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장일때 부장처럼 일했더니..
[아시아경제 지연진 기자]"처음 사장이 됐을 때 어떤 리더가 될까 고민을 했어요. 저는 싱글이고 여성이고, 나이도 어리다는 핸디캡을 모두 갖추고 있잖아요. 직원들이 저를 무시하면 어쩌나 걱정돼 강압적인 캐릭터를 보여줄까 고민도 많았죠. 하지만 무엇인가 억지로 하면 부작용이 생긴다는 것을 느꼈어요. 제가 가진 장점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인 것 같아요"국내 제약업계 최연소 여성 최고경영자(CEO)인 김은영(40) 한국BMS제약 대표가 제시한 남성 부하직원 다루는 노하우다. 김 대표는 지난달 한국BMS제약의 신임 CEO로 취임했다. 남성중심의 제약업계에서 최연소 수장 자리까지 오르는데 장애물도 많았다. 특히 남성 직원들과의 관계는 '언제나 힘든 주제'였다. 업무의 결과를 중요시하는 남성은 과정에 대한 공유를 생략하는 경우가 많다. 여성 상사가 과정에 대해 궁금해 하는 것을 '간섭'으로 느끼기도 한다. "걱정 말라", "제가 책임지겠다" 등 큰소리만 믿고 낭패를 본 경우도 많다. 김 대표는 "'저도 잘 모르지만 이런 점을 도와줄 수 있겠느냐'는 식으로 과정에 대한 공유를 요청한다"면서 "제저 먼저 약한 모습을 보여줄 때 상대방도 마음을 자연스럽게 오픈하면서 업무를 공유할 수 있었다"고 조언했다. ◆약사에서 국내 女영업 '1세대' = 김 대표는 약사 출신 제약맨이다. 의료인 집안에서 태어나 자연스레 약대를 진학했다. 졸업 후에는 대학병원에서 2년간 약사로 재직했다. 안정된 생활이었다. 하지만 돌연 제약사 영업직에 지원서를 냈다. "제가 근무하던 병원에 다국적 제약사 영업직원이 찾아와 약사를 대상으로 설명회를 하는 것을 보고 감명을 받았어요. 약 뿐만 아니라 질병에 대해 저보다 많이 알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많이 부끄러웠습니다" 약에 대한 전문가가 되길 원했던 김 대표는 그 길로 다국적 제약사의 문을 두드렸다. 약사 출신의 여성 영업직이라는 '희소성'은 장단이 있었다. 우선 직장을 옮기는데는 장점으로 작용했다. 당시 다국적 제약사가 여성 영업직원들을 막 뽑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제가 여성 영업사원 1세대"라며 "실제 영업직으로 입사한 후 다이나믹한 세계를 만났다"고 털어놨다. 제약사 영업직에서 여성은 단점 요인이다. 의사와 약사들을 대상으로 약을 판매하는 업무인 탓에 제약사 영업사원은 대부분 '을(乙)'의 위치다. 게다가 의사와 약사 대다수가 남성인 탓에 여성 영업은 흔지 않았다. 하지만 김 대표는 '전문성'으로 승부를 봤다. 한달간 약품 한가지만 교육을 받기도 했다. 김 대표는 "의사들과 약에 대해 아무리 많은 논쟁을 벌여도 절대 지지 않았다"면서 "나중에 의사들이 '약에 대해 궁금하면 김은영한테 전화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전문성을 갖췄다"고 말했다. ◆과장일 때 부장처럼 일해라 = 여성 직장인은 늘어나는 추세지만 여전히 여성 임원은 손에 꼽히는 사회에서 김 대표가 초고속 승진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과장일 때는 부장처럼 일하고 부장일 때는 임원처럼 일해야 합니다. 과장일 때 과장 역할만 하면 그 이상의 자리는 주어지 않습니다. 자기 몫 이상으로 일하는 자세가 있을 때 기회는 옵니다" 자신의 업무 뿐 아니라 산업 전반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이같은 업무를 맡기위한 경력을 차곡차곡 쌓는것도 중요하다. 김 대표의 경우 CEO에 필요한 경험을 두루 거쳤다. 제약사 직원의 절반인 영업직은 물론 마케팅과 전략, 해외 본사 업무까지 의약품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와 제약산업 전반에 걸친 업무를 맡았다. 