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참사 200일 거리에 선 주부들 '우리도 엄마니까요'

온라인커뮤니티 82쿡 회원들, 두번째 세월호 가족돕기 바자회…'외로운 그 분들께 힘 보태고파'

▲ 1일 오전 온라인 커뮤니티 82쿡 '세월호를 생각하는 엄마들의 모임' 회원들이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세월호 유가족을 돕기 위한 바자회를 열어 유명인들이 기증한 물품 등을 경매에 붙이고 있다. 사진제공=82쿡

[아시아경제 이혜영 기자] "우리에게 정치색을 덧씌우는 사람들도 많지만 저희는 평범한 시민입니다. 우리가 이 곳에 있는 이유는 단지 누군가의 엄마이고 가족이기 때문일 뿐이에요."지난달 30일 오후 2시께 서울 종로구 조계사 한 켠에 자리잡은 천막 안으로 크고 작은 종이상자가 쉴새 없이 배달됐다. 전국 각지에서 보낸 상자에는 하나같이 보낸 이의 정성과 마음이 가득 담겼다. '엄마'들은 끊임없이 밀려드는 상자에 분주히 움직이면서 온기를 나눠 준 '익명의 기증자'들에게 연신 고마운 마음을 표했다. 이들은 국내 대표 온라인 커뮤니티 중 한 곳인 '82쿡'(www.82cook.com) 회원들. 엄마들이 또 이렇게 가정 밖으로 나선 것은 진도 팽목항과 안산 합동분향소, 광화문 광장 등지에서 참사 당일부터 지금까지 '통곡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세월호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을 돕기 위해서다.  세월호 참사 200일째인 1일에 연 바자회는 지난 9월 27일에 이은 두번째다. 이번 바자회 역시 시작부터 실행까지 모두 엄마들의 손에서 이뤄졌다. 10대 남매를 둔 닉네임 '불면증' 회원은 "세월호 가족들은 그 어느 때보다 외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길거리에서 노숙을 하고, 정치인들 앞에서 무릎까지 꿇는 가족들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닉네임 '키퍼' 회원은 "어렵고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이 희망을 잃지 않으셨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안고 행사에 동참하게 됐다"고 했다. 고3 수험생을 둔 닉네임 '잠만보' 회원은 잠시 일손을 도우러 왔다 차마 발길을 돌리지 못하고 몇시간째 회원들과 함께했다.  

82쿡 회원들이 보내 온 각종 물품은 회원들이 직접 분류와 정리를 한 다음 일반 시민에 판매된다. 중고품이 많게 마련인 여느 바자회와 달리 단 한번도 착용하지 않은 신발과 옷, 가방 등이 대다수다. 동대문에서 직접 행주를 구매해 딸과 함께 수를 놓아 기증한 회원도 있다. 여기에 직접 담근 고추장과 매실액, 밭에서 키운 참깨, 노란 리본을 붙여 정성스레 포장한 수제쿠키도 한가득 전해왔다. 직접 현장을 찾지 못한 시민들은 손글씨로 적은 편지에서 '함께하지 못해 미안하다. 송구스럽다. 작은 힘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란다'는 애틋한 마음을 전하기도 했다.  행사를 준비하던 회원들은 "바자회 물품을 착불로 보내라는 안내를 했지만 대부분 회원들이 선불로 보내주고 있다"며 "세월호 가족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은 절실한 마음을 갖고 동참하는 분들이기에 가능한 일인 것 같다"고 말했다.  중학교 3학년 아들을 둔 닉네임 '루루'인 회원은 "더 좋은 물건을 시민들과 나누고 그 마음을 세월호 가족분들께 그대로 전해드리기 위해 자원봉사에 참여한 엄마들은 절대 물품을 먼저 구입하는 일이 없다"며 "도와주시는 분들이 세월호 가족들을 위로하고 응원하는 마음을 그대로 전해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엄마들의 움직임에 문화예술인과 조계종도 힘을 보탰다. 조계사는 바자회 장소를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던 이들에게 선뜻 경내 공간을 내줬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촉구 영화인모임'의 정지영·방은진·장준환 감독과 배우 문소리·이선균·장혁씨 등은 소장품을 기증하거나 직접 바자회장을 방문해 행사에 참여했다.  회원들은 우리 이웃의 따뜻한 마음을 확인한 것에 감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평범한 주부들을 거리로 나오게 한 대한민국의 현실에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외국에서 오랫동안 살다 고국으로 돌아온 '키퍼' 회원은 "우리가 자랄 땐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간다는 희망이 있었는데 지금 우리의 모습은 절망적인 수준"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불면증' 회원도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200일이 됐지만 단 한명도 구조해내지 못할 만큼 참담한 수준의 정부는 변한게 하나도 없다"며 "그런 분노와 실망이 엄마들을 이 자리로 나오게 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치색을 띤 모임이라는 일각의 지적에 대해 회원들은 단호히 선을 그었다. 한 회원은 "바자회 준비에 참여한 한 회원은 대선 때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한 사람이고, 나도 보수정당에 투표하던 시민이었다"며 "세월호 참사는 우리가 모두 피해자가 될 수 있었던 비극적인 일이고 다시는 일어나지 않아야 하기에 발 벗고 나선 것이지 지지정당의 논리를 들이대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또 "주부들은 '자기 일처럼' 나서는 게 아니라 '자기 일'이기 때문에 동참하는 것"이라며 "우리 사회가 고치고 바꿔야 할 것들을 그대로 둔다면 결국 구성원으로 살아야 할 자식들의 몫이 될 텐데 부모로서 그 짐을 최대한 덜어주고 싶은 마음"이라고 말했다.이들은 세월호특별법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여당의 실망스런 행태와 국민에게 야당 역할을 떠넘겨버린 정치권 그리고 참사 때부터 지금까지 제 역할을 하지 못한 정부의 각성을 촉구했다.  숨 돌릴 틈 없이 진행되던 바자회 준비에도 자신의 18번째 생일날 부모의 품으로 돌아 온 단원고 고 황지현 양의 이야기가 나오자 엄마들은 고개를 떨궜다. 이들은 "아직도 가족들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실종자들이 더 추워지기 전에 하루빨리 사랑하는 이들의 품에 안기기를 소망한다"는 간절한 마음을 전했다.  결코 '특별'하지 않은 대한민국의 '보통' 주부, '보통' 엄마들이었다. 이혜영 기자 itsme@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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