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安倍晉三) 일본 총리는 지난해 9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담을 앞두고 외무성에 별도 지시를 내렸다. “무슨 일이 있어도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악수하고 싶으니 방법을 생각해내라”는 것이었다. 외무성은 G20 정상회의 전 대기실 앞에서 기다리는 방안을 보고했다. 아베 총리는 먼저 도착해 대기실 앞에서 기다렸다. 시 주석이 오자 다가가 “Nice to meet you, Mr. Xi Jinping!"이라며 손을 내밀었다. 시 주석은 아베 총리가 갑자기 다가서자 무척 놀란 듯 했고 말도 제대로 나누려 하지 않았다. 이 장면은 아베 총리와 시 주석의 외교 스타일과 함께 두 나라의 관계를 잘 보여준다. 아베 총리는 발 빠르고 적극적인 반면 시 주석은 진중하게 움직인다. 아베 총리는 시 주석과 정상회담을 갖기 원하지만 시 주석은 응하지 않고 있다. 아베 총리는 정상회담을 통해 일본 안팎에 동북아 질서를 주도하는 리더로 자신을 격상시키고자 한다. 반면 시 주석은 아베 정부가 센카쿠제도와 과거사 인식에서 물러나지 않는다면 정상회담을 할 이유가 없다는 방침을 견지한다. 아시아와 세계를 움직이는 두 인물의 외교 전략을 살펴본다. <편집자>
●인도ㆍ동남아ㆍ호주 손잡고 중국 포위에 주력아베 신조(安倍晉三) 일본 총리의 대외 행보는 한 세기 전 가쓰라 다로(桂太郞) 총리의 외교와 닮았다. 가쓰라 총리는 1905년 일본을 방문한 미국 하워드 태프트 육군장관과 밀약을 맺어 일본과 미국의 밀월시대를 열었다. 이를 통해 일본은 미국으로부터 한국 지배를 인정받았다. 대신 일본은 미국이 통치하는 필리핀을 넘보지 않기로 했다. 태프트 육군장관은 1907년 부인 헬렌과 함께 일본을 다시 찾는다. 헬렌 태프트는 벚꽃의 화사함에 반한다. 태프트 장관은 1909년에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한다. 그러자 일본은 대미 선린외교의 일환으로 1912년에 벚나무를 보내준다. 태평양을 건너온 일본 벚나무 약 3000그루가 워싱턴DC에 이식된다. 퍼스트 레이디 헬렌 태프트가 기념 식수를 했다. 워싱턴DC의 벚나무는 매년 봄 꽃을 피우며 100년 전 역사를 떠올리게 한다. 가쓰라 총리는 미국의 양해를 바탕으로 1910년 한일합방을 성사시켰다. 가쓰라 총리도 아베 총리와 같은 야마구치(山口)현 출신이다. 조슈(長州)번으로 불렸던 이 곳은 막부체제를 무너뜨리고 근대화를 연 메이지(明治) 유신을 주도했다. 아베 총리가 정신적인 스승으로 모시는 개화기 사상가 요시다 쇼인(吉田松陰)이 이 고장 출신으로 여기서 쇼카손주쿠(松下村塾)를 열어 제자들을 길러냈다. 가쓰라 총리도 쇼인의 영향권에서 성장했다. 아베 총리의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전 총리 또한 이 곳 출신이다. 아베 총리가 100여년 전의 가쓰라 총리처럼 미국과의 밀월 시대를 열 것인가. 아베 총리는 일단 안보 문제와 영토 분쟁에서는 미국을 같은 편으로 끌어들였다. ◆재무장에 대해 미국 동의 얻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지난 4월 일본 방문을 앞두고 요미우리(讀賣)신문과의 서면 인터뷰를 통해 아베 총리가 추진하는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지지한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미국 역대 대통령 중 처음으로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지지한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우리는 국제안보에서 더 큰 역할을 맡고자 하는 일본의 의욕을 열렬히 환영한다”고 밝히며 “집단 자위권 행사의 제약 사항을 재검토하는 것을 포함해 일본의 방위력을 강화하고 미군과의 협력을 심화하려는 아베 총리의 노력을 칭찬한다”고 답변했다. 