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에 분식집에서 갈비만두와 물냉면을 시켰는데, 주인어른이 냉면 면발을 가위로 잘게, 잘게 잘라 놨다 이게 다 '갈비만두하고 무, 무, 물냉면 주세요', 잘게, 잘게 더듬거리던 내 말맛 따라 자른 걸까? '이게 다 잘게, 잘게 더듬거리는 네 입맛을 위한 배려란다', 대답 대신 주인어른은 웃기만 한다 하, 하, 하, 말을 말자, 하, 하, 덩달아 나도 웃기만 한다 억지로, 토막 난 웃음만 흘러내리고, 무말랭이 머금은 혀끝에서 흘러내리고, 젓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실지렁이 같은 면발들, 잘게, 잘게, 불어 터지던 냉면 육수 색깔이 딱 오폐수 잔뜩 먹고 푸르게 푸르게 정말로 푸르게 썩은 물이다 시퍼렇게 떼죽음당한 물고기들 되살리지 못하고 건져 낼 수밖엔 없는 심정으로, '냉면 면발 다 죽어 부렀소 어흑, 살아 숨 쉬는 냉면 면발 살려 내라!' 목 놓아 고래고래 소리치고 싶다, 생각하다 말았다, 고작 냉면 면발 가지고 고래고래 소리치고 싶은 내가 창피하기도 하고, '이게 다 잘게, 잘게 더 땅값 올리고 더 개발하던 당신들 입맛을 위한 배려였다'고 배를 째고 철판을 깔던 분들 생각도 나서, 하, 하, 하, 말을 말자, 하, 하, 웃기만 했을 사람들 심정을 몰라, 하, 하, 덩달아 나도 웃기만 한다 억지로, 토막 난 면발도 강물도 더는 흘러내리지도 못 하고
시인은 말을 좀 더듬나 보다. 분식집 주인은 지나치게 배려심이 깊고. 얼마나 친절한지 주인은 허락도 받지 않은 채 냉면을 싹둑싹둑 잘랐나 보다. 그래 "말을 말자" 그러면서 시인도 그냥 지나가려고 했나 보다. 그랬나 본데 하필이면 냉면 면발이 녹색이었나 보다. 게다가 면발은 다 불어 터졌고. 하, 이것 참. 바라보고 있자니 "불어 터지던 냉면 육수 색깔이 딱 오폐수 잔뜩 먹고 푸르게 푸르게 정말로 푸르게 썩은 물이다 시퍼렇게 떼죽음당한 물고기들 되살리지 못하고 건져 낼 수밖엔 없는 심정으로, '냉면 면발 다 죽어 부렀소 어흑, 살아 숨 쉬는 냉면 면발 살려 내라!' 목 놓아 고래고래 소리치고 싶다". 냉면 얘기가 아니다. 사대강 얘기다. 여름이면 녹조로 깡그리 뒤덮히는 저 사대강 말이다. 아침이고 저녁이고 물고기 사체가 둥둥 떠오른다는 한강, 낙동강, 금강, 영산강에 대한 이야기다. 그 사대강이 싹 다 썩어 버렸다. 자연은 우리가 후손에게 물려주는 것이 아니라 실은 대대손손 이어 이 땅에서 살아갈 후대에게서 잠시 빌려 쓰는 것이다. 이제 그들 앞에 어떻게 낯을 들 수 있겠는가.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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