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우진 국제부 선임기자
미래는 이미 현재 어디엔가 자리를 잡고 전개되고 있다. 우리는 대부분 그 미래를 알아차리지 못하거나 그냥 지나친다. 미래를 인지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미래는 분명 지금과 판이하게 다른 무언가일 것이라고 상정하는 것이다. 그런 생각 중 하나가 미래에는 인간이 컴퓨터로 대체됐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소프트웨어로 돌아가는 컴퓨터가 사람의 두뇌 노동을 대신한다는 예상이다. 벤처투자가 마크 앤드리슨은 "소프트웨어가 세상을 잡아먹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벤처투자가 앤디 캐슬러는 생산성을 높이는 최선의 방법은 "사람을 치우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학자들이 이 전망을 뒷받침한다. 영국 옥스퍼드 대학의 칼 프레이와 마이클 오즈번 박사는 '생각의 기계화'가 현실이 되는 순간 현재 존재하는 직업의 절반 이상이 사라질 수 있다고 예측한다. 김대식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 교수는 "팔다리 '힘'만을 대체할 수 있는 기계를 탄생시킨 '제1차 기계 혁명'과는 달리 미래 기계들은 정보를 이해하고 처리하는 인간의 '생각' 능력 역시 대체할 것"이라고 본다. 이어 "오늘날 초등학생들이 성인이 될 무렵 그들의 최고 경쟁자는 더 이상 명문대 졸업생도, 유학생도 아닌, 생각할 수 있는 기계일 거라는 말"이라고 설명한다. 피터 틸은 이와 같은 통념에 동의하지 않는다. 페이팔 공동창업자로 현재 벤처캐피털 파운더스펀드를 운영하는 틸은 컴퓨터는 인간의 보완물이지 대체물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나는 틸의 생각에 동의한다. 틸은 컴퓨터는 방대한 데이터를 효율적으로 처리하지만 사람처럼 계획을 세우고 결정을 내리지는 못한다고 설명한다. 그는 "컴퓨터는 경쟁자가 아니라 도구일 뿐"이라고 단언한다. 틸은 컴퓨터와 인간의 역할이 다르다는 분석에 머물지 않고 한 걸음 더 내딛는다. 그는 컴퓨터와 인간의 상호 보완 관계를 현실에 적용하기로 한다. 그는 방대하고 다양한 정보로부터 컴퓨터가 유의미한 것으로 추정되는 자료를 걸러내면 이를 해당 분야 전문가가 분석해 적용 가능한 결론을 뽑아내는 컴퓨터-인간 협업 소프트웨어 회사를 차렸다. 그 회사가 2004년 출범한 팰런티어다. 팰런티어는 인간의 지능만으로 하지 못하던 방대한 데이터를 검토했고 컴퓨터만으로는 파악하지 못했던 단서를 끄집어냈다. 팰런티어는 컴퓨터 소프트웨어가 미국 정부가 주는 데이터를 분석해 수상한 행위를 골라내면 이를 훈련된 애널리스트들이 검토하는 두 단계로 정보를 분석한다. 팰런티어는 아프가니스탄에서 반군이 사제폭탄을 어디에 심는지 예측했고 내부 거래를 한 고위직을 기소했고 세계 최대의 아동 포르노 단체를 붙잡았다. 또 질병통제예방센터가 식중독에 맞서 싸우는 것을 도왔고 고도의 금융사기를 탐지해 시중은행과 정부가 매년 수억 달러를 절약하게 해줬다. 팰런티어는 지난해 매출 10억달러를 올린 것으로 추정된다.(피터 틸 '제로 투 원') 틸은 미래는 먼저 장악하는 사람과 조직의 몫임을 보여줬다. 틸은 인간과 컴퓨터가 보완적이며 이 관계를 잘 활용하면 전보다 훨씬 큰 성과를 낼 수 있음을 팰런티어로 입증했다. 컴퓨터와 사람이 대결하는 것이 아니라 '컴퓨터를 잘 부리는 기업'과 '그렇지 않은 기업'이 경쟁하는 것임을 보여줬다. 컴퓨터를 활용하는 영역이 확대되면서 이미 산업 지형이 바뀌었다. 구글과 애플이 컴퓨터 소프트웨어의 힘을 입증했다. 유통에서도 인터넷에 소프트웨어를 얹어 상품을 판매ㆍ중개하는 알리바바와 아마존이 강자가 됐다. 기존 미디어 자리를 인터넷 포털과 유튜브에 이어 페이스북, 카카오톡이 대신하고 있다. 산업의 소프트웨어화(化)는 앞으로 점점 뚜렷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제조업에서도 소프트웨어로 업그레이드하는 기업이 앞서갈 수 있다. 그런데 한국은 소프트웨어 인력이 부족하고 덜 배출된다. 조현정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 회장은 연간 배출되는 소프트웨어 인력이 1만명에 불과하다며 '소프트웨어 인력 30만 양성'을 주장해왔다. 한국 산업의 미래를 만들기 위해 귀 기울이고 실행해야 할 주장이다. 백우진 국제부 선임기자 cobalt100@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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