 회복 위한 의도[아시아경제 최동현 기자] 국민연금의 시간끌기 전략으로 대우조선해양의 회생 가능성이 불투명해졌다. 겉으로 보기엔 국민 노후자금의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신중한 자세를 취하는 듯 보이지만 그 내면엔 조직 보호 차원의 정치적 의도가 깔린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연금이 이번 '치킨게임'에서 얻고자 하는 것 세가지를 짚어봤다. 우선 국민연금이 장고(長考)를 거듭하는 가장 큰 목적은 책임 회피를 위한 '명분쌓기'로 풀이된다. 국민연금은 대우조선 채무조정안에 대해 수용과 거부 어느 쪽을 선택해도 수천억원대의 손실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나이스신용평가는 국민연금이 채무조정안을 받아들이면 2682억원, 거부하면 3887억원의 손실을 볼 것으로 평가했다. 하지만 대우조선의 회생 여부가 불확실해 어떤 입장을 따르더라도 그에 따른 추가 손실 가능성은 열려있다. 이에 대비한 일종의 '면피성 알리바이'가 필요한 셈으로 '변양호 신드롬'의 단면이다. 국민연금이 그동안 대우조선 채무조정안에 대한 판단 유보의 근거로 KDB산업은행으로부터 건네받은 자료가 불충분하다는 점을 수차례에 걸쳐 강하게 언급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국민연금은 11일에도 "분석하기에 충분치 않게 제공된 자료를 근거로 해당 회사의 재무상태와 향후 회생가능성을 가늠해 제시된 채무조정안에 대한 수용 여부, 즉 사실상의 손실을 선택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거듭 강조했다. 만약 투자자인 국민연금이 분식회계가 적발된 대우조선과 이에 대해 일정한 책임을 져야할 산업은행에 자료의 신뢰성을 담보하라는 요구를 하지 않으면 오히려 추후 귀책사유가 될 가능성이 높다. 상대적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한 '협상력 극대화' 차원에서도 국민연금이 시간끌기 전략을 택했을 수 있다. 산업은행은 현재 모든 이해관계자의 고통 분담 원칙을 고수하고 있으나 국민연금은 대주주인 산업은행이 보다 큰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국민연금은 앞서 산업은행에 출자전환 비율 및 전환가액, 신규 투입자금, 만기연장 비율 등 사채권자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으로 채무조정안을 수정할 것을 요청했다.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등의 추가 감자와 오는 21일 만기가 돌아오는 회사채(1900억원 규모)에 대한 우선상환 등 회사채 원금 일부 상환이나 상환 보증 등도 요구했다. 산업은행의 자료가 불충분하다며 '사실상 거부' 의사를 밝힌 와중에도 특정 조건을 제시하며 산업은행을 압박한 것이다. 하지만 산업은행은 추가 감자와 이달 만기도래하는 회사채 우선상환 요구에 대해 수용 불가 방침을 전했다. 국민연금은 11일 평소와 달리 장문의 보도자료를 통해 "시간을 갖고 이해관계자 간 인식을 공유해 나가는 과정이 선행돼야 한다"며 "이해관계자와 협의된 방안이 도출될 수 있도록 대우조선과 대주주 측의 결단을 촉구한다"고 산업은행을 재차 압박했다. 공식 문서를 통해 처음으로 사실상 거부 의사도 피력했다. 이날 전주를 찾아오기로 한 정용석 산업은행 부행장과 만남에서 협상 주도권을 쥐겠다는 의도가 깔렸던 것으로 풀이된다. 국민연금은 정 부행장과의 만남에서 4월 만기 채권의 원리금 상환을 3개월 유예 하는 것과 제3의 기관을 통한 대우조선의 자료 검증, 오는 17~18일 예정된 사채권자 집회 연기 등을 요구했다. 하지만 산업은행이 구조조정 지연으로 회생 가능성이 낮아진다며 이를 거절하면서 상황은 엎치락뒤치락을 반복하고 있다. 국민연금이 지연전략을 펴며 금융당국 및 산업은행과 대립각을 세우는 것은 그동안 실추된 이미지를 회복하기 위한 목적이 있는 것으로도 보인다. 국민연금은 현재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로 정치·경제 권력의 사금고로 전락했다는 여론의 비판을 받고있다. 이에 연루된 문형표 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구속 기소됐고, 홍완선 전 기금운용본부장은 불구속 기소됐다. 이 같은 상황에서 캐스팅보트를 쥔 국민연금이 2000만 국민연금 가입자의 이익을 위한다는 대의명분 하에 소송도 불사하며 금융당국과 대주주를 압박하는 행위 자체가 기존 이미지를 벗겨내는 데 일조할 수 있음을 의식한 것일 수도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국민연금이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고 있는 것"이라며 "국민연금이 요구한 자료는 다 제공 했으며 어떤 의도를 갖고 있는지 도무지 모르겠다"고 푸념했다.최동현 기자 nell@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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