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한詩]김 과장/고찬규

 김 과장 그는 과장이다  손짓이며 발짓 그 어떤 몸짓이나 웃음 심지어 아주 드물게 보이는 눈물까지도 과장이다  그 과장이 김 과장을 과장 자리에 올렸다  매일매일 거울을 보며 어디까지를 나로 인정해 줄까 묻고 답하고 묻고 답하고 수없는 문답을 스스로도 믿지 못하며  처자식만 없었어도 처자식만 없었어도 공염불을 염불처럼 되뇌며 김 과장은 오늘도 과장이다  
 처자식만 없었어도 내가 이러고 살지는 않았을 거다. 알지? 몰라? 정 과장은 다 알잖아. 대학 다닐 때 말야, 그때 말야, 나도 정의에 불탔었고 꿈이 있었더랬어. 왜 이래 진짜. 그때 화르륵 다 태워 버렸던 거야, 화르륵. 알잖아? 내가 누군지. 나 수색대 출신이야. 내가 깐 지뢰만 해도 오백 개가 넘어. 우리 동네에선 내가 수재였거든. 지금도 고향 가면 내가 동네 대소사 다 응, 막, 다 하고 그래. 어르신들이 나한테 다 물어보고 말야. 내가 진짜 처자식만 없었어도 확 그냥 들이받는 건데. 미경이 생각난다. 우리 마누라 말야. 이뻤지. 이뻤는데 지금은…… 후우, 그런데 지금 몇 시지? 오늘 우리 막둥이 생일이거든. 그래, 안다. 산다는 건 과장도 아니고 공염불도 아니다. 한 손엔 초코 케이크, 한 손엔 터닝메카드 하나 들고 비틀비틀 걸어가는 당신과 당신 그리고 김 과장이여. 채상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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