집단적 자위권은 긴밀한 유대관계인 국가들 중 한 나라가 제3국으로부터 무력공격을 받았을 때 다른 나라가 이를 자국에 대한 무력공격으로 간주해 반격할 수 있는 권리를 뜻한다. 아베 정부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는 미국의 대중국 포위 전략과 맞아 떨어진다. 빌 클린턴 대통령 이후 18년만에 일본을 국빈방문한 오바마 대통령은 아베 총리에게 센카쿠 제도(중국명 댜오위다오)에 대해 일본을 지지하는 선물도 안겨줬다. 오바마 대통령은 센카쿠 제도가 유사시 미국의 자동적 개입을 명문화한 상호 안보협약이 적용되는 곳임을 확인했다. 일본은 이에 화답해 미국이 주도한 러시아 옥죄기에 동참해 제재 수위를 높여왔다. 최근 추가 제재로 러시아 은행들의 일본 내 증권 발행을 금지했다. 또 러시아에 대한 무기 수출을 제한했다. ◆美 아베에 수위조절 주문= 미국은 그러나 아베 정권의 과거사 부정에 대해서는 난감해 하고 있다. 아베 정권은 “위안부 강제 연행을 보여주는 정부 자료가 없다”고 주장하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사과한 1993년 고노담화를 수정하는 수순을 밟고 있다. 이 담화는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당시 관방장관이 발표했다. 아베 정권은 검증팀을 만들고 5차례 회의를 거쳐 지난 6월 고노담화 문구가 한일간 조율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주장했다.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외교의 산물이었다는 것이다. 아베 정권은 정치권의 요구를 구실 삼아 고노담화를 수정할 것으로 예상된다. 아베 총리가 고노 담화를 수정할 경우 한국과 중국이 강하게 반발하면서 대일(對日) 공동전선을 구축할 공산이 크다. 이렇게 될 경우 미국이 동북아시아를 움직이는 중심축인 한?미?일 3각협력에 균열이 생긴다. 동북아에서 중국을 견제하는 지렛대 역할을 해 줄 한국을 잃게 된다. 미국은 이런 고려에 따라 아베 정권에 자제를 주문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4월 아베 총리를 만나 안보에 대해서는 손을 들어줬지만 한국을 방문해서는 위안부 문제를 직접 거론하며 “끔찍하고 지독하고 충격적”이라고 비판했다. ◆군사안보 협력에 중점 둬= 아베 정권은 미국의 동의를 얻은 뒤 지난 5월15일 집단적 자위권 행사 용인 방침을 공식화했다. 이어 지난 7월1일 각의에서 평화헌법 해석을 변경해 이를 결정했다. 아베 총리가 뜸을 들여 7월1일을 택한 것은 이 날이 자위대 창설 60주년 기념일이었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집단적 자위권 행사 용인으로 일본은 내놓고 재무장해 군사대국이 되는 길에 들어섰다. 아베 정부는 앞서 4월 ‘방위장비 이전 3원칙’을 도입해 무기 수출을 원칙적으로 허용했다. 국방예산을 증액해 군수산업을 육성하는 한편 무기를 제조하는 업체들이 해외시장을 공략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준 것이다. 무기수출 허용과 집단적 자위권 행사 용인 이후 아베 총리는 군사ㆍ안보 협력을 강화하는 외교를 활발히 벌이고 있다. 방어전선을 펼치는 대상은 물론 중국이고 일본과 함께 중국의 세력 확장을 저지할 가장 큰 파트너는 인도다. 인도는 북부 영토 문제로 중국과 1962년 전쟁을 벌였고 중국의 인도양 진출을 경계하고 있다. 아베 총리는 중국 포위망에 인도를 끌어들이기 위해 정성을 쏟고 있다. 