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작가 이완이 진단한 '메이드 인 대한민국'

민속촌·가발공장·황학동시장서 만난 지금 우리의 모습

이완, 메이드인 코리아(짚신), 영상, 2015년.

[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 짚신을 만드는 사람, 양반의 시중을 드는 노비, 동냥하러 다니는 거지…. 조선시대 풍경을 고스란히 옮겨 놓은 경기도 용인 한국민속촌. 이곳은 과거 봉건체제 속에 실재한 계급의 차이가 어떠했는지 보여준다. 배우들이 입은 옷부터 행동거지가 모두 다르다. 그런데 실상 민속촌은 옛 풍습을 재현해 이윤을 창출하는 기업이고, 배우들은 이곳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민속촌 안에서도 현대사회의 감춰진 계급 차이가 보인다. # 1960~70년대 경공업 주도형 국가경제성장의 밑거름이 됐던 가발 산업. 그 주역들은 지금도 가발을 만들고 있을까? 추적 끝에 여전히 똑같은 일을 수 십 년 동안 하고 있는 이들을 만났다. 현재 남아 있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라고 한다. 중국의 값싼 노동력 탓에 이들 인건비는 기본 시급도 안 된다. 직접 가발을 만들어보려고 하니 1시간에 1㎡ 정도를 메울 뿐인데, 하루에 여섯 시간 정도 일한다 치면 보름에 가발 하나를 완성할 수 있을까 말까다. 그런데 이들은 일주일이면 한 개를 뚝딱 만들어낸다.다큐 영상이 그린 민속촌과 가발 노동자들의 이야기다. 한국 현대미술의 주역으로 꼽히는 이완 작가(36)가 영상의 주인공들과 한 인터뷰를 간추렸다. 이 작가의 이번 다큐 작업은 지난 2013년부터 진행해 온 '메이드 인'(Made In) 시리즈의 일부다. 대만, 태국, 미얀마,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5개국에 이어 이번엔 작가의 출생지인 한국을 무대로 했다. 작가는 그 동안 사탕수수 농장에서 설탕을 추출하고(대만), 실크회사에 취직해 누에고치에서 실을 뽑아 염색천을 만들어 옷을 짓고(태국), 땅을 빌려 쌀농사를 짓는(캄보디아) 등 특정 상품을 만들기 위한 과정에 참여해 사회ㆍ역사ㆍ경제적인 맥락을 담은 영상 작품들을 만들어왔다. 한국편의 큰 줄기는 짚신과 가발 만들기다. 작가는 '메이드 인 코리아' 작품과 함께 가격표가 달린 황학동의 골동품들을 찍은 사진, 꾸준히 모아온 수집품, 설치작품 등을 모아 전시하고 있다. 제목부터 예사롭지 않다. '울고 간 새와 울러 올 새의 적막 사이에서'다. 김수영 시인이 1958년에 쓴 '동맥(冬麥)'의 마지막 연에서 따왔다. 시는 겨울의 칼바람 속에도 푸른빛을 잃지 않는 겨울 보리처럼 힘든 상황 속에서도 지녀야 할 견결한 삶의 태도를 이야기한다. 이완 작가는 "'울고 간' 그리고 '울러 올'이란 말에서 한이 서린 듯한 절망감과 비관적인 감정이 느껴진다. 그 비관을 긍정으로 이끌 '적막'을 작품에 표현하고 싶었다"고 했다.

전시장 유리창 안쪽으로 보이는 작품 '더욱 밝은 내일을 위하여'를 설명하고 있는 이완 작가.

이완, 상품(Product), C-print, 160x210cm, 2015년.

작품에서 알수 있듯이 이번 전시의 주제는 작가가 진단하는 '대한민국'이다. 갤러리 정면 유리창 안쪽에는 한국적 색채가 다분한, 포스터 형태의 대형 그림이 걸려 있다. 그림에 쓰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필 휘호 '더욱 밝은 내일을 위하여'가 작품 제목이다. 만개한 무궁화 꽃들 위로 아들을 가운데 둔 부부의 모습을 그렸다. 작가는 "'한국'을 표현하는 이미지를 고민하다 사회주의 선전 이미지에서 영감을 얻었다. 권위주의 정부시절 국가가 선도하는 공익광고 포스터와도 유사하다"며 "여기에 평범한 가족을 그렸다. 국가에 대한 인식이 개인마다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개별적인 느낌을 관람객들이 어떻게 느낄지 궁금했다"고 했다. 작가가 몇 해에 걸쳐 취미로 수집한 물건들도 눈길을 끈다. 가격표가 그대로 붙어있는 종교적 상징물부터 게다(나막신)를 신은 친일파 인물이 담긴 오래된 흑백사진, 시대상을 읽을 수 있는 신문, 책, 기록물 그리고 어느 한 개인의 일대기를 읽을 수 있는 여러 사진들을 모았다. 여기에 핑크빛 네온을 발산해 산의 형상을 만들고 있는 설치작품도 함께 비치했다. 그는 "우리나라는 지역적인 문화 차이가 두드러진다. 사투리가 그렇고, 지역감정이 그렇다. 산맥과 강, 자연이 사람의 의식도 나눠놓았다"고 해석했다.이번 전시는 작가 이완이 '한국적인 것'을 추적하며, 근대화와 산업화 이후 한국의 변화상과 오래된 것들의 의미를 담아낸 작업이다. 그는 "'메이드 인' 시리즈는 우리가 관심 없이 흘려버리는 것들을 붙잡아 국가와 개인, 역사와 사회에 관심을 갖도록 하려고 한 것"이라고 했다.이완은 지난해 삼성미술관 리움이 선정한 제 1회 아트스펙트럼 작가상을 수상했으며, 제 10회 광주비엔날레 '터전을 불태우라'전의 참여 작가이기도 하다. 최근 국내외에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작가는 내년 삼성미술관 플라토에서 개인전을 앞두고 있다. 이번 전시는 오는 5월 20일까지.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 313아트프로젝트. 02-3446-3137.오진희 기자 valere@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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