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한詩]임승유/야유회

  빙 둘러앉아서 수건 같은 걸 돌리고 있다가 한 사람이 일어났으므로 따라 일어났다. 일어나면서 어지러웠는데  사과라면 꼭지째 떨어지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이게 시작이라는 걸 모르는 채  흙먼지를 일으키며 버스가 지나갔고 그게 영동에서의 일인지 빛을 끌어모아 붉어진 사과의 일인지  이마를 문질러도 기억은 돌아오지 않았다.  한 사람을 따라갈 때는 어디 가는지 몰라도 됐는데 한 사람을 잃어버리고부터는 생각해야 했다. 이게 이마를 짚고 핑그르르 도는 사과의 일이더라도  사람을 잃어버리고 돌아가면 사람들은 물어 올 것이고  중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설명할 수 없는 나는 아직 돌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물어 올 것"이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나도 모르겠다. 처음엔 그저 그 사람을 따라갔을 뿐이다. 그 사람이 일어섰기에 나도 몰래 문득, "이게 시작이라는 걸 모르는 채" 말이다. 나는 다만 그 사람을 따라가기만 하면 됐다. 어디로 가는지는 몰라도 상관없었다. 그 사람이 저기 가고 있으니까 타박타박 그 사람의 곁을 나누어 걸었고 그게 다였다. 기억나지 않는다. 그 사람을 왜 따라가게 되었는지, 그 사람의 미소가 가장 눈부셨던 순간은 언제였는지, 그 사람에게 내 마음을 고백할 때 하늘은 맑았는지 아니면 좀 흐렸는지 아무리 "이마를 문질러도 기억은 돌아오지 않"는다. 아직 나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설명할 수"가 없다. 그래서 사람들 곁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흙먼지를 일으키며 버스"는 지나가고 또 지나가고 있는데, 나는 그 "사람을 잃어버"렸고, 결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만 든다. 사람들은 저렇게 여전히 즐겁게 야유회 중인데. 채상우 시인

ⓒ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지합니다.

오늘의 주요 뉴스

헤드라인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