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철의 인사이드스포츠]집 잃은 샤크타르와 이라크

세계 최고의 프로축구 클럽 대항전인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2014-2015 16강전이 열기 속에 펼쳐지고 있다. 18일(한국시간)과 19일에 1차전 네 경기가 열렸고, 나머지 네 경기가 25일과 26일 펼쳐진다. 그렇잖아도 국내 축구 팬들에게 월드컵에 못지않은 관심을 받고 있는 챔피언스리그인데, 올 시즌에는 세계적인 수준의 선수로 성장한 손흥민까지 출전하고 있어 더욱 관심을 받는다. 손흥민의 바이에르 레버쿠젠은 32강 조별 리그 C조에서 3승1무2패 승점 11로 모나코(3승2무1패 승점 12)에 이어 조 2위로 16강에 올랐다. 손흥민은 팀 내 최다인 세 골을 터뜨렸다. 레버쿠젠은 오는 26일 새벽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 16강 1차전을 한다. 이번 챔피언스리그 16강은 요즘 프로야구 팬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말인 ‘UTU'가 이뤄졌다. UTU(Up team is up)는 엉터리 영어 약자로 '올라갈 팀은 올라간다'는 뜻이다. 반대말은 DTD(Down team is down)이다. 시즌 중반까지 고전했지만 '가을 잔치'에 나서는 저력의 팀과 시즌 중반까지는 잘나갔지만 전력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하는 팀을 묶어서 'UTU DTD'로 표현한다. 이번 16강 대진은 파리 생제르망-첼시, 맨체스터시티-바르셀로나, 레버쿠젠-마드리드, 유벤투스-보르시아 도르트문트, 샬케 04-레알 마드리드, 샤크타르 도네츠크-바이에른 뮌헨, 아스널-모나코, 바젤-포르투로 구성됐다. B조에서 스위스 클럽인 바젤이 잉글랜드 클럽인 리버풀을 제치고 16강에 합류한 것 정도를 빼면 이변이라고 할 만한 내용이 없다. 16강에 오른 모든 클럽이 국내 축구 팬들 귀에 익숙한 가운데 바젤의 경우, 한국의 박주호와 북한의 박광룡이 한때 같이 뛴 적이 있다. 박광룡은 북한 국적 선수로는 처음으로 챔피언스리그(2011-2012시즌) 출전 기록을 갖고 있다. 이때 박주호도 함께 그라운드를 누볐다. 박광룡은 2014-2015시즌 현재 스위스 2부리그 챌린지 리그 소속의 리히텐슈타인 클럽 파두츠에서 임대 선수로 뛰고 있다. 클럽 이름은 모두 익숙한데 올 시즌 챔피언스리그 진행 과정을 보면 낯설면서 특이한 점이 있다. 조별리그 H조에서 아틀레티코 빌바오와 베이트 보리소프를 제치고 포르투에 이어 조 2위로 16강에 진출한 우크라이나 프리미어리그의 강호인 샤크타르의 행보다. 지난 18일 새벽 뮌헨은 원정 1차전에서 샤크타르와 0-0으로 비겼다. 그런데 경기 장소가 샤크타르의 연고지인 도네츠크가 아닌 리비우였다. 샤크타르가 5만2000여명을 수용하는 홈구장 도네츠크 돈바스 아레나가 아닌 3만5000여명 수용 규모의 아레나 리비우에서 홈경기를 치른 데에는 이유가 있다. 최근 유럽을 큰 혼란에 빠뜨리고 있는 '우크라이나 사태' 때문이다. 두 도시는 우크라이나의 동쪽 끝(도네츠크)과 서쪽 끝(리비우)에 있다. 우리나라로 치면 강릉과 인천쯤 되는데 거리가 1000km 정도이니 강릉-인천의 네 배쯤 되는 꽤 먼 거리다. 샤크타르는 조별리그 홈 세 경기도 모두 아레나 리비우에서 치렀다. 아레나 리비우는 임시 홈구장이긴 하지만 폴란드와 공동 개최한 '유로 2012' 조별리그 세 경기를 개최한 수준급 구장이다. 지은 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러나 경기장 시설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샤크타르는 챔피언스리그 경기뿐만 아니라 23일 현재 디나모 키예프에 이어 2위를 달리고 있는 리그 경기도 모두 이 경기장에서 치르고 있다. 강원 FC가 인천에서 시즌 모든 경기를 하고 있는 셈이다. 돈바스 아레나는 '우크라이나 사태'로 집을 잃은 피난민들의 임시 거처로 쓰이고 있다. 구장 시설도 우크라이나 정부군과 분리주의 반군의 전투 때문에 많이 파괴됐다고 한다. 전쟁이 스포츠 활동에 악영향을 미친 것이다. 전쟁이 스포츠, 특히 축구에 나쁜 영향을 끼친 사례는 세계 축구사에서 적잖게 찾아볼 수 있다. 이라크는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축구에서 4강에 올라 전쟁에 지친 국민들에게 큰 위로를 안겼다. 선수들은 3위 결정전에서 이탈리아에 0-1로 져 메달을 목에 걸지 못했는데도 귀국 길에서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그런데 이라크는 아시아 지역 예선에서 힘든 과정을 겪었다. 애초 그들은 2003년 4월 베트남과 아테네 올림픽 아시아 지역 1차 예선 홈경기를 치르게 돼 있었다. 그러나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가시화되자 홈경기 장소가 1차적으로 중립 지역인 시리아의 다마스커스로 옮겨졌다. 이 일정마저도 미국과 전쟁으로 연기돼 9월 10일 다마스커스에서 1차전(3-1 승)을 갖게 됐다. 이라크는 9월 17일 베트남 원정 경기에서 1-1로 비겨 2차 예선에 진출했다. 2차 예선과 최종 예선도 이라크는 모든 경기를 원정으로 치러야 했다. 이라크는 우승을 이룬 2007년 아시안컵(동남아시아 4개국) 예선에서도 홈경기를 아랍에미리트연합(UAE)에서 치렀다. 2011년 아시안컵(카타르)은 전 대회 챔피언 자격으로 예선을 거치지 않았지만 2015년 아시안컵(호주) 예선도 UAE에서 가졌고, 준결승에서 한국에 0-2로 졌다. 이라크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예선도 요르단(2차)과 카타르(최종)에서 치렀다. 2012년 런던 올림픽 2차 예선에선 홈인 아르빌에서 경기를 했으나 3차 예선은 다시 카타르로 홈경기 장소를 옮겨야 했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예선에서는 시리아(1차)와 UAE(3차)가 홈경기 장소였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 2차 예선과 3차 예선은 다시 홈인 아르빌에서 경기를 치렀다. 그러나 최종 예선은 카타르로 홈경기 장소를 다시 이동해야 했다. 유랑 극단 같은 일정에서 올림픽 4강과 아시안컵 우승을 일궈낸 이라크 축구의 저력이 놀랍다. 샤크타르는 16강 1차전에서 비록 홈구장은 아니었지만 3만4187명의 유료 관중 가운데 대부분인 우크라이나 팬들의 응원을 받으며 뛰었다. 객관적인 전력 차는 있지만 후반 20분 이후에는 수적 우위를 발판 삼아 바이에른 뮌헨을 몰아붙였다. 제대로 된 환경에서 1차전 홈 경기를 승리로 이끌었다면 다음달 12일 알리안츠 아레나에서 열리는 2차전에서 이변을 연출할 가능성이 높지 않았을까. 물론 스포츠에는 가정이 없지만. 신명철 스포츠 칼럼니스트<ⓒ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스포츠레저부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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