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앤비전]공공외교의 기반, 해외 한국학의 진화

이시형 한국국제교류재단 이사장

삼국유사를 연구하는 베트남인, 개화기 신여성문학을 연구하는 폴란드인, 문학에 나타난 일본 제국주의와 민족정체성의 관계를 연구하는 독일인. 7월 초 서울에서 개최된 한국문학 워크숍에 참가한 학생들 면면이다. 한국학 분야 박사학위를 준비 중인 11개국 23명의 문학도는 함께 참석한 교수들과 1주일간 수준 높은 토론을 한국어로 진행해 한국학의 현주소를 보여주었다.한국학은 해외에서 이뤄지는 한국어, 역사, 문학 등 한국에 대한 전반적 연구라고 정의할 수 있다. 해외 한국학이 오늘날처럼 자리 잡는 데는 1991년 말 출범한 한국국제교류재단(Korea Foundation)의 역할이 적지 않았다. 초기 해외 한국학 지원은 한국학 교수직 설치, 한국학센터 운영, 장학지원 방식이었으며, 점차 방한연구 펠로십, 정책연구소 지원, 도서관 자료지원, 교재 개발로 이어졌다. 2000년대 한류 확산으로 크게 늘어난 한국학 강의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신진 연구자 육성사업을 추진하는데, 이즈음의 학생들이 이제는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이 시기 지원대상은 주요국 중심에서 벗어나 아시아, 중남미 등 세계 모든 지역으로 확산되고, 맞춤형 사업이 개발되어 현지어로 된 한국어 교재 개발, 한국어 교육자들을 위한 워크숍 개최로 발전된다. 한국학 교수직은 13국 119개인데, 처음부터 임시직 아닌 ‘종신교수 트랙(Tenure Track Professor)’을 지원함으로써 지원 종료 후에도 한국학 강의는 지속되는 기반을 마련했다. 교수직 설치가 어려운 대학에는 객원교수를 파견해 한국학을 정규과정에 포함시키는 노력을 해왔다. 오늘날 한국관련 강좌 개설 대학은 99개국 1292개 대학으로 91년 32개국 151개 대학에 비해 크게 늘어났다. 2011년 해외 한국학은 폭발적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인터넷 기반의 e-school 강의를 도입하고 인문학 중심에서 정치, 경제 등 사회과학 분야로 강의분야도 확대했다. 아시아지역은 서울의 대학이 내보내는 강의를 수강하며, 미주나 유럽은 한국과의 시차로 인해 현지 거점대학에서 주변국 대학으로 온라인 강의를 내보내고 있다. 미국 중서부 명문대학 협력체 'Big Ten Academic Alliance' 12개 대학은 미시건 대학의 한국학센터를 중심으로 각 대학이 보유한 한국학 강의를 서로에게 주고받으며 부족한 교수진과 강좌를 보완하고 있다. 온라인 강의가 각 캠퍼스의 오프라인 강의를 대체하여 한국학 기반을 훼손하지 않고, 오히려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면서 각 캠퍼스의 한국학 기반이 더욱 확대되고 있어 주목된다. 스페인 '말라가' 대학은 뜻있는 국내인사와 대학당국의 헌신적 노력으로 한국학 전공 학생이 200여명에 달해 한국학 거점대학으로 부상하고 있다. 졸업생들은 한국을 매개로 새로운 창업에도 도전하고 있어 한국학에 대한 관심이 한류에 대한 일시적 호기심 차원을 뛰어넘고 있다고 한다. 가을학기부터 멕시코 누에보레온 대학의 한국학 e-school망을 활용, 중남미 국가들과도 한국학을 공동 운영할 계획이다. 짧은 기간에 해외 한국학은 이처럼 발전했지만 당면한 도전은 결코 만만치 않다. 일본과 중국은 최근 세계적으로 유수한 대학에 수백만 내지 수천만 달러를 지원하며 일본석좌 또는 중국센터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KF의 올해 한국학 사업예산 총액은 120억원에 미치지 못하며 2017년도 예산도 크게 나아지지 않을 전망이다. 여름방학 동안 세계 각지에서 한국학에 헌신하고 있는 교수님들이 많이 찾아왔다. '예산이 부족하다', '업무가 타 기관으로 이관됐다'는 궁색한 이유를 들면서, 사명감과 성취감만으로 어려운 여건에서도 한국학의 발전을 위해 해외에서 일하고 계시는 분들의 기대에 충분히 부응할 수 없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이시형 한국국제교류재단 이사장<ⓒ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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