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앤비전]무소불위의 정치

최성범 우석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

예전에 국회의원들 사이에서 '기자들만 없으면 국회의원이 정말 할 만하다'는 농담이 나돈 적이 있었다. 기업과 행정부에 대해선 겁날게 없는데 언론에 신경 써야 하는 상황을 빗댄 말이다. 공무원들 사이에선 '국회의원과 기자들만 없으면 공무원 정말 할 만하다'는 농담이 나돌기도 했다. 힘이 있는 집단이긴 해도 나름의 견제 세력이 있다는 의미다. 요즈음 정치에 대해 말들이 많다. 앞장서서 세상의 어려움을 풀어주기는커녕 오히려 국민들의 심기를 어지럽게 하고, 국민들의 살림살이에 걸림돌만 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국민이 오히려 정치를 걱정하는 지경이다. 공자는 "경제를 살리고, 국방을 튼튼하게 하고, 백성들에게 신뢰를 얻는 것이 정치의 요체이며 이 중에서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신뢰'라고 말한 공자의 말씀이 한가롭게 느껴지는 게 현실이다. 정치를 정(正)이라고 했던 유가의 가르침대로 바른 정치까지는 바라지도 않고 어지럽히지 않기만을 바라지만 요즘 세상의 정치가 돌아가는 모양새를 보면 혼돈 그 자체다. 정치의 현대적 정의가 '가치의 권위적 배분'이나 '갈등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이라고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처럼 보인다. 맨날 국회 탓만 하는 청와대의 주장을 차치하고라도 여야 할 것 없이 정치권의 모습이 볼썽사나운 건 분명한 사실이다. 정치가 이렇게 된 구조적 원인을 파고 들어가 보면 정치권만의 책임은 아님을 알 수 있다.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기본원리가 '견제와 균형(principle of checks and balances)'이라고 한다. 특히 미국 헌법의 경우 견제와 균형이 기본 원리다. 국가권력의 집중을 방지하고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기 위하여, 국가권력을 분할하여 상호견제하게 함으로써 균형을 유지시키는 통치조직상의 원리이지만 우리 사회에서 이러한 견제와 균형은 깨지고 말았다. 오로지 정치권력만이 모든 걸 독식한 채 견제조차 받지 않고 있는 게 현실이다. 고전적인 견제와 균형이 깨진 결과다. 한국 사회에도 견제와 균형이 자리 잡아가던 시절이 있었다. 5공화국 시절엔 절대 권력이 시민, 기업, 언론을 모두 지배해 거론할 필요도 없지만 1990년대 이후 언론과 기업 그리고 권력이 나름대로의 균형을 이뤘다고 볼 수 있었다. 정부는 기업에 대해, 언론은 정부와 정치권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했다. 반면 기업들은 언론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나름대로의 균형이 이뤄져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른바 시민사회-정부-언론 사이의 견제와 균형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현실을 돌아보면 순환적 균형이 완전히 깨진 상태에서 정치권이 무소불위의 절대 권력으로 자리 잡았다. 정치권이 절대 권력으로 우뚝 설 수 있었던 배경은 정치권이 제 역할을 잘 해서 힘이 생겨난 결과라기보다는 견제 세력들의 힘이 크게 약화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행정부는 1980년 이후 지속적인 규제완화와 행정의 투명화로 인해 그 권한을 많이 상실했다. 게다가 정치권의 가장 강력한 견제 세력이던 언론은 1990년대 중반 이후 경쟁이 심화되면서 그 영향력이 크게 줄어들었다. 인터넷 시대에 접어들면서 과거의 언론이 누리던 위상은 추락한 반면 인터넷 중심의 여론은 힘이 커지긴 했어도 제도화되고 조직화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정치권을 견제하기엔 아직 그 힘이 약한 듯하다. 오늘날 여야 할 것 없이 여론의 향배에 눈치조차 보지 않는 현실이 이를 대변한다. 게다가 최근 들어 우리 사회 먹이사슬의 최상위 포식자라는 재벌은 겉으로 드러내길 꺼리는 습성을 지니고 있다. 결국 정치권이 행정부와 언론의 힘이 약화된 틈을 비집고 들어와 그 힘이 거의 무소불위의 수준으로 커지고 말았다. 이미 국회와 국회의원이 견제조차 받지 않는 절대 권력기관이 되었다고 하는 평가가 우리 사회 곳곳에 이미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어떤 면에서 오늘날의 상황이 이미 예견됐던 거나 마찬가지다. 문제는 정치권의 무한독주가 당분간 계속될 것 같다는 점이다. 기성 언론과 행정부 등 기존 견제 세력의 힘이 빠진 가운데 정보화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균형이 등장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 같기 때문이다. 디지털 시대를 맞이해 직접민주주의의 가능성이 거론되는 상황에서 대의제에 기초한 정치권력은 오히려 그 힘이 강해지는 아이러니가 생겼다. 권력의 이동(power shift)가 이뤄져 힘의 공백이 생겨났고, 정치가 무섭게 느껴지는 현실 속에서 새로운 균형점이 생기길 기대해본다. 최성범 우석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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