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X파일] 브라질 前 참모총장이 받은 ‘국채’라더니…

수조원 ‘국채 사기’, 유혹에 빠지는 이유…‘검은 거래’ 존재한다는 믿음, 일확천금 유혹 자극

[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 <div class="break_mod">‘법조 X파일’은 흥미로운 내용의 법원 판결이나 검찰 수사결과를 둘러싼 뒷얘기 등을 해설기사나 취재후기 형식으로 전하는 코너입니다.
“브라질 사람 S씨 할아버지가 수십 년 전에 브라질 육군참모총장을 역임한 공로로 당시 대통령으로부터 받은 국채다. S씨 형은 브라질 상원의원이다.”정확히 지구 반대편의 나라 브라질, 그곳에서 군 최고위직에 올랐던 인사가 ‘브라질 국채’를 받았다는데 쉽게 사실관계를 파악할 수 있을까. 국채 사기단은 바로 그 점을 노리고 ‘먹잇감’을 물색했다. 그들은 1972년 발행 ‘브라질 국채 H시리즈’가 현재 가치로 한국 돈 1조 원에 이른다고 주장했다. 황당한 주장처럼 들려 외면할 것 같지만, 잘만 하면 거액의 돈을 만질 수 있다는 유혹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다. 브라질 국채를 유동화하는 대가로 수익금의 25배까지 주겠다는 약속에 피해자 5명은 16억 원의 투자금을 건넸다. 피해자 중에는 전직 국회의원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중앙지검 외사부는 12일 브라질국채 유동화 명목으로 투자금을 가로챈 혐의로 홍콩 소재 K법인 이사 등을 구속 기소했다. 범행에 사용된 국채는 금전적 가치가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사진제공=서울중앙지검

‘국채 사기’는 세상 물정을 모르는 사람들만 당할 것이란 생각은 착각이라는 얘기다. 권력의 맛을 본 인물, 권력의 생리를 잘 아는 인물이 오히려 먹잇감이 되는 경우도 많다. ‘검은돈’의 유통 과정을 지켜봤던 이들은 그 유혹에 흔들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가만히 앉아서 거액의 돈을 만지는 게 가능하겠는가. 서울중앙지검 외사부(부장검사 전성원)가 수사한 결과 문제의 ‘브라질 국채 H시리즈’는 금전가치가 없는 ‘휴짓조각’과 다름없었다. 검찰은 브라질 재무성과 중앙은행의 답변을 통해 이러한 결론을 내렸다. 수조 원대 ‘브라질 국채’ 사기단은 무려 2년에 걸쳐 먹잇감을 물색했다. 지금은 검찰 수사로 꼬리가 밟혀 재판을 받는 처지가 됐다. 주목할 부분은 ‘국채 사기’ 사건이 근절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가끔은 어설픈 사기범이 코미디 같은 상황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지난해 7월 벌어진 사건이 그런 경우다. 50대 A씨는 2012년 지인으로부터 액면가 1억 원짜리 위조 국채 1만 장을 3000만 원을 주고 사들였다. 1조 원어치 위조 국채를 갖고 순진한(?) 사람에게 되팔면 큰돈을 벌 것으로 생각했다.알부자라고 소문난 80대 할머니에게 접근했다. 거액의 국채를 싼값에 넘기겠다고 유혹했다. 하지만 할머니는 결코 만만한 인물이 아니었다. A씨 행동을 의심한 할머니는 거래 현장에 경찰을 대동하고 나타났고, A씨는 현장에서 검거돼 결국 구속됐다.
지난해 4월에는 자신을 국가정보원 전 국장이라고 속인 B씨가 구속됐다. B씨는 ‘국가산업채권’을 처리하는 특정물건처리위원회 부위원장이란 가짜 직함을 내세워 피해자로부터 1억 원을 뜯어낸 혐의를 받았다. B씨는 일부 고위층만 아는 국채 투자정보가 있다면서 피해자를 유혹했다. 1억 원을 투자하면 15억 원을 돌려주겠다고 속인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 조사 결과 B씨는 전과가 있는 무직자에 불과했지만, 주변 사람들은 그를 ‘대단한 사람’으로 믿고 있었다고 한다. 국채 사기 사건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여전히 검은 거래가 이뤄질 것이란 믿음 때문이다. 과거 정권의 실력자가 숨겨둔 비자금을 갖고 있다는 주장, 특정 국가 유력 인사의 채권을 갖고 있다는 주장이 의외로 사람들의 마음을 흔드는 이유다. 게다가 ‘브라질 채권’ 사건의 경우처럼 사기 수법도 점점 지능화하고 있다. 사기단은 ‘블룸버그(Bloomberg)’에 브라질 국채를 등록해 매각하거나 금융권에 담보로 제공할 수 있다는 그럴듯한 방법을 제시해 피해자들을 더욱 헷갈리게 했다. 일반인 입장에서는 일단 용어부터 어렵고, 주장이 사실인지 확인하기는 더욱 어렵다. 검찰은 “(사기단은) 국제증권식별번호인 'ISIN'을 취득하고 블룸버그에도 등록했다고 말했지만, 한국거래소를 통해 조회한 결과 거짓으로 확인됐다”면서 “피해자들에게 제시했던 블룸버그 화면 파일도 편집의 흔적이 있는 허위였다”고 설명했다.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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