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人]은행권 '유리천장' 깨고 떠나는 권선주 기업은행장

'여성 최초' 타이틀 달고 39년 걸어온 길…권 행장 '은행원의 삶, 나에게 천직'

권선주 제24대 IBK기업은행장

[아시아경제 손선희 기자] 국내 최초 여성 은행장에 오르며 이른바 '유리천장'을 깬 상징적 인물인 권선주 IBK기업은행장(60)이 27일 임기를 마치고 은행을 떠난다. 1978년 첫 직장으로 기업은행에 들어와 주판을 잡은 지 39년만이다.이임식장이 마련된 서울 을지로 기업은행 본점 15층 대강당에 권 행장이 들어서자 약 400명의 기업은행 직원들은 일제히 일어나 권 행장을 뜨겁게 맞이했다. 평소와 다름없이 단정한 짙은 색 정장을 입고 단상 앞에 선 권 행장은 "고객을 도와 보람을 찾고 인생을 배우는 은행원의 삶은 나에게 천직(天職)이었다"며 "여성으로서 일과 삶이 힘겨울 때에도 포기하지 않았고, 그런 인내와 노력에 기업은행은 늘 기회를 내어 줬다"고 소회를 밝혔다.보수적이라고 알려진 금융계에 여성 대졸공채 1기로 기업은행에 입사, 최고경영자(CEO)까지 지낸 권 행장의 이름 앞에는 늘 '여성 최초'란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이는 영광인 동시에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처음 걸어낸 '도전'과 '상흔'이기도 했다.권 행장은 "역사상 가장 낮은 금리와 '은행이 아닌 경쟁자'의 출현은 은행 산업의 틀을 흔드는 근본적 위협이었다"며 "이 같은 거대한 변화를 맞아 지난 3년간 가장 역점을 뒀던 부문은 '이익을 내는 질적 성장'이었다"고 강조했다. 권 행장 재임 기간 동안 기업은행은 '당기순이익 1조원 클럽'에 재진입(2015년)했고, 총자산 300조원(2016년 9월 연결기준) 시대를 열었다. 중소기업 여신은 130조원을 돌파하며 역대 최고 시장점유율(22.8%, 2016년 10월)을 기록하기도 했다. 권 행장은 떠나면서도 은행을 향한 조언을 잊지 않았다. 그는 "건전성 유지와 자본확충은 출구가 보이지 않는 위기 앞에서 반드시 지키고 보강해야 할 부문"이라며 "글로벌 진출도 더 과감하게 시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뒤를 이어 취임할 김도진 신임 은행장의 새 리더십을 중심으로 더욱 속도를 낼 수 있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재임 기간 내내 '엄마 리더십'으로 은행을 이끌었던 권 행장은 그러나 지난 상반기 금융권 성과연봉제 도입을 둘러싸고 노동조합과 갈등을 빚기도 했다. 당시 노조가 강력 반발하자 권 행장은 직접 작성한 편지를 통해 조직을 다독이려 애썼다. 그럼에도 그는 아쉬움이 남은 듯 이날 이임사에서도 "정부의 정책 추진과 올해 파업 과정에서 좀 더 속 시원히 사정을 말하고 이해를 구하지 못한 점 진심으로 미안하게 생각한다"며 "모든 원망은 내게 돌리고 남은 분들은 갈등과 상처를 딛고 다시 한마음으로 나가길 간절히 바란다"고 당부했다. 후배들에 대한 대목이 나오자 차분히 이임사를 읽어 나가던 권 행장의 목소리가 떨렸다. 현장에 앉은 직원 몇몇도 눈물을 훔쳤다. 권 행장은 "정든 동료를 떠난다는 것이 실감나지 않는다"며 "배지를 떼어내더라도 은행장으로서 3년, 직원으로서 36년 등 공들인 39년의 시간만큼 많이 생각날 것"이라며 마지막까지 은행을 향한 애정을 드러냈다.노동조합도 권 행장에게 덕담을 건넸다. 나기수 기업은행 노조위원장은 송별사를 통해 "노사관계가 어려웠지만 권 행장의 의지와 노력에 의해 갈등이 조금씩 봉합됐다"며 "1만3000여명의 직원들이 잊지 않고 기억하겠다"고 말했다.손선희 기자 sheeson@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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