지난 1월 인도를 방문한 데 이어 5월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취임하자 일본 방문을 요청했다. 모디 총리와 아베 총리의 도쿄(東京) 정상회담은 9월 성사됐다. 아베 총리는 두 차례 정상회담에서 인도에 대규모 투자를 약속하며 군사안보 분야 협력을 끌어냈다. 모디 총리는 아베 총리가 추진하는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지지한다는 뜻을 밝혔고 인도 해군과 일본 해상자위대의 정례 훈련에 합의했다. ◆ ‘진주 목걸이’를 잘라라= 아베 총리의 중국 포위망은 인도에서 시작해 남아시아와 동남아시아 국가로 이어진다. 아베 총리는 6~8일 방글라데시와 스리랑카를 찾았다. 일본 총리로서 방글라데시는 14년만에, 스리랑카는 24년만에 방문했다. 오랫동안 방치했던 두 나라를 아베 총리가 방문한 것은 중국의 이른바 ‘진주 목걸이’ 전략에 맞서기 위해서다. 중국은 방글라데시 치타공 항구 운영권을 인수했고 스리랑카 무역항 건설을 지원했다. 이들 항구를 파키스탄 과다르항과 연결하면 인도를 둘러싼 목걸이 모양의 항로가 그려진다. 과다르항도 운영권이 중국에 넘어갔다. 중국은 인도를 둘러싼 이들 거점 항구를 장악해 인도양 패권을 차지하려고 한다고 외교 전문가들은 풀이한다. 동남아 국가 중 베트남과 필리핀은 남중국해 도서 영토를 놓고 중국과 다투고 있다. 일본은 이들 국가를 지지하면서 이들이 자국과 반(反) 중국 공조를 벌이도록 유도하고 잇다. 아베 총리는 지난 5월 말 싱가포르 강연에서 중국의 방공식별구역 설정과 남중국해 충돌을 겨냥해 “기정사실화를 통해 현상 변화를 가져오려는 (중국의) 움직임은 강한 비난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아베 총리는 순시선 10척을 필리핀에 제공하겠다며 베트남에도 공여할 뜻을 밝혔다. 미국은 일본의 움직임을 뒤에서 밀고 있다. 척 헤이글 미국 국방장관은 5월 말 싱가포르에서 오노데라 이쓰노리(小野寺五典) 일본 방위상과 만나 중국의 해양진출 강화와 관련해 “힘에 의한 현상 변경은 인정할 수 없다”는 데 의견을 함께 했다고 전해졌다. 미국과 함께 뒤에서 대(對)중국 전선을 뒷받침해줄 나라로 일본은 호주를 택했다. 아베 총리는 지난 7월 호주를 방문해 토니 애벗 총리와 정상회담을 가졌다. 아베 총리는 호주 의회 연설에서 “럭비에서 스크럼을 짜듯 강한 협동심을 발휘해 세계 질서를 확립하는 데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일본과 호주는 정상회담에 앞서 군사장비ㆍ기술 교환 협정과 경제동반자협정을 체결했다. 호주는 일본 잠수함 약 10척을 187억달러에 구매하는 협상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베 안달, 시 시큰둥…日ㆍ中 정상 만날까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갖기 위해 공을 들이고 있다. 아베 총리는 공개적으로 손을 내밀었다. 그는 지난 8월 초 브라질을 방문해 상파울루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11월 베이징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때 중ㆍ일 정상회담이 가능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현안과 과제가 있기 때문에 더욱 대화를 해야 한다”며 “중ㆍ일 관계를 전략적 호혜관계의 원점으로 돌려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중ㆍ일 정상회담은 아베 총리가 2012년 12월 취임한 이후 현재까지 실현되지 못했다. 아베 총리는 중국이 정상회담에 응하도록 하는 모양새를 갖추는 데 신경을 썼다. 제2차 세계대전 패전일인 8월15일, 전범의 위패를 합사한 야스쿠니(靖國) 신사를 참배하지 않았다. 