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국기자
1968년 통혁당 사건으로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은 신영복 선생.
<1982년 4월 9일 대전에서 계수씨께.>"아! 나비다."창가에 서있던 친구의 놀라움에 찬 발견에얼른 일손 놓고 달려갔습니다.반짝반짝 희디흰 한 송이 꽃이 되어새 나비 한 마리가 춘삼월 훈풍 속을 날고 있었습니다.한 마리의 연약한 나비가봄하늘에 날아오르기까지 겪었을그 긴 역사에 대한 깨달음이겨우내 잠자던 나의 가슴을 아프게 파고들었습니다.작은 알이었던 시절부터한 점의 공간을 우주로 삼고소중히 생명을 간직해왔던고독과 적막의 밤을 견디고...,징그러운 번데기의 옷을 입고도한시도 자신의 성장을 멈추지 않았던각고의 시절을 이기고...,이제 꽃잎처럼 나래를 열어 찬란히 솟아오른 나비는,그것이 비록 연약한 한 마리의 미물에지나지 않는다 할 지라도,적어도 내게는 우람한 승리의 화신으로다가옵니다.담 넘어 날아든 무심한 나비 한 마리가펼쳐보인 봄의 뜻은,이 곳에는 꽃나무가 없어봄조차 가난하다던 푸념이얼마나 부끄러운 것인가를뉘우치게 합니다.<1982년 6월 8일 대전에서 계수씨께>교도소에 많은 것 중의 하나가 욕설입니다.아침부터 밤까지우리는 실로 흐드러진 욕설의 잔치 속에살고 있는 셈입니다.저도 징역 초기에는욕설을 듣는 방법이 너무 고지식하여단어 하나하나의 뜻을곧이곧대로 상상하다가어처구니 없는 궁상(窮狀)에 빠져헤어나지 못하기 일쑤이었습니다만지금은 그 방면에서도 어느 덧 이력이 나서한 알의 당의정을 삼키듯이순(耳順)의 경지에 이르렀다 하겠습니다.......저는 ....... 대상에 대한 사실적 인식을기초로 하면서 예리한 풍자와골계의 구조를 갖는 욕설에서,인텔리의 추상적 언어유희와는확연히 구별되는,적나라한 리얼리즘을 발견합니다.뿐만 아니라 욕설에 동원되는화재(話材)와 비유로부터시세(時世)와 인정,풍물에 대한뜸든 이해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이매우 귀중하게 여겨집니다.그러나 버섯이 아무리 곱다 한들화분에 떠서 기리지 않듯이욕설이 그 속에 아무리 뛰어난 예능을 담고 있다 한들그것은 기실 응달의 산물이며불행의 언어가 아닐 수 없습니다.<1982년 8월11일 대전에서 계수씨께>지난 번에는 교도소의 '우김질'에 대해이야기를 썼읍니다만,그 우김질도 찬찬히 관찰해보면자기 주장을 우기는 방법도 각인각색인데,대개 다음의 대여섯 범주로 구분할 수있습니다.첫째는,무작정 큰소리 하나로자기 주장을 관철하려는 방법입니다.목에 핏대를 세우는 고함때문에다른 사람의 반론이 묻혀버리는,이른바 "입만 있고 귀는 없는" 우격다짐입니다.둘째는,그 주장에 날카로운 신경질이가득 담겨있어서 자칫 싸움이 될까봐말상대를 꺼리기 때문에제대로의 시비나 쟁점에의 접근이 기피됨으로써일단 부전승의 외형을 띠는 경우입니다.세째는,최고급의 형용사,푸짐한 양사(詞),과장과 다변으로자기 주장의 거죽을 화려하게 치장하는 방법인데,이것은 감히 물량시대와 상업광고의아류라 할 만합니다.네째는,누구누구가 그렇게 말했다는둥,무슨 책에 그렇게 씌어있다는둥,자체의 조리나 논리적 귀결로써자기 주장을 입증하려하지 아니하고,유명인,특히 외국의 것에 편승,기술제휴(?)함으로써"촌놈 겁주려는"매판적 방법입니다.다섯째는,a1+a2+a3+...an등으로,자기 중에 +가 되는 요인을 병렬적으로나열하는 "+알파"의 방법입니다.결국 마이너스 요인에 대한플러스 요인의 우세로써자기주장의 정당성을 입증하는 방법인데,이는 소위 헤겔의 "실재적 가능성"으로서필연성의 일종이긴 하나필연성 그 자체와는 구별되는 것으로자연과학에 흔히 나타나는 기계적 사고의전형입니다.여섯째는,(자기의 주장을 편의상 "그것"이라고 한다면)우선 "그것"과의 반대물을 대비하고,전체 속에서의 "그것"의 위치를밝힘으로써그것의 객관적 의의를 규정하며,과거 현재 미래에 걸친시(時)계열상의 변화 및 발전의 형태를 제시하는등의 방법인데 이것은 한 마디로다른 것들과의 관계와 상호 연관 속에서"그것"을 동태적으로 규정하는 방법입니다.이들 가운데서 여섯 번째의 방법이가장 지성적인 것은 물론입니다.....