그는 "젊은 때 업무가 과중한 것은 자신이 어떻게 소화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다르다"면서 "힘들다고 대충 일을 하는 것과 업무를 완전히 소화해 내것으로 만드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김 대표는 여성과 남성이 직장생활에서 야망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설명했다. 승진에 대한 열망을 비슷하지만 임신과 육아 등의 상황에서 유교적인 문화 등으로 여성이 야망을 접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는 "'여성 친화적 기업'이라는 표현은 좋아하지는 않지만 여성이 계속 일하고 싶을 때 기업이 이를 지원해주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여러가지 상황 때문에 여성이 조금 더 포기하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에 기업이 여성친화적인 정책을 갖추고 있는 것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대표가 취임한 이후 한국BMS에선 '워먼인세일즈(Women In Sales)라는 사내 네트워크를 만들었다. 김 대표가 직접 여성 영업사원들의 고충을 듣고 경력에 대한 노하우를 전수하는 자리다. 그는 제약업계 여성 후배들을 위한 멘토링에도 적극적이다. 노바티스 싱가포르지사장으로 재직할 땐 아시아 제약업계 여성을 위한 멘토링 프로그램에도 참여하는 등 제약업계 여성을 위한 멘토를 자처하고 있다. 김 대표는 "제가 여성 영업사원 1세대로서 역할 모델이 필요할 때 도움이 되고싶다"면서 "제약업계에서 일찍 들어와 성장하면서 '미리 알았으면 좋았을 것들'을 공유하는 것에 관심이 많다"고 강조했다. ◆즐기는者 = 김 대표의 멘토는 어머니다. 전업주부였던 모친은 봉사 등 사회활동에서 열심이었다. 그는 '아는 자는 좋아하는 자만 못하고, 좋아하는 자는 즐기는 자만 못하다'는 <논어>의 구절을 인용했다. 그는 "제가 어머니에게 즐기는 방법을 배운 것처럼 멘티들도 자신의 일을 즐기는 방법을 터득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즐기기 위해선 실력을 갖출 때까지 '열공(열심히 공부하는)'도 필요했다. 다국적 제약사에서 영어는 의사소통을 위한 필수조건이다. 해외 근무가 잦았던 김 대표는 영어 때문에 스트레스가 많았다. 해외 근무 초반 언어소통이 안돼 자존심이 상한 순간도 많았다. 김 대표는 우선 비즈니스 영어를 익히기 위해 자신에게 오는 이메일을 모두 출력했다. 비슷한 상황에서 출력한 문장을 모방했다. 대화 내용도 녹음해 자신의 표현으로 만들었다. 그는 "영어를 유창하게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고싶은 말을 전달하는 논리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면서 "컨텐츠에 대해 이해하고 내가 전달하고 싶은 것을 요약하는 방식으로 영어 공부의 방식을 바꿨다"고 설명했다. 직원들과 관계도 마찬가지다. 그는 정공법을 택했다. 여성도 마찬가지지만 남성의 경우 체면을 조금 더 중시하는 탓에 깍듯한 '극존칭'을 썼다. 자신이 존경받고 있다고 느끼면 업무에 대한 충성도가 올라가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리더로써 실력을 갖추는 일이라고 김 대표는 강조했다. 그는 "리더가 업무에 대해 잘 모르면 어떤 스타일이어도 호흡을 맞출수가 없다"면서 "상대방이 저의 가치를 못 느끼면 관계가 발전이 없듯 자신의 실력부터 쌓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김은영 대표는 ▲1974년 대전 출생 ▲이화여대 약학과 졸업 ▲연세대 경영대학원(MBA) 졸업 ▲한국얀센 영업직 입사 ▲2004년 한국노바티스 입사 ▲2012년 노바티스상가포르지사장 ▲2014년 한국BMS제약 영업마케팅총괄책임자(전무) ▲2014년 한국BMS제약 대표이사 지연진 기자 gyj@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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