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스 바이어스 클럽' 감독 연출, 닉 혼비 각본
영화 '와일드' 중에서
[아시아경제 조민서 기자]바위로 뒤덮인 가파르고 황량한 산. 집채만한 등산 배낭을 맨 한 여자가 잠시 숨을 고른다. 한쪽 신발을 벗어 보았더니 발가락 부분의 새빨간 피가 양말을 흥건히 적신 상태다. 발톱 뿌리를 뽑으면서 여자는 고통스런 신음을 내뱉는다. 아차하는 순간, 벗어놓은 신발이 산 골짜기로 하염없이 굴러 떨어지고, 여자는 절규한다. 아예 남은 신발 한 짝마저 던져버린 이 여자에게는 과연 어떤 사연이 있을까. '못이 되느니 망치가 되겠어.....' 궁금증을 남기고 '사이먼 앤 가펑클'의 '철새는 날아가고(El Condor Pasa)'의 전주가 흘러나온다. 영화 '와일드(Wild)'는 2012년 출간 된 셰릴 스트레이드의 동명의 자서전을 원작으로 한다. 셰릴은 어린 시절 폭력적인 아버지 밑에서 가난하고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낸다. 결국 부모의 이혼으로 어머니와 남동생과 함께 살게 된 그녀는 늘 의욕적이고 낙천적이었던 어머니를 의지하며 커간다. 하지만 그런 어머니마저 병으로 세상을 떠나자 셰릴은 삶의 의지를 스스로 거둬들인다. 마약과 섹스로 피폐한 생활을 하던 셰릴은 어느 날 이 생활을 정리하기로 결심한다. 돌아가신 어머니에게 다시 한 번 자랑스러운 딸이 되기 위해 그녀는 무작정 걷기로 결심한다. 그것도 죽음의 코스로 불리는 PCT(the Pacific Crest Trail)를 말이다.
영화 '와일드'
PCT는 멕시코 국경에서 캐나다 국경을 잇는 4285km의 트래킹 코스다. 건장한 남자들도 걷다가 포기하는 '악마의 코스'로 소문난 PCT를 셰릴은 무작정 걷는다. 잘못된 연료를 가져와 식은 죽을 먹고, 온 몸에 멍이 들어 상처투성이가 되어도 그는 코스별 방명록마다 자신만의 어록을 남기면서 끝까지 걸어낸다. 거친 등산로, 눈 덮인 고산 지대, 광활한 평원과 화산지대를 홀로 꿋꿋이 걸어가면서 그는 지난 시절의 상처를 하나 둘 끄집어낸다. 무기력하게 떠나보냈던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자기 자신을 파괴하며 보낸 지난날의 악몽이 그림자처럼 셰릴의 고된 여정을 함께 한다. 그리고 마침내 94일 간의 사투 끝에 끝내 셰릴이 완주했을 때의 환희와 감동은 관객들에게도 전이된다. 국내 관객들에게는 여전히 사랑스럽고 로맨틱한 이미지로 남아있는 리즈 위더스푼은 잃을 것 하나 없고, 돌아갈 곳 하나 없는 셰릴을 실감나게 연기해 이번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의 장 마크 발레 감독이 연출을 맡고, 영국 작가 닉 혼비가 각본에 참여했다. "어쩌다 이런 쓰레기가 됐는지 몰라" 영화 속 셰릴의 한탄처럼 인생을 다시 시작하고 싶은 이들이라면 더욱 큰 울림을 받을 듯 하다. 영화 내내 전주만 흘러나오던 '철새는 날아가고'가 영화 마지막 부문에 이르러서야 마침내 크게 울려 퍼질 때의 전율도 짜릿하다. 22일 개봉.조민서 기자 summer@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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