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상대방이 자신의 오류를 스스로 깨닫도록은밀히 도와주고끈기있게 기다려 주는유연함과 후덕함을 갖추는 일입니다.<1983년 2월 7일 대전에서 계수씨께>......가장 두드러진 예를 든다면아마 '책가방끈이 길고 먹물이 든 사람"과그렇지 못한 사람간의 차이라고생각됩니다.전자는 대체로 벽돌을 쌓듯정제되고 계산된 언어와 논리를 구사하되필요 이상의 복잡한 표현과미시적 사고로 말미암아자기가 쳐놓은 의미망에 갇혀헤어나지 못합니다.도깨비이기는 마찬가지임에도 불구하고구태여 파란색 도깨비와 노란색 도깨비를구별하느라 수고롭습니다.이에 비하여 후자의 그것은 구체적이고그릇이 커서 손으로 만지듯확실하고 시원시원하기는 합니다.그러나 지나친 단순화와 무리,그리고 감정의 범람이 심하여수염과 눈썹을 구별치 않고목욕물과 함께 아이까지 내다버리는단색적 사고를 면치 못하는 경향이 있습니다.나는 십수 년의 징역을 살아오는 동안이 두 가지의 상반된 경향의틈새에서여러 형태의 방황과 시행착오를 경험해 왔음이사실입니다.복잡한 표현과 관념적 사고를 내심 즐기며,그것이 상위의 것이라 여기던오만의 시절이 있었는가 하면,조야한 비어를 배우고 주워섬김으로써마치 군중관점을 얻은 듯,자신의 관념성을 개조한 듯착각하던 시절도 있었습니다.뿐만 아니라 양쪽을 절충하여"중간은 정당하다"는 논리 속에 한동안 안주하다가중간은 "가공의 자리"이며,방관이며,기회주의이며,다른 형태의 방황임을 소스라쳐 깨닫고허둥지둥 그 자리를 떠나던 기억도없지 않습니다.<1984년 12월 28일 계수씨께>낡은 것으로부터의 결별이새로움의 한 조건이고 보면칼날같은 추위가낡은 것들을 가차없이잘라버리는 겨울의 한 복판에정월 초하루가 자리잡고 있는까닭을 알겠습니다<1988년 1월 30일 계수씨께>작년 여름 비로 다 내렸기 때문인지눈이 인색한 겨울이었습니다.눈이 내리면 눈 뒤끝의매서운 추위는죄다 우리가 입어야 하는데도눈 한 번 찐하게 안오나 젊은 친구들기다려쌓더니얼마 전 사흘 내리 눈 내리는 날기어이 운동장 구석에눈사람 하나 세웠습니다.옥뜰에 있는 눈사람,연탄조각으로 가슴에 박은글귀가 섬뜩합니다."나는 걷고싶다."있으면서도 걷지못하는우리들의 다리를 깨닫게 하는그 글귀는단단한 눈뭉치가 되어이마를 때립니다.<1984년 7월 14일 대전에서 형수님께>"꽃순이"는 밤이면 쥐들의 놀이터가 되는악대실습장을 지키기 위하여악대부원들이 겨우겨우 구해온고양이의 이름입니다.지금은 가출(?)해버린지 1년도 더 넘어서몰라볼 만큼 의젓한 한 마리의"도둑고양이"로 바뀌었을 뿐 아니라꽃순이라는 이름을 비웃기라도 하듯솔방울만한 불알을 과시하며"쥐와 고양이의 대결"로 점철된교도소의 밤을 늠름하게걷는 모습을 먼빛으로 가끔볼 수 있을 따름입니다.처음 고양이를 데려왔을 때는꽃순이라는 이름이 어울리는귀여운 새끼고양이였습니다.사람들의 손에 의한 부양과사람들의 무분별한 애완은 금방 고양이를 무력하게 만들고고양이로서의 자각을 더디게 하여아무리 기다려도쥐들을 자신의 먹이나 적으로 삼을 생각을않았습니다.쥐들로부터 찬장과 빨래,책등을 지키게 하려던애초의 의도가 무산되자이제는 사람들의 경멸과 학대가영문모르는새끼고양이를 들볶기 시작하였습니다.높은 데서 떨어뜨려지기도 하고,발길에 채이기도 하고,연탄불 집게에수염이 타기도 하고,안티플라민이 코에 발리기도 하는 등강훈(强訓)이란 이름의장난과 천대 속에눈만 사납게 빛내다가드디어 어느날 밤 비닐창문을 뚫고최초의 가출을 시작하였습니다.그러나 어린 고양이에게가출은 또 다른 고생과 위험의 연속이었습니다.우선 강아지만한 양재 공장의검은 고양이가자기의 영지에 침입한 이 새끼고양이를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우리는 한밤중에 꽃순이의 자지러지는비명을 듣기도 하고,다리를 절며 후미진 곳으로 도는처량한 모습을 보기도 하였습니다.그 후 꽃순이는몇 차례 제 발로 돌아오기도 하고어떤 때는 정구네트로 수렵을 당하여묶여지내기도 하였습니다.그러나 가장 뜻깊은 사실은,이처럼 파란만장한 역사를 겪는 동안이제는 사랑도 미움도 시들해져버린악대부원들의 관심 밖으로서서히,그리고 완전히 걸어나와"고양이의 길"을 걸어갔다는 사실입니다.