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서울시장 7일 오후 폐지론 제기...시대적 흐름 못 따른 헛발질 행정 등 스스로 위기 초래...조기 대선 이후 정부 조직 개편에 미칠 영향 주목
[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1948년 정부 수립 후부터 각 부처들의 '맏형' 노릇을 해 온 행정자치부(옛 내무부)의 위상이 예전 같지 않다. 최근 들어 시대적 흐름과 소통하지 못한 '헛발질 행정'으로 빈축을 사더니, 폐지론까지 나오고 있다. 향후 조기 대선 후 진행될 정부 조직 개편에 미칠 영향이 주목된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7일 오후 지지 지자체장ㆍ지방의원 모임인 '분권나라 2017' 창립대회에 참석해 행자부 폐지 및 자치지원청 신설을 주장했다. 박 시장은 이날 "자치분권형 개헌을 완성하겠다"며 지방자치 관련 정책 구상 5가지를 밝혔는데 그중 하나였다. 그는 "지방자치제 도입 22년이 지났지만, 실제 중앙정부에 권력이 과도하게 집중돼 있다"면서 "지자체 정책 결정에 대한 중앙정부의 개입은 제한적으로 규정해야 한다"는 이유를 들었다. 박 시장은 "중앙정부가 지방정부에 권한을 대폭 이양하고, 지방정부가 각자 철학과 현장을 바탕으로 지역 르네상스를 열 수 있도록 지원하고 협력하겠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박 시장의 이날 제안은 단순히 '잠룡의 아이디어 수준'이 아니라는 것이다. 최근 위상이 급격히 추락하고 있는 행자부의 상황과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행자부는 1948년 정부 수립때 '내무부ㆍ총무처'로 창설된 후 1998년 행자부로 통합됐다가 2008년 행정안전부, 2013년 안전행정부로 각각 명칭이 바뀌었지만, 늘 대한민국의 내정을 총괄하는 막강한 부처였다. 정부 조직ㆍ인사, 치안과 지방 행정, 각종 선거, 국민투표, 소방, 민방위 등을 담당했다. '돈'을 주무르는 기획재정부와 함께 '양대 산맥'으로 꼽혀 왔다. 행정고시를 합격한 공무원들의 희망 근무 1~2순위를 다퉜다. 1995년 지방자치제 실시 이전엔 막 행시에 합격한 홍안의 내무부 사무관(5급)들이 각 지역 시장ㆍ군수를 맡아 머리가 하얀 지역 유지들을 거느리며 지역 수장 노릇을 하는 게 흔한 모습이었다. 공무원들의 자부심도 대단하다. 오전 8시40분쯤 정부 청사에 울려퍼지는 국민체조 음악에 맞춰 체조를 하는 'FM 공무원'들은 대부분 '공무원 중의 공무원'을 자부하는 행자부 소속 공무원들이다.
행정자치부
그러나 2014년 세월호 참사 후 안전 행정ㆍ정부 인사 업무가 국민안전처ㆍ인사혁신처로 떨어져 나간 후에는 위상이 현저히 약화됐다. 행자부의 업무는 '빛이 별로 안 나는' 지방행정, 국민들이 별로 관심을 안 갖는 정부조직 업무, 전자정부 구축, 국가 의전 등으로 축소됐다. 특히 행자부가 최근 들어 지방분권 강화, 국민과의 소통ㆍ눈높이 행정 등 시대적 흐름을 쫓아오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위기를 자초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갈수록 복잡해지는 현대 사회의 특성ㆍ대의민주주의의 한계 등으로 지방자치ㆍ분권화의 요구가 높아지고 있지만 주관 부처인 행자부는 오히려 지방자치를 후퇴시켰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최근 몇년새 중앙 정부의 말을 듣지 않으면 지방교부세를 삭감하고, 성과연봉제·임금피크제 등 정부 시책을 지방공기업 등에게 강요하는 데 앞장선 게 대표적 사례다. 최근 불거진 '국민의례 규정' 개정과 '출산지도' 논란은 국민과의 소통ㆍ눈높이 행정에 익숙치 못한 행자부의 구태를 보여줬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행자부는 이달 1일부로 국민의례 규정을 개정해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에 대한 묵념 방법'(7조)을 신설했다. "행사 주최자는 행사 성격상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순국선열과 호국영령 이외에 묵념 대상자를 임의로 추가할 수 없다"는 내용이다. 그러자 "5ㆍ18 등 민주화운동, 제주 4ㆍ3 희생자, 세월호 희생자 등은 묵념 대상자가 될 수 없다는 거냐"는 비판을 불같이 일어났다. 행자부가 뒤늦게 지난 6일 오후 기자 간담회를 열어 "행사 주최자가 불가피할 경우 묵념 대상자를 추가할 수 있다는 의미"라며 문제가 된 내용의 재개정 의사를 밝히는 등 한발 물러섰다. 그러나 "국민을 상대로 국어 이해 능력을 시험한 것이냐"는 비판은 여전하다. 간담회에서 김성렬 행자부 차관은 "요즘 세태가 정부가 하지 말란다고 안 하는 시대가 아니다. 그렇게 이해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 문구를 이해하기 쉽게 바꿨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고 말했지만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였다.
임신중단 합법화를 주장하는 여성단체가 행정자치부의 '대한민국 출산지도'를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사진= 연합뉴스
최근의 행자부 홈페이지에 개설됐다가 운영 중단된 '출산지도' 논란도 시대적 흐름에 무감각한 행정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저출산 대책의 일환으로 전국 각 지역의 출산 관련 정보, 지자체의 지원 시책 등을 손쉽게 찾아 볼 수 있도록 하자는 의도 자체는 좋았다. 그러나 저출산의 원인ㆍ대책과는 거리가 먼 '가임기 여성 숫자'까지 표시하는 바람에 여성들로부터 "여성을 출산 도구화한다"는 강한 반발에 부딪혀 이날 현재까지도 홈페이지가 열리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행자부 출신 한 전직 공무원은 "업무 특성상 일반 국민들과 직접 소통할 기회가 적고, 오랫동안 정부 부처 내에서 '갑'의 위치에 있다보니 시대적 흐름에 적응하기 보다는 윗선의 눈치를 보는 데 더 익숙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며 "조기 대선에 따라 각 후보들이 정부 조직 개편안을 만들고 있을 시기에 이런 일이 터져 악영향을 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사회부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