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글라이더'는 왜 기러기아빠들의 눈물을 닦아줄 수 없나
영화 '싱글라이더' 스틸 컷
※ 이 기사에는 영화 스포일러가 될 만한 부분이 있습니다. [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영화 '우아한 세계(2007년)'에서 주인공 강인구(송강호)는 기러기아빠다. 거실에서 혼자 라면을 먹으며 텔레비전을 본다. 캐나다에 있는 아내와 자식들의 행복한 모습이 담긴 영상. 강인구는 미소를 짓지만 이내 처량하게 눈물을 흘린다. 22일 개봉한 '싱글라이더' 속 강재훈(이병헌)도 비슷한 처지다. 증권사 지점장인 그는 아들 진우(양유진)의 교육을 위해 기러기아빠가 됐다. 부실채권 사건이 터져 벼랑 끝에 몰리지만 아무 위로도 받지 못한다. 호주 시드니로 찾아가 가족을 바라보며 자신의 삶을 돌아본다.이 영화는 아이러니하게도 기러기아빠들의 눈물을 조금도 닦아주지 못한다. 주요 갈등으로 아내 이수진(공효진)의 외도를 배치했다. 강재훈이 훔쳐보며 괴로워한다. 이주영 감독은 남편의 이름이 적힌 이민신청서로 이수진의 진심이 다르다고 관객을 설득하려 한다. 그러나 영화에서 한 시간가량 이어져온 갈등이 종이 한 장으로 무마될 수는 없다. 그래서 태즈메이니아로 떠나 평온을 되찾는 강재훈의 얼굴은 이질적으로 다가온다. 이 감독과 이병헌은 "모든 걸 내려놓고 세상과의 이별을 받아들이는 느낌을 줬다"고 했다. 글쎄, 갈등이 어설프게 봉합돼 긍정적 결말을 서둘러 유도하지는 않았을까.
영화 '싱글라이더' 스틸 컷
이런 결말은 강재훈이 가족에게 큰 상처를 줬을 경우에 가능하다. 하지만 그의 잘못은 아내를 억지로 호주에 보낸 일정도다. "가족을 보내고 2년 동안 한 번도 궁금하지 않았다"는 고백이 있지만, 이는 이수진의 행위를 변호하기 위한 인위적 대사다. 강재훈이 왜 기러기아빠가 됐는지를 설명하는 신과 대치되기도 한다. 이수진이 이민신청서에 남편의 이름을 적는 장면도 개연성이 떨어진다. 그녀는 남편에게 전화하지만 생일은 기억하지 못한다. 남편과 연락이 닿지 않아 초조할 때 함께 설치했던 보조키를 떠올리지도 못한다. 이 감독은 "시나리오 초안에서 강재훈은 매우 나쁜 남성이었다"고 했다. 이유를 묻자 "절대 밝히지 않겠다"고 했다.이 영화는 공개되기 전부터 베일을 칭칭 감았다. 홍보의 핵심어로 '충격적 진실', '반전' 등을 사용했다. 뚜껑을 열어보면 김이 샌다. M. 나이트 샤말란 감독(47)이 이미 18년 전 '식스 센스(1999년)'에서 말콤 크로우(브루스 윌리스)를 통해 그린 유령 설정이다. 강재훈은 크로우처럼 단벌을 입고 가족 주위를 맴돈다. 이런 틀은 시나리오의 뼈대를 세우는 과정에서 얼마든지 빌릴 수 있다. 그러나 세부 설정이나 묘사까지 그대로 가져온다면 얘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이 감독은 "식스 센스를 촬영 직전에 처음 봤다"고 했다. 그런데 놀라울 만큼 비슷한 부분이 많다.
영화 '싱글라이더' 스틸 컷
강재훈은 크로우처럼 일에 파묻혀 살다가 특별한 날(생일·결혼기념일)에 숨진다. 워킹홀리데이로 호주를 찾은 지나(안소희)는 콜 세어(할리 조엘 오스먼트)가 크로우에게 그랬듯 강재훈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이수진의 외도 또한 안나 크로우(올리비아 윌리암스)의 새로운 사랑과 흡사하다. 엔틱 골동품상점을 운영하는 안나는 함께 일하는 젊은 남성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질투에 사로잡힌 크로우는 돌멩이를 창문에 던져 로맨틱한 분위기를 망친다. 샤말란 감독은 이 신에 크로우와 세어의 대화를 삽입했다. "세상에서 가장 얻고 싶은 것이 뭐예요?" …(중략)… "아내와 다시 얘기하는 것. 예전처럼 말이야." "방법은 있으세요?" "내 가족부터 돌봐야겠어. 가족은 신경 안 쓰면 무너지거든." 싱글라이더에서도 가족을 강조한다. 그런데 이수진과 안나는 동일선상에서 비교할 수 없다. 안나는 남편이 죽고 이듬해 가을이 돼서야 새로운 사랑을 한다. 크로우는 그런 그녀를 이해한다. 이수진은 남편이 죽은 줄 모르고 불륜을 한다. 이때 강재훈의 태도는 크로우와 비슷하다. 이 정도로 빠르게 이해가 되려면 강재훈에게도 그만한 잘못이 있어야 한다. 이 영화는 이병헌의 소속사인 BH엔터테인먼트에서 제작에 참여했다. 혹시 이 감독이 말하지 못하는 초안 속 강재훈의 잘못이 '외도'는 아닐까.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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