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한詩]잔치 커피/김수열

  섬사람들은 장례식장에서도 잔치 커피를 마신다 달짝지근한 믹스커피를 섬사람들은 잔치 커피라고 하는데 장례식장에 조문 가서 식사를 마치면 부름씨*하는 사람이 와서 묻는다 녹차? 잔치 커피?  잔치 커피, 하고 주문을 하는 순간 장례식장의 '장' 자는 휙 날아가고 예식장 식당으로 탈바꿈한다 명복을 비는 마음이야 어디 가겠느냐만 왁지지껄 흥성스러운 잔치판이 된다 보내는 상주도 떠나는 망자도 조금은 덜 슬퍼진다  섬에서는 죽음도 축제가 되고 섬에서 죽으면 죽어서 떠나는 날이 그야말로 잔칫날이다 망자를 데리러 온 저승사자도 달콤한 잔치 커피에 은근슬쩍 중독이 된다  *'심부름'의 제주 말.  
  죽음에 비할 수 있는 슬픔이 과연 있을까? 더구나 망자가 혈육이거나 부부라면 혹은 친구라면 또는 엊그제까지 함께 밥을 나누어 먹던 이웃이라면 그 거대하고 깊디깊은 슬픔을 어떻게 건널 수 있을까? 그것은 단연코 불가능한 일이다. 망자에 대한 산 자의 슬픔은 영원히 해소될 수 없다. 그래서 산 자들은 삭일 수밖에 없고 견딜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장례식이란 그런 일이 시작되는 첫 번째 자리다. 그러니 온통 슬픔으로 출렁이지만 곡소리는 도리어 맑아야 하고 조등은 오히려 따뜻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리하여 마침내 망자를 저 멀리 어딘가로 떠나보내는 것이 아니라 그를 산 자들의 삶 한가운데로 다시 불러들여 기억하고 서로를 껴안고 쓰다듬어야 할 것이다. 어쩌면 장례식은 그렇게 죽음과 삶이 비로소 함께하는 잔치의 첫날인지도 모른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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