지난해 12월 중국과 한국의 반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강행한 것과 대조적이었다. 앞서 7월 말에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전 일본 총리가 비밀리에 중국을 방문한 것으로 확인됐다. 일본 내 중국계 매체인 일본신문망은 후쿠다 전 총리가 베이징(北京)에서 시 주석과 회담을 가졌다고 보도했다. 요미우리(讀賣)신문은 후쿠다 전 총리가 11월 APEC 정상회의 기간에 중ㆍ일 정상회담을 개최하는 방안을 조율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아베 총리와 시 주석의 정상회담이 성사될까. 일본은 이 쪽으로 분위기를 유도한다. 중국은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다. 중국의 항일전쟁 승리기념일인 지난 3일 시 주석은 일본의 역사 인식을 비판하면서도 중ㆍ일관계 개선을 언급했다. 시 주석은 기념 좌담회에서 “중국은 중ㆍ일관계 발전에 노력하며 중국 공산당, 중국 정부, 중국 중앙군사위원회는 중ㆍ일관계의 장기적이고 안정적이며 건전한 발전을 희망한다”고 말했다. 마이니치(每日)신문 등 일본 언론은 “시 주석이 중ㆍ일관계 개선을 공개적인 장소에서 언급한 것은 지난해 12월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이후 처음”이라며 “분위기가 바뀌었다”고 평가했다. 산케이신문은 11월 APEC 정상회의에서 일중 정상회담 가능성을 내비친 것이라고 풀이했다. 일본의 해석이 기대에 기운 것일 가능성도 있다. 시 주석은 이 발언을 기념사가 아니라 좌담회에서 내놓았다. 비중이 실린 발언이 아닐 수 있다. 조양현 국립외교원 교수는 “일본이 중ㆍ일 정상회담을 계속 제안하는 반면 중국은 변한 게 없다”고 설명했다. 조 교수는 “중국은 과거사 인식과 영토 문제에서 일본이 입장을 수정하지 않는다면 정상회담을 하지 않는다는 기조를 견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베 총리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거른 반면 대리인인 하디우다 고이치(萩生田光一) 자민당 총재 특별보좌관을 통해 자민당 총재 명의로 공물료를 봉납했다. 또 후루야 게이지(古屋圭司) 국가공안위원장 겸 납치문제 담당상을 비롯한 각료들은 참배했다. 중국 정부는 화춘잉(華春瑩) 외교부 대변인 명의로 “역사 문제를 대하는 일본 정부의 잘못된 태도를 재차 드러낸 것”이라며 “일본이 과거 침략의 역사를 직시하고 깊이 반성하고 군국주의와의 경계를 철저하고 분명하게 그을 때만 비로소 중ㆍ일 관계는 건강하고 안정된 발전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취임 후 2년여간 49개국 방문-릴레이 외교 아베 총리 사상 최다 외유 기록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릴레이 외교’로 일본 역대 수상 중 최다 기록을 세웠다. 아베 총리는 9월 초 방글라데시와 스리랑카를 순방했다. 이로써 2012년 12월 취임 이후 1년9개월 동안 49개국을 방문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 純一 郞) 전 총리가 5년6개월 재임하면서 찾은 국가 수인 48개를 넘어섰다. 단기에 여러 나라를 방문하는 방법은 여러 나라에 연이어 들르는 것이다. 아베 총리는 또 비행기에서 잠을 자고 하루만에 공식 일정을 소화하기도 한다. 일본에서 업무를 마친 뒤 금요일 저녁에 출발해 현지에서 토요일이나 일요일에 정상회담을 가질 때도 있다. 내년에도 아베 총리의 릴레이 외교는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일본 정부는 아베 총리의 2015 회계연도 해외출장 숙박비 예산을 예년의 2배 수준인 700만엔 수준에서 조정하고 있다고 알려졌다. 