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은주 한양사이버대 경제금융학 교수
법이나 정책은 수없이 많은 개인과 기업들이 지켜야할 게임의 규칙인 동시에 행동의 신호체계다. 교통신호등이 제멋대로 바뀔 경우 차량과 사람이 뒤엉켜 큰 사고로 이어지는 것처럼 법이나 정책이 모호하면 불확실성속에서 사회적 혼란이 커지고 경제는 위축된다. 이 때문에 국민 다수에게 영향을 주는 정책이나 법이 만들어질 때는 해당 부처 내에 태스크포스(TF)가 구성돼 철저하게 사전 준비를 하고 수많은 경우의 수에 대한 검토를 해야 한다. 예상되는 부작용이나 혼선을 최대한 줄이고 수많은 질의에 대한 답변이 가능한 상태가 된 이후에야 발표 하는 것이 옳다. 이런 과정을 거친 대표적인 사례가 부가가치세다. 1971년 검토가 시작된 부가세는 예상되는 부작용에 대해 학계와 행정부, 국회에서 수없이 많은 '끝장토론'이 오간 끝에 법제화 됐으며 1977년 9월 시행을 앞두고서는 국세청이 3월과 5월 7월 세 차례나 도상연습을 거듭했다. 일일이 상인과 기업들을 찾아다니며 세금계산서 작성을 연습시켰다. 부가세뿐만 아니라 예전에는 작은 법안이나 정책이 발표될 때도 국민들의 혼선을 줄이기 위한 사전준비가 철저했다. 혼선이 일어나 문제가 될 경우 사안의 중대성에 따라 장관에서 실무공무원까지 라인 전체가 책임을 지기 때문에 사전준비와 도상연습이 철저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요즘은 행정부나 국회나 국민들이 겪는 정책혼선에 대해 무감각하다. 부정청탁금지법(김영란법)이 대표 사례다. 직접 직무연관성과 간접 직무연관성, 직무 비연관성 등에 대해 개념 정립도 하지 않은 채 덜컥 시행되고 보니 특정 사안에 대해 부처에 따라 해석이 다르고 국민권익위원회는 답변이 준비돼 있지 않아 모두가 '일단 멈춤'상태에 들어갔다. 혼란이 커진 후에야 '관계부처 합동 TF'를 구성키로 했다는 소식이다. 그 TF를 왜 사전에 만들지 않았는지, 혼선을 초래한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지, 준비 되지 않은 법안을 덜컥 시행한 데 대해 왜 아무도 책임을 묻지 않는지 궁금할 뿐이다. 정책의 도상연습과 준비가 부족하기로는 한진해운을 법정관리로 넘기기로 한 정부 결정도 마찬가지다. 민간기업들의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를 막고 시장규율을 바로 세우기 위해 한진해운을 법정관리로 넘긴 것은 맞는다고 하더라도 법정관리에 들어갈 경우 해외 채권단의 인질이 돼 먼 바다를 떠돌 수많은 선박들에 대한 처리방안은 철저하게 사전 검토해 국가경제 전체에 대한 피해를 최소화했어야 한다. 한진해운의 법정관리로 초래된 수많은 국제 물류 혼선을 막을 책임은 분명히 정부에 있다. 부동산 정책도 오락가락 하기는 마찬가지. 마땅한 투자처가 없는 엄청난 유동성들이 갈 곳이라고는 부동산밖에 없다는 것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사태였다. 가계부채가 사상 최고에 이른 상황에서 부동산 버블이 갑자기 꺼지거나 금리가 오르면 경제에 미치는 타격이 상상초월이라는 것도 누구나 예측가능한 일이다. 그런데도 몇 년이나 부동산 경기를 묵인(혹자는 '조장'이라는 표현을 한다.)하더니 올 들어서는 정책이 몇 달 간격으로 계속 달라지고 있다. 지난 8월 부동산 대책에서는 분명히 "냉, 온탕 정책은 안 한다"면서 실수요자들을 위해 아파트 집단대출을 용인한다고 발언하더니 최근에는 시중은행에 아파트 집단대출을 억제하라고 주문하는 등 갑자기 방향을 급선회한 것이다. 정책의 시그널이 불분명하면 혼선이 발생하고 선의의 피해자들이 늘어난다 분명히 말하지만 국민들은 정부와 국회로부터 서비스를 받아야할 사람들이다. 의도가 선량하다고 해서 결과가 저절로 좋아질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은 국회의원이나 공무원 자격이 없다. 이들이 국민들을 법이나 정책의 실험대상으로 여기는 것은 아닌지 우려되는 것은 지나친 생각일까.홍은주 한양사이버대 경제금융학 교수<ⓒ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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