얼마 전에는 꽃순이가양재공장의 검은 고양이와격렬한 한판 승부에서비기는현장을 목격하고꽃순이의 변모와 성장을 대견해하기도하였습니다.지금도 밤중에 고양이 소리가 나면우리 방의 악대부원 서너 명은얼른 창문을 열고 지나가는 고양이를 향해"꽃순아!"하고 상냥한 목소리를아는 체를 합니다.그러나 꽃순이는 사람들의 기척에잠시 경계의 몸짓을 해보일 뿐이쪽의 미련은거들떠 보지도 않습니다."꽃순이"라는 옛날의 이름으로부르는 쪽이 잘못이었는지도 모릅니다.꽃순이에 대한 다음의 이야기는쓰지 않으려고 하였습니다만생각 끝에 덧붙여 두기로하였습니다.그것은 며칠 전 악대원 몇 사람과함께 지도원 휴게실에 들렀다가거기서 우유며 통조림을 얻어먹고 있는꽃순이를 본 사실입니다.언제부터 이 먹을 것이 많은지도원을 드나들었는지알 수 없지만그날의 꽃순이는 먼빛으로 보며 대견해했던"밤의 왕자"가 아니었습니다."가발공장에 다니던 영자를 중동(中洞) 창녀촌에서보았을 때의 심정"을 안겨주는 것이었습니다.그러나 "꽃순이의 실패"도"중동의 영자"나이곳에 사는 모든 사람들의 실패나 마찬가지로그가 겪었을 모진 시련과 편력을알지 못하는 남들로서는함부로단언할 수 없는 것임은 물론입니다.**이렇게 인용하다간 한이 없겠습니다. 다산의 생애를 담은 전기를 읽고나서 차분히 소회를 적은 83년의 글도 내겐 큰 즐거움이었습니다.신영복님은 다산의 유배생활을 오히려 부러워하고 있는데,그것은 요즘옥살이보다 조선 유배가 더 팔자늘어진삶이어서가 아니라,그런 영어의 삶의 통해서 다산이 유지했던 삶의 꼿꼿함과 사유의 팽팽함에 스스로 못따라간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18년에 걸친 유형의 세월을 빛나는 창조의 공간으로 삼은 "비약"이 부러운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그러나 그런 부러움에도 불구하고, 신영복님의 삶 역시 다산 못지않게 늘 새로워지는 삶을 사셨고 궁핍과 고독과 절망 속에서도 힘 있는 삶의 한 모델을 보여주셨다 할 만 합니다.이런 책은 곁에 두고 두고두고 읽어야 할 텐데 게으름과 무심함이 이 사색의 장들을 다시 넘기는 기회를 미뤄왔습니다. 어젯밤 신영복선생의 별세 소식을 접하고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짧지 않은 기간의 암투병이 있었지만, 고결하게 생을 살아낸 큰 사람을 보내는 마음의 허기는 줄이기 어렵습니다. 세상의 가치들이 혼란스럽고 탐욕들이 들끓는 세한의 시절인지라, 선생의 빈 자리에 드는 한기가 더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고요히 명복을 빕니다.* 다음은 신영복선생 별세 관련 뉴스.15일 성공회대와 출판업계에 따르면 신영복 교수가 향년 75세 나이로 서울 양천구 자택에서 별세했다. 신 교수는 2014년 희귀 피부암 진단을 받고 투병 중이었으며 암이 다른 장기로 전이되면서 숨졌다. 이날 오후 9시 30분께 자택에서 호흡이 멈췄고 인근 이대목동병원으로 옮겨져 11시 47분 최종 사망선고가 내려졌다. 신 교수는 육사에서 경제학을 가르치는 교관으로 일하던 중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았다. 20년 20일을 복역하다가 1988년 광복절 특별 가석방으로 출소했다. 1989년부터 성공회대에서 정치경제학, 사회과학입문, 중국고전강독을 강의한 그는 1998년 사면복권됐다.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구속된 뒤 특별석방되기까지 20년간 수감생활을 하며 느낀 한과 고뇌를 230여장의 편지와 글로 풀어낸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다. 이외에도 ‘나무야 나무야’, ‘더불어 숲 1·2’, ‘강의-나의 동양고전독법’, ‘처음처럼’, ‘변방을 찾아서’ 등의 책을 냈다.빈소는 16일 오후 2시 성공회대 대학성당에 차려진다.이상국 기자 isomis@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