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앤비전]무신불립(無信不立)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나도 창피한 일이 대한민국에서 벌어졌다. 처음에는 대기업들이 미르재단과 K스포츠라는 단체에 774억원을 출연했다는 것으로부터 시작되더니 최순실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각종 비리 사건이 터져 나왔다. 결국 이렇게 최순실이라는 일반인이 대통령 연설문뿐만 아니라 온갖 국정에 마음대로 개입하였다는 데에 국민은 너무나 놀라고, 실망하고, 분노해 100만명의 촛불시위가 광화문일대를 뒤덮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우리 모두가 더욱 실망하는 것은 이 모든 사건의 배후에 박근혜 대통령이 깊숙이 관여해 있다는 것이고, 급기야는 정권에 충성해 온 검찰마저 최순실이 저지른 각종 범죄 혐의와 관련해 박 대통령을 공범으로 판단하고 피의자로 입건하는 사태에까지 이르렀다. 박 대통령이 어떤 범죄들을 더 저질렀는지는 앞으로도 검찰의 조사로 파헤쳐 질 것이고 특검으로 이어지는 조사에서는 더 많은 비밀이 파헤쳐 질 것이다. 지금까지의 조사결과도 믿어지지 않는데 얼마나 많은 비리와 권력형 범죄들이 밝혀질지 상상할 수도 없고 감당도 잘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소문처럼 박 대통령은 "내가 뭘 잘못했는데?" 라고 생각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렇지 않고서는 전국에서 수백만 명의 촛불시위가 보여준 민심을 그렇게 외면할 수 있는지 국민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4900만명의 지지자가 있다고 아부하는 측근의 말을 믿고 있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백번 양보해서 박 대통령이 아무런 범죄도 저지르지 않았다고 치자. 그러나 대통령은 아무 잘못도 안 저질렀다는 변명으로 유지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대통령으로서 해야 할 일은 하고 하지 말아야 할 일들은 하지 말아야 하는데, 박 대통령은 그 반대로 한 것만으로도 문제다. '세월호 7시간' 동안 청와대에서 굿판을 벌이지도 않았고, 혹시 성형시술을 받은 게 아니라 쳐도, 국가적인 재난에도 집무실에 나오지도 않고 관저에 머물면서 대통령으로서 해야 할 일을 아무것도 안 한 것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 그 7시간만 아무것도 안한 게 아니라 4년의 재임기간 동안 최순실이 국정농단을 하는데도 대통령이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수수방관하고 있었다는 것은 직무유기를 넘어서는 문제인 것이다.반면 하지 말았어야 할 일은 정말로 열심히 했다. 기업들의 팔을 비틀어 청년희망펀드 880억원을 모금했고, 미르·K스포츠 재단에 774억원, 그밖에 창조경제혁신센터와 지능정보기술연구원, 한국인터넷광고재단, 중소상공인희망재단 등 총 2000여억원이나 되는 돈을 모금했다. 장관들로부터는 대면보고도 잘 안 받으면서 기업을 쥐어짜는 모금에는 박 대통령이 직접 나섰다는 것이 아이러니 한데, 정작 그 엄청난 규모의 기금이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는 장막에 가려져 있다. 그런데 우리의 젊은이들은 여전히 청년실업으로 고통 받고 있고, 박근혜정부의 캐치프레이즈인 창조경제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박 대통령이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더 이상의 변명과 사과를 하지 말고 깨끗이 마음을 비우기를 바란다. 지금은 대통령이 인의 장막 속에서 시간끌기 대책회의나 할 때가 아니다. 추락하는 대한민국의 위상과 경제와 민생을 회복시키는 일에 발 벗고 나설 새로운 리더십을 준비하고 흐트러진 국가체제를 재정비 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어야 할 때이다. 그 동안 박 대통령 자신의 정치신조로 수차례 인용해 왔고, 올해 시진핑 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도 강조한 ‘무신불립(無信不立)’이란 공자님 말씀을 다시금 깊이 새기기 바란다. "신뢰를 얻지 못하면 지도자로 설 수 없다" 김지홍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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