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전통 白酒, 서양인 입맛에 맞춰 변신

알코올 도수 낮추고 칵테일로 변신…美·英 등 주요도시 '바'로 진출

중국 쓰촨(四川)성 청두(成都)에 자리잡은 고급 바이주(白酒) 브랜드 '수이징팡(水井坊)'의 양조장에서 직원들이 발효된 원료 곡물을 잘 섞고 있다(사진=블룸버그뉴스).

[아시아경제 이진수 기자] 중국 전통 바이주(白酒)를 증류해 마시는 방법은 1000년 동안 변한 게 없다. 그러다 요즘 바이주 브랜드들이 해외 진출을 서두르면서 서양인 입맛에 맞게 변모하고 있다.50도가 넘는 독한 술 바이주는 결혼 잔치와 회식에 단골로 등장한다. 그러나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부패척결 운동 이후 매출이 13% 급감했다. 소비자가격은 반토막 났다.해외에서 소비되는 바이주는 1%도 안 된다. 중국의 제조업체들이 바이주를 미국인ㆍ유럽인들 입맛에 맞는 '새로운 테킬라'로 탈바꿈시키려 애쓰는 것은 그 때문이다.이들 업체는 바이주의 도수를 낮추고 인삼ㆍ열대과일이 들어간 칵테일로 만든다. 미국 뉴욕, 영국 런던, 호주 시드니, 심지어 월트디즈니 리조트의 바에서 바이주 칵테일을 홍보하기도 한다.세계 최대 증류주 생산업체인 영국 디아지오의 토니 톈 바이주 부문 총책임자는 최근 블룸버그통신과 가진 회견에서 "테킬라와 보드카가 세계화에 성공했는데 바이주라고 성공하지 말라는 법이라도 있나"라고 반문했다. 디아지오의 바이주 사업부는 고급 브랜드 '수이징팡(水井坊)'을 보유하고 있다.수이징팡 같은 고급 브랜드, 베이징훙싱(北京紅星) 등 중저가 브랜드,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 소재 바이조와 홍콩바이주(HKB) 등 신생 브랜드 모두 바이주에 걸맞은 재료ㆍ성분을 찾느라 여념이 없다. 과일주스와 테킬라가 섞여 만들어진 칵테일인 '마르가리타' 같은 성공작을 찾고 있는 것이다.

대형 항아리에 담겨 숙성 중인 바이주(사진=블룸버그뉴스).

이들 업체가 바이주의 얼얼한 맛을 없애기 위해 주로 가미하는 것은 포도주스, 앙고스투라 비터스, 황설탕이다.게다가 이들 업체는 서양인들 취향대로 바이주의 알코올 도수를 40도 정도로 낮추고 향료를 주입하며 주원료인 수수에 항산화 효능이 있다고 선전한다. 그러나 런던 소재 국제와인주류협회(IWSR)에 따르면 지난해 생산된 바이주 가운데 해외 수출 물량은 겨우 0.1%다.뉴욕에 있는 바 '루모스'의 올슨 살리세티 공동 창업자는 "바이주란 입안에서 맛을 즉각 느낄 수 있는 성질의 술이 아니다"라며 "칵테일로 마셔야 독특한 향을 느낄 수 있다"고 주장했다.수수ㆍ쌀ㆍ밀ㆍ옥수수로 만드는 바이주의 알코올 도수는 대개 53도다. 런던 소재 시장조사업체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지난해 판매된 바이주 양은 55억ℓ다. 지난해 바이주 업계의 전체 매출 규모는 7660억위안(약 132조8700억원)에 이른다.2012년만 해도 공무원들의 선물용ㆍ회식용으로 수요가 급증하면서 수이징팡ㆍ구이저우마오타이(貴州茅臺) 같은 고가 브랜드 가격이 치솟았다. 당시 매출 규모는 8820억위안에 달했다. 그러나 이후 시 주석의 부패척결 운동으로 '바이주 잔치'는 막을 내리고 말았다.

독특하게도 밑이 묵직한 수이징팡 병(사진=블룸버그뉴스).

중국주업협회(中國酒業協會)의 쑹슈위(宋書玉) 사무국장은 "바이주도 변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바이주는 축하연 같은 자리에서 작은 잔으로 단숨에 들이키는 게 보통이다.그러나 해외에서는 바텐더가 현지인들 입맛에 맞게 바이주를 칵테일로 만들어 서비스한다. 2011년 수이징팡을 인수한 디아지오는 바텐더들에게 바이주 칵테일 만드는 법도 가르친다. 디아지오는 칵테일 '올드 패션드'처럼 나름의 바이주 칵테일 제조 비법을 갖고 있다.톈 총책임자는 "서양의 애주가들에게 바이주를 소개할 예정"이라며 "칵테일 형태로 먼저 선보인 뒤 서서히 순수 바이주를 내놓을 것"이라고 밝혔다.수이징팡은 쓰촨(四川)성 청두(成都)에서 600년 동안 바이주를 만들어왔다. 양조장에 들어서면 거대한 통 안에서 발효 중인 원료 곡물로 인해 블루치즈 같은 냄새가 진동한다. 일꾼들은 옛날 방식 그대로 곡물을 고루 펼치고 물을 섞는다.발효가 끝난 바이주는 커다란 항아리에 쏟아 붓는다. 이어 주조대사(調酒大師)가 각 항아리의 바이주를 고루 혼합해 밑이 묵직한 수이징팡 병에 담는다.1680년 탄생한 베이징훙싱은 다양한 바이주를 시도 중이다. 베이징훙싱에서 새로 선보인 제품 '누와(중국 고대 신화 속의 여신 이름)'는 알코올 도수 42도로 바텐더가 거머쥐기 쉽게 홈이 패인 병에 담겨 있다.HKBㆍ바이조 같은 신생 업체들은 좀 싸고 덜 독한 제품 개발에 매달린다. 이들 업체는 주로 20대 소비자를 겨냥한다.

미국 뉴욕의 바 '루모스'에서 바텐더가 바이주 칵테일을 만들어 잔에 따르고 있다(사진=블룸버그뉴스).

신생 업체의 창업자는 중국에서 살아본 외국인이거나 중국계 외국인이다. HKB의 찰스 랜시어 창업자는 상하이(上海)에서 4년간 살며 금융업에 종사했다. 그는 중국에서 만든 바이주를 이탈리아로 공수해 재증류한다. HKB에 투자한 업체 가운데 하나가 프랑스의 투자펀드 베버앵베스티스망이다.랜시어 창업자는 "뉴욕의 바 중 100개 정도가 바이주 칵테일을 제공한다"며 "전통이 중요하지만 특정 상황에 적응할 줄도 알아야 한다"고 조언했다.바이조의 맷 트러시 창업자는 12년간 상하이에서 거주한 바 있다. 그는 용과(껍질이 용의 비늘과 비슷한 선인장 종류의 열매)와 여지(열대성 과일의 일종) 즙이 함유된 바이주를 미국 플로리다주의 디즈니월드 바 두 곳에서 내놓고 있다. 바이조에 투자한 인물 중 한 사람이 미국 프로농구(NBA) 선수 출신 야오밍(姚明)이다.트러시 창업자는 "4년 뒤 순이익을 낼 수 있을 것"이라며 "틈새시장인 젊은 소비자들을 겨냥하고 있다"고 밝혔다. 바이조는 자사 웹사이트에 바이주 칵테일 제조법도 올려놓았다. 이진수 기자 commun@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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