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셋코리아]'2%대 저성장이 당연하다고? 안 끌어올리고 뭐하나'

아경 신년인터뷰-전광우 초대 금융위원장①

강력한 리더십ㆍ도전 DNA 장착땐 태생기ㆍ성장기 시절 역동성 회복IMF쇼크 등서 빨리 회복된건 기적..대가없이 기적의 반복 바라선 안돼낡은 정치시스템부터 뜯어 고쳐야 경제회복ㆍ기업지배구조 개선 가능

전광우 초대 금융위원장이 지난해 12월20일 분당 집무실에서 아시아경제 인터뷰에 응하며 국내 경제와 정치 상황에 대한 견해를 밝히고 있다.(사진=백소아 기자 sharp2046@)

대담=박성호 정치경제부장 / 정리=오종탁 기자 tak@"3, 4세 체제로 들어선 대기업도 기업가 정신을 되살릴 수 있다. 이를 통해 하락 일로의 성장률을 당연히 끌어올려야 한다." 여느 때와 차원이 다른 '속수무책'의 위기라지만 전광우 초대 금융위원장은 비관보다 희망, 이상(理想)보다는 현실적 대안을 논했다. 전 전 위원장은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당시 경제부총리 특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는 초대 금융위원장으로서 지독한 경제난을 극복한 경험이 있다. 금융위원장 퇴임 이후에도 4년 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을 맡으며 우리 경제의 최일선에서 고군분투했다. 박근혜정부 출범과 함께 전장(戰場)을 벗어난지 4년여. 전 전 위원장은 지난해 12월 20일 분당 집무실에서 인터뷰에 응하며 그간 아껴뒀던 견해를 차분하면서도 단호하게 전했다.전 전 위원장은 이번 국정 농단 사태를 계기로 정치와 경제 혁신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기업들에만 '달라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일 게 아니다. 정경 유착은 말 그대로 정치권과 경제계 두 부분이 맞닿아 박수 소리를 낸 것"이라며 "후진국 수준으로 평가 받는 정치 시스템부터 개선해야 경제가 살아나고 기업 지배구조 개선, 재벌 개혁 등에서도 실효적인 변화를 기대할 수 있다"고 일갈했다. 정치가 경제 각 부분에 부적절하게 입김을 넣는 관행을 끊어버리고 제대로 된 산업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새로운 산업 생태계와 관련해 일각에선 재벌 기업들의 기업가 정신 부재(不在)를 꼬집으면서 벤처 창업 붐이 절실하다고 말한다. 실제로 글로벌 리딩 기업이 속속 탄생하는 미국, 중국 등과 비교하면 한국의 벤처 창업 시장은 초라하기 그지없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 리스트는 30년 전과 거의 그대로다. 전 전 위원장은 "물론 개선된 산업 생태계에서 벤처 창업가들이 많이 나와야 한다"면서도 "벤처 기업에만 기업가 정신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3, 4세 경영 체제로 넘어간 기존 대기업도 얼마든지 과감한 도전 DNA를 살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경제 이론과 경험상 산업은 '태생기-고도성장기-성숙기-쇠퇴기'의 사이클을 가지는데 아무리 성숙기와 쇠퇴기에 있더라도 강력한 리더십, 과감한 아이디어를 만나면 태생기, 고도성장기의 역동성을 회복할 수 있다고 전 전 위원장은 설명했다.전 전 위원장은 고착화한 경제 저성장에 대해서도 수동적으로 끌려갈 게 아니라 자구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한국이 선진국 대열에 들어가려면 성장률을 일단 세계 평균보다는 높일 필요가 있다"며 "여기에 미치지 못하고 반전의 모멘텀도 빨리 확보하지 않을 경우 세계 시장에서 입지가 더 좁아질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한국 성장률은 2011년부터 2015년까지 5년 내리 세계 평균을 밑돌았다. 지난해와 올해 모습도 다르지 않을 전망이다. 특히 올해 성장률에 관해선 '2%대 초반 또는 1%대로까지 내려갈 수 있다' '세계에서 경제 규모가 가장 큰 미국보다 낮을 것'이라는 비관론이 심심찮게 나온다. 전 전 위원장은 "저성장이 굳어진 글로벌 뉴 노멀(New Normal) 시대의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받아들여선 안 된다"며 "우리가 경제 부흥에 우선순위를 두고 반전을 이끌 강한 대통령도 뽑아 당연히 성장률을 끌어올려야만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두 번의 국가적 경제난을 온몸으로 극복했던 전 전 위원장 눈에도 현 상황은 생경한 게 사실이다. 전 전 위원장은 "불경기에 정치 위기가 더해져 과거와 질적으로 차원이 다르다"면서 "대외적으론 미국 도널드 트럼프 정부 출범과 미ㆍ중 갈등 등 여러 현안까지 복합적으로 엉켜 2017년은 한국에 있어 어느 때보다 도전적인 한 해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게다가 최순실 게이트는 대통령 임기가 1년여 남은 어정쩡한 시기에 터졌다. 반면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 때는 각각 김대중, 이명박 정부 초기의 강한 추진력이 리스크를 상쇄했다. 전 전 위원장은 "이번엔 정권 후기 동력이 약해질 수밖에 없는 가운데 탄핵 정국이 불거졌다"며 "적극적으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정부의 리더십이나 사회적 공감대 등 어느 것도 지금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한국 경제는 안 그래도 잠재성장률 하락, 가계부채 증가 등 만성 질환을 앓아왔다. 당장 급성 질환이 발병하지 않는다고 긴장감을 늦춰선 결코 안 된다고 전 전위원장은 강조했다. 그는 "1998년, 2008년의 단기 충격은 외화 유동성 위기 측면이 강해 반등할 계기를 마련한 뒤론 회복 속도가 빨랐다. 지금처럼 경제 활력이 장기간 떨어지는 상황도 과거와는 분명히 다른 부분"이라며 "경제는 용수철과 같아 너무 오래 눌려 있으면 탄성이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올해 조기 대선 가능성 등 불확실성 속에서도 경제만큼은 절박한 심정으로 살려 나가야 조금이라도 더, 일찍 회복할 수 있다고 전 전 위원장은 채근했다. 전 전 위원장은 희망을 붙들면서도 지나친 낙관주의는 경계했다. 특히 과거 위기 극복 경험을 상기하며 '위기 아닌 적이 없었다' '우리는 또 해낼 수 있다'고 말로만 떠드는 세태를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기적은 쉽게 반복되지 않기에 기적이라 불린다"면서 "(실질적인 대응 없이) 막연하게 이번에도 기적과 같은 경제 회복을 이루리라 기대하는 것은 굉장한 착각"이라고 말했다.

