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新일자리 현장취재 - 이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지금 수입으론 생계에 살짝 부족
[아시아경제 권성회 기자, 금보령 기자]오전 8시57분. 직장인 대부분이 출근을 완료했을 무렵, 동대문역 1호선 하행선 플랫폼에 한 노신사가 나타났다. 깔끔한 옷차림에 가방을 옆으로 멘 그는 휴대전화를 꺼내 천천히 자판을 치기 시작했다. ‘출근했습니다.’ 조용문씨는 자신을 1941년생이라고 소개했다. 올해 나이 76세. 매일 오전 9시 동대문역에서 출근 보고를 한다는 그의 직업은 지하철택배원이다. “출근 보고는 누구한테 해요?” “회사에 연락합니다. 사무실에 있는 팀장님한테 문자 보내면 이따가 연락 올 거예요.” ‘위이잉.’ 출근 보고를 마친 조씨 휴대전화로 문자 하나가 도착했다. 방금 전 얘기한 팀장님으로부터 온 문자였다. “동대문종합시장에서 물건 수령해서 매봉역으로 가라고 하네요. 첫 물품 수령지가 이 근처라서 다행이에요.” 배송물건을 받은 그는 급한 걸음으로 지하철을 타러 갔다. 그의 속도를 따라잡느라 평소보다 더 빨리 걸어야만 했다. “빨리 도착해야 오전에 3건을 맡을 수 있어요. 첫 배송 시간이 오래 걸리면 오전에 2건만 맡을 수 있거든요. 그러면 하루 수입이 줄어요. 하루에 많으면 6건에서 7건을 맡는데 그 중에 하나 줄어들면 차이가 클 수밖에요.”
조용문씨가 물품 배송 중 열차를 기다리고 있다. 사진 = 금보령 기자
그가 갑자기 6-2라는 숫자 앞에 섰다. 3호선으로 환승하는 거리가 가장 짧은 곳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열차에 탄 뒤에는 근처 노약자석으로 향했다. 앉을 자리가 있는지 살폈지만 노약자석엔 이미 다른 노인들로 가득 차있었다. 열차 벽에 몸을 기댄 그는 눈을 마주하고 얘기를 시작했다. “이 일 시작한 지 이제 한 6년 됐어요. 그때 살던 지역 시청에서 직업 소개 프로그램을 통해 신청했거든요. 휴대전화를 다룰 줄 아는 사람을 필요로 하길래 제가 손을 들었죠. 한 스무 명 있었는데 손 든 사람은 저 혼자였어요.” 조씨 손에 들려 있는 스마트폰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고 편집까지 해서 개인 블로그에 올린다. 카카오톡은 기본으로 깔려 있었다. 대화 도중 노약자석에 자리가 났다. 자리에 앉은 그에게 바로 질문을 던졌다. 바깥 온도 31도까지 올라간다는 날 양복을 입고 있는 이유가 궁금했기 때문이다.“양복엔 주머니가 많아서 편리해요. 볼펜이며 뭐며 다 넣을 수 있으니까. 게다가 젊을 때 양복 입고 일했기 때문에 이게 더 편하기도 하고. 아 그리고 지하철 에어컨이 세서 안에 있으면 추워요. 더위는 잘 안 타는 대신 추위를 많이 타는 편이라서 6월 초까지만 해도 내복을 입고 다녔어요.” 매봉역에 도착해 물품을 전달하고는 다시 회사에 문자를 보냈다. 그래야 다음 주문을 받을 수 있어서다. 주문 문자를 받고, 발신인으로부터 물품을 수령하고, 수신인에게 물품을 전달한 뒤, 회사로 물품 전달 완료 문자를 보내야만 다시 주문 문자를 받는 구조다.
조용문씨가 첫 번째 배송을 마친 뒤 문자메시지로 회사에 보고를 하고 있다. 사진 = 금보령 기자
회사에서 답장이 금방 왔다. 교대역에 가서 대기하라는 내용이었다. 교대역에 도착하니 10시28분. 11시16분에 두 번째 주문이 들어오기 전까지 약 50분이 걸렸다. 그는 문자를 확인하자마자 “드디어!”라는 감탄사를 내뱉었다. 이번엔 남부터미널역으로 가야했다. “요새 경기가 안 좋지요? 작년에만 해도 물품 전달했다고 문자 보내면 바로 새 주문이 들어왔는데 최근엔 대기 시간이 조금 길어졌네요.” 두 번째 물품을 수령해 신대방삼거리역 근처 건물에 도착했다. 사무실 문을 여니 치과에 온 듯한 냄새가 났다. 안을 보니 치과기공사가 무언가를 열심히 만드는 중이었다. “사실 지하철 택배도 한 분야만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치기공소 관련 물품만 배달하는 사람들도 있고 양복만 배달하는 사람들도 있고. 아 백화점 택배만 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을지로4가역에 가면 볼 수 있을 텐데. 그런 사람들은 그 업체랑 계약을 맺은 사람들이죠. 그리고 일반적으로는 서류를 많이 배송하지만 가끔 무거운 것들이 있긴 해요.”
