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씽: 사라진 여자'로 스크린 돌아온 그녀 '내게 모성애는 어디서 왔을까…'
배우 공효진
Miss미혼인데 아이 잃은 엄마役...모성이 아닌 '여자 이야기'로 이해 "경험보다 날것 그대로 감정에 충실"-ing로코 드라마선 사랑스러운 밀당녀, 스크린선 차갑고 거친役 주로 맡아 "감정폭발, 변신 더 용감해지나봐요"[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공효진(36)은 로맨틱 코미디의 여왕이다. 출연하는 TV 드라마마다 대박을 친다. 대부분은 당차면서도 여린 캐릭터. 사랑의 감정을 숨기지 못해 안절부절못하고, 그 마음을 들켜버리면 금방이라도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약육강식의 도시에서 꿋꿋이 버티는 이면이 더해져 수월하게 시청자의 공감을 산다. 대중은 '공블리'라고 부른다. 공효진과 러블리(lovely)를 합성한 신조어. 착용한 제품이 모두 판매돼서 '완판녀', '패셔니스타'로도 통한다. 모델 출신다운 8등신. 직접 아이디어를 고안할 만큼 패션 감각도 탁월하다. 그 덕에 많은 광고에 출연하며 목돈을 만졌다. 그런데 유독 스크린에서는 재미를 보지 못했다. 주연으로 참여해 가장 흥행한 작품은 '러브픽션(2011년).' 동원 관객은 172만6202명이다. 차이는 캐릭터에서도 발견된다. 사랑 앞에서 밀고 당기는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대체로 거칠고 차갑다. '품행제로(2002년)'에서 자신이 짝사랑하는 남자의 여자를 공갈 협박하는 나영, '철없는 아내와 파란만장한 남편, 그리고 태권소녀(2002년)'에서 기구한 인생을 헤쳐 나가는 태권도 사범 황금숙, '고령화 가족(2013년)'에서 세 번째 결혼을 앞두고 오빠들과 티격태격 다투는 미연 등이다. '미쓰 홍당무(2008년)'에서 삽질을 반복하는 양미숙은 이질적이기까지 하다.
영화 '미씽: 사라진 여자' 스틸 컷
공효진은 "영화에서만큼은 다른 톤의 연기를 하고 싶다"고 했다. "TV 드라마에서 로맨틱 코미디를 연기하다 보면 폭발하고 싶을 때가 있어요. 새로운 색깔을 내고 싶은 거죠. 시나리오를 고르는 뚜렷한 기준을 세운 건 아니에요. 다만 영화에서 조금 더 용감한 결정을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지난달 30일 개봉한 이언희 감독(40)의 '미씽: 사라진 여자'는 능동적인 여성 캐릭터의 연장선이다. 그녀는 워킹맘 지선(엄지원)의 딸 다은(서하늬)을 돌봐주는 중국인 보모 한매를 연기했다. 다은을 데리고 돌연 사라지는데, 이어지는 지선의 추적에서 아이를 잃은 불행한 엄마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미혼인 공효진에게는 어려운 과제였다. "엄마의 마음을 잘 몰라서 접근이 쉽지 않았어요. 지금도 헷갈릴 정도죠. 그래서 드라마에 충실했어요. 관객이 어떤 점에 흥미를 느낄지를 많이 고민했죠. 자신은 있어요. 경험이 많다고 연기를 잘 하는 건 아니니까요."
배우 공효진
그녀는 주위의 우려에도 아랑곳없이 각양각색의 얼굴을 선보인다. 비결은 단순하다.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 느낀 감정을 그대로 옮긴다. 이 전달은 한매가 농촌 남성과 국제결혼을 하면서 아픔을 겪기 시작하는 신에서 효과적으로 나타난다. 마당의 의자에 강제로 앉혀져 머리카락을 잘릴 때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는데 머물지 않는다. 카메라가 자세히 담지 않지만 주먹을 불끈 쥐며 강단이 있음을 시사한다. "시나리오를 술술 넘기는데 단순히 불쌍한 여자 같지 않더라고요. 지옥 같은 삶을 예고하는 신이지만 앞으로 온갖 역경을 이겨낼 수 있다는 여지를 심고 싶었어요. 그래서 생각한 것이 주먹이었어요. 결의까지는 아니더라도 한 대 맞고 픽 쓰러질 여자로 보이지 싶지 않았죠." 적잖은 관객은 이 영화를 엄마의 이야기로 받아들인다. 공효진의 생각은 다르다. "여자의 이야기"라고 했다. 한매는 행복과 거리가 멀다. 폭력적인 시집에서 벗어나도 정처 없이 떠돈다. 돈은 없고, 한국말은 서툴다. 결국 나락에서 버티는 유일한 원동력은 아이. 그마저도 잃은 여자가 세상에 외치는 공허한 메아리를 조명한 작품이다.
영화 '미씽: 사라진 여자' 스틸 컷
"한국에 오기 전만 해도 한매는 순박했을 거예요. 타지에서 어려움에 부딪히면서 여인으로 변모하는 과정이 그려졌다고 생각해요. 아이를 잃는 것이 중요한 전환점이고요." 숨이 멎은 아이를 어떻게든 살리겠다며 동분서주하다 주저앉는 신이다. 가로등 조명마저 희미한 푸른빛의 골목에서 공효진은 목이 메어 몇 번을 꺽꺽거리고 실성통곡한다. 짙은 모성애도 드러나지만 홀로 남겨진 그녀의 외로움이 상징적으로 나타난다. "창자가 끊어질 정도의 아픔까진 표현하지 못한 듯해요. 육아 경험이 있는 배우가 연기했다면 더 처절하게 그려졌겠죠. 솔직히 개의치 않아요. 모성애와 여자의 모습을 모두 보여주고 싶었거든요. 그래야 엄마가 아닌 관객도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봤어요. 허탈감과 모성에서 비롯된 슬픔이 뒤섞여 있다고 생각해요."이런 선택에는 영화의 독특한 서술 구조도 한 몫 했다. 이언희 감독은 한매를 시종일관 신비로운 캐릭터로 묘사한다. 지선의 이야기에 중간중간 삽입해 조금씩 베일을 벗긴다. 공효진은 "추리가 더해져야 해석할 수 있다"고 했다. "반전이 있는 스릴러 구조잖아요. 감정을 굳이 명확하게 드러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오히려 지선의 이야기 흐름과 잘 어우러지는데 더 많은 신경을 기울인 듯해요. 세상 끝에 몰린 두 여자의 태도가 이 영화의 핵심이니까요."
영화 '미씽: 사라진 여자' 스틸 컷
다소 난해한 캐릭터에 과감하게 도전한 이유는 무엇일까. 공효진은 "대중이 상상하지 못한 새로운 얼굴을 보여줄 때 쾌감을 느낀다"고 했다. "제 로맨틱 코미디에 익숙한 시청자들은 반갑지 않을 수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전형적인 틀에 제 자신을 가두는 일이야말로 아까운 행보라고 생각해요. 관객은 조금 덜 동원하더라도 놀라움을 주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그녀는 충무로의 감독들에게 당부했다. "정말 어려운 역할 있으면 맡겨주세요. 도전정신을 부르는 캐릭터라면 언제든 환영입니다."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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