전 전 위원장이 인터뷰에 앞서 카메라를 향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백소아 기자 sharp2046@)

▲전광우 초대 금융위원장은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안 전 전 위원장 앞엔 미리 전달받은 질문지가 놓여 있었다. 꼼꼼한 필기로 종이가 새카맸다. 부지런함과 철저한 준비성은 국민연금 이사장 시절 별명인 '슈퍼 얼리버드' 그대로였다. 당시 그는 새벽 4시에 일어나 외신을 챙기고 세계 금융시장 흐름을 파악한 뒤 7시30분께 출근했다. 이런 삶은 그 이전부터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전 전 위원장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인디애나대에서 경제학 및 경영학 석사, 경영학 박사 학위를 딴 뒤 미시간주립대 교수를 거쳐 12년 간 세계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로 재직했다. 1998년 IMF 외환위기 사태 때 한국 정부 초청으로 귀국해 경제부총리 특보와 국제금융센터 원장을 역임하며 위기 극복에 크게 기여했다. 2001년 이후 우리금융그룹 총괄부회장, 딜로이트코리아 회장, 정부 국제금융대사, 포스코 이사회 의장, 국제증권감독기구(IOSCO) 아태지역위원회 의장 등을 맡았다. 2008년에는 초대 금융위원장으로 취임, 이듬해까지 국내 최초의 민간 출신 금융부처 수장으로 일했다. 이어 2009~2013년 국민연금 최초 연임ㆍ최장수 이사장을 지냈다. 현재는 연세대 석좌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오종탁 기자 tak@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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