출처 = 조용문씨 블로그
두 번째 주문을 끝낸 시간은 오후 12시12분. 점심 메뉴로 참치김밥을 골랐다. “보통은 집사람이 싸주는 도시락을 들고 다녀요. 거의 샌드위치긴 한데… 먹다가 또 언제 주문 들어올지 모르니까 지하철 역에서 대기하면서 먹기도 편하고 괜찮아요.” 김밥 한 조각을 집어든 지 5분 만에 다시 휴대전화 알림 소리와 진동이 울렸다. 세 번째 주문이다. 구로디지털단지역에서 물건을 수령해 건대입구역까지 배송하는 일이다. 남은 김밥을 재빨리 해치우고 다시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구로디지털단지역 인근 한 오피스텔을 찾았다. “안녕하세요. 지하철 퀵입니다.” 의뢰인은 말없이 작은 상자 하나를 맡겼다. 조씨는 “인사를 해도 안 받아줄 때가 가장 서러워요”라고 털어 놓았다. 2시7분. 세 번째 주문을 끝낸 뒤 대기 시간 동안 카페에서 잠시 쉬며 얘기를 나누기로 했다. 평소에는 음료를 마실 여유조차 없다. 그에게 어떤 부분이 가장 힘드냐고 물었다. “무거운 물건을 배송할 때나 오래 걸어 다닐 때가 힘들죠. 그래도 가장 힘들 땐 남들로부터 무시당할 때입니다. 남들이 부끄럽지 않게 생각할 정도로 이 일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으면 좋겠네요.” 강남역에서 물건을 받아 을지로4가역으로 배송하는 네 번째 주문이 들어왔다. 조씨는 반쯤 남은 뜨거운 유자차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지하철이 도착하는 소리가 들리자 그는 성치 않은 무릎을 이끌고 계단을 뛰어올랐다. 조씨는 “무릎이 안 좋아서 계단에서는 항상 손잡이를 잡아야 합니다”고 말했다. 간신히 세이프. 3시2분, 강남역 인근 원단창고에 도착해 물건을 받았다. 단골 업체인 데다가 배송할 물품도 서류 한 장이라 큰 힘을 들이지 않는 일이었다. 이동 중에 또 다른 주문이 들어왔다. 잠실역에서 물품을 받아 을지로입구역으로 배송하라는 것이다. 마침 잠실역에 가까워져 4차와 5차 주문을 동시에 진행하기로 했다. 시간도 절약하면서 수입도 짭짤해지는, 택배원들로서는 좋은 업무다. “지금 잔돈(현금)이 없으니까 거기 가서 받으쇼.” 잠실의 한 사무실, 착불이라는 말은 없었다. 조씨가 “거스름돈 있으니까 계산하셔도 됩니다”고 말하자 50대로 보이는 의뢰인은 “아니, 내가 가진 돈이 없다고”라고 큰 소리로 말했다. 옆에 앉아 있던 한 지인이 “내가 대신 계산해 드릴게요”라며 만 원짜리 지폐를 내밀고 나서야 조씨는 무사히 지하철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는 “종종 있는 일이에요”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네 번째 주문의 목적지는 을지로4가역서 가까운 방산시장 A동. 지하철 택배를 오래 한 조씨도 처음 찾는 곳이었다. 기자가 지도 어플리케이션을 켜고 길을 찾으려 하자 조씨는 “길은 물어물어 가는 게 더 빨라요”라며 행인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덕분에 시장 속 복잡한 골목길을 빠르게 통과할 수 있었다. 배송을 완료한 뒤 곧바로 을지로입구역에 도착해 명동 한복판으로 향했다. 정확한 주소를 알려주지 않아 한 건물 앞에 도착해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상대방이 바로 사무실 위치를 알려줬다. 세 명이서 타도 비좁게 느껴지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건물 위로 올라갔다. 배송 종료 시간 5시2분이었다.
일러스트 = 오성수 작가
이날 조씨 담당의 배송은 총 5건. 운임은 총 3만8000원이다. 여기서 30%는 택배업체 몫이다. 즉, 8시간 일하고 조씨 손에 들어오는 건 2만6600원인 셈이다. 그는 “나는 운동도 하고, 용돈도 벌면서 일하면 되는데, 생계를 목적으로 하는 사람들 입장에선 조금은 부족한 돈이지요”라고 말했다. 사실 조씨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건 두 가지다. 하나는 책을 내는 것이다. “5년 정도는 더 일하면서 블로그에 쓴 글들을 모아 책을 내고 싶어요. 블로그 방문자 100만 명이 넘으면 100만원 기부도 하고 싶고요.” 또 다른 하나는 지하철 택배원들과 협동조합을 만드는 것이다. “사실 협동조합은 생각만 했지, 구체적으로 기획한 적은 없어요. 뜻이 통하는 사람 찾기도 어렵고. 그저 우리 같은 노인들이 조금 더 살기 편하도록 복지 제도가 잘 정비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조씨와 헤어지고 나서 50분 뒤, 기자에게 한 통의 문자가 도착했다. “오늘 수고 많이 했습니다. 마지막 배송은 어린이대공원역 가는 것으로 일과를 마치겠습니다.”권성회 기자 street@asiae.co.kr금보령 기자 gold@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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