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석거부·위증 만연…‘맹탕 국조’ 재연하나

국회, 수사권 없어 진실규명 어려워평균 45일 안팎 짧은 기간도 한계조사권 강화·예비조사 구체화 필요위증·출석거부도 처벌 강화해야[아시아경제 오상도 기자] 2013년 7월, 폭염이 엄습한 서울 도심 곳곳에선 촛불이 타올랐다.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국가정보원의 선거 개입 의혹이 불거지자 시민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박근혜 대통령은) 하야하라"며 대선불복 움직임을 드러냈다. 하지만 분노한 민심의 요구에 따라 시작된 박근혜정부의 첫 국정조사특별위원회(국정원 국조)는 파행을 겪었다.

5일 '최순실 게이트' 국정조사특위에 참석한 허원제 청와대 정무수석(왼쪽부터)과 한광옥 청와대 비서실장, 유일호 경제부총리.

 청문회에 나온 증인들은 퉁명스러운 태도와 위증으로 일관했다. 불출석 의사를 밝힌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은 결국 청문회에 모습을 드러냈지만 증인선서조차 거부했다. 국회는 무시당했다. 여론은 들끓었지만 그뿐이었다. 이어진 세월호 국조특위도 사정은 비슷했다. 지난달 30일 막을 올린 '박근혜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 농단 의혹사건 진상규명 국정조사특별위원회(최순실 게이트 국조특위)도 벌써부터 최재경 청와대 민정수석과 김수남 검찰총장, 박흥렬 청와대 경호실장 등 핵심 증인의 불참으로 '불안한 여정'을 예고하고 있다.  최순실 게이트 국조특위는 5일 청와대ㆍ기획재정부ㆍ교육부를 상대로 2차 기관보고를 받았다. 김성태 위원장은 기관보고에 앞서 "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 소추안이 발의된 가운데 이번 한 주는 역사에 남을 것"이라며 "국조특위가 소기의 성과를 거두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러나 이날도 최 수석과 박 실장을 비롯해 류국형 청와대 경호본부장 등이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고 참석하지 않았다. 또 6~7일 국조특위 청문회에 증인으로 채택된 최순실ㆍ우병우ㆍ김기춘 등 박 대통령의 측근 실세들과 재벌그룹 총수 중 일부가 참석하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흘러나왔다. 회의 직전 모인 여야 간사들은 증인 채택 문제로 언성을 높였고, 오는 13~14일 예정된 3~4차 국조특위 청문회 증인 채택 협상은 결렬됐다.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의원이 지난달 30일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 진상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검찰총장의 불출석 문제로 김성태 위원장과 설전을 벌이고 있다. 박 의원은 이에 항의하며 퇴장했다. / 사진=연합뉴스

 이번 국조특위는 1차 기관보고 때도 증인으로 채택된 김수남 총장과 김주현 대검 차장검사, 박정식 반부패부장 등 대검 관계자 전원이 수사 중립성을 이유로 출석하지 않았다. 이에 반발한 하태경ㆍ박영선 의원이 회의 시작과 함께 퇴장하면서 2시간 가까이 정회됐다.  믿을 건 국조특위 위원들의 날 선 질의뿐이었다. 5일 2차 기관보고에선 개회와 함께 위원들이 대통령 비서실과 경호실, 국가안보실 등에 박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 의혹을 집중적으로 추궁했다.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주 미국 샌안토니오 브룩스 미 육군 의무사령부를 방문해 세월호 7시간의 열쇠를 쥔 조모 대위를 인터뷰하려 했으나 한국 정부에서 파견한 것으로 보이는 젊은 남성 장교가 이를 막고 감시했다"고 주장했다.  다른 위원들은 비아그라 등 발기부전 치료제와 마취제 등 의약품 구매 논란을 따져 물었다. 교육부에 대한 기관보고에선 최씨의 외동딸인 정유라씨의 이화여대 입학 특혜 의혹을 집중 추궁했다.  애초 이번 국조특위는 특별검사제와 병행 실시되면서 이목을 끌었다. 상호보완적 역할을 하며 한층 진실규명에 접근할 것이란 이유에서다. 하지만 이날 질의에서도 무딘 답변만 돌아왔다. 또 위원들의 청와대 출입기록 자료요청에 대해 이영석 청와대 경호실 차장은 "출입기록은 '2급 비밀'이라 각 당 간사와 특위 위원장을 방문해 세부 내용을 별도 보고했다"고 밝혔다가 거센 항의를 받았다.  장제원 새누리당 의원은 "언제 (구체적인) 출입기록을 보고했느냐"고 따져 물으며 이를 위증으로 규정했다. 이에 김성태 위원장이 나서 "(청와대 경호실이) 개별 방문해 공지한 적이 없다"고 바로잡으면서 사태는 일단락됐다. 다시 한 번 '맥빠진 청문회'로 전락하는 순간이었다.

5일 국회 국정조사장에서 목이 탄 듯 생수를 마시고 있는 한광옥 대통령 비서실장.

 최순실 게이트 국조특위가 이렇게 흐른 데는 국조 자체의 구조적 문제점이 자리한다. 국조특위에는 수사권이 없어 진실규명에 한계가 있고, 여야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입장이 뒤바뀌기 때문이다. 여당은 마지못해 국조에 합의해 줄 뿐 협조할 뜻은 없었다. 평균 45일 안팎의 짧은 조사 기간 역시 늘 지적받아 왔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국조특위의 구속력과 효율성을 강화하기 위한 여러 대안이 제시돼 왔다. 조사권을 강화하고 전문가가 주도하는 예비조사 절차를 구체화하며 사후처리의 확인을 강화하는 보완책들이다. 또 위증과 출석거부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 정보의 비대칭성을 완화하기 위해 감사원을 국회로 이관하는 방안 등이 제기됐다. 국회 관계자는 "이 같은 개선책들은 늘 의견 제안에 그쳤다. 국조특위의 문제점들은 매년 반복되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오상도 기자 sdoh@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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