확정되면 사상 최고 규모다. 아베 총리가 32개국을 방문한 지난 회계연도에는 숙박비로 3450만엔이 책정됐지만 실제로는 이 금액의 두 배에 가까운 6640억엔이 지출됐다. 이번 회계연도에는 4200만엔이 책정됐지만 오는 12월이면 지출액이 이 한도를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만큼 대우하라 OK하면 돕고 아니면 친다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외교 전략에는 명(明)나라 영락제가 세력을 확장한 것과 비슷한 측면이 있다고 평가된다. 영락제는 환관 정화(鄭和)의 선단을 여섯 차례 파견해 동남아시아, 인도, 서남아시아, 아프리카 동부해안을 개척하도록 했다. 영락제가 군사력을 갖춘 정화 선단을 보낸 목적은 정복과 지배가 아니었다. 명에 조공하지 않거나 소홀한 나라들을 조공관계에 끌어들이고 다시 조공을 바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이를 통해 영락제는 중국의 힘을 과시하면서 내부적으로 황제의 권위를 세우고자 했다. 시진핑 주석은 영락제 이후 약 600년이 지나 ‘보위(寶位)’에 올랐다. 시 주석은 영락제처럼 중국의 국제적인 위상을 높이는 데 적극적이다. 이전 지도자들은 조용히 힘을 기르며 기다리는 도광양회(韜光養晦) 외교전략에 치중한 반면 시 주석은 필요한 일에 적극 나선다는 유소작위(有所作爲)를 구사한다.진찬룽(金燦榮) 인민대 국제관계학원 부원장은 지난 6월 한 한국언론 인터뷰에서 “전략적으로 도광양회는 변하지 않고 전술상 유소작위 비중이 커지고 있다”고 시 주석의 외교기조를 설명했다. ◆ 미국에 대등한 대우 요구= 시 주석은 다른 국가와 갈등을 꺼리지 않고 정면 돌파도 불사하며 중국의 위상을 높이려 하고 있다. 지난해 6월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신형 대국관계(新型大國關係)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냈다. 신형 대국관계란 양국이 대립과 갈등을 지양하고 상호 존중하자는 것이다. 중국은 신형 대국관계를 자국에 적용하기보다 미국에 요구하고 있다. 미국이 중국을 존중하고 대립과 갈등을 지연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는 일본과 첨예하게 맞선 센카쿠 제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분쟁에서 드러났다. 중국은 미국과 일본이 정상회담에서 센카쿠 제도를 미ㆍ일 안보조약 적용 대상으로 명기한 데 대해 중국 주재 미국 대사를 불러 항의했다. 일본 대사에도 같은 뜻을 밝혔다. 중국이 영토 분쟁과 관련해 주중 대사까지 불러 항의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우크라이나 사태를 계기로 미국이 주도해 러시아를 제재하고 일본이 동조하는 가운데 시 주석은 러시아가 내민 손을 잡았다. 센카쿠 제도 분쟁에서 아베 총리를 두둔하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편을 드는 대신 반대쪽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돌아선 것이다. 중국은 경제 분야에서 10년 넘게 끌어온 러시아 천연가스 수입에 합의했다. 서방의 경제제재로 인해 몸이 단 러시아가 가격을 낮추면서 계약이 성사됐다. 중국은 천연가스 소비량의 23%에 이르는 물량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시베리아 에너지 개발에 참여하는 실익을 얻었다. 시 주석은 지난 11일 타지키스탄 두샨베에서 열린 상하이협력기구(SCO) 제14차 정상회의에서 푸틴 대통령과 만나 고속철도 협력을 논의했다. 시 주석은 “대형 여객기와 헬리콥터를 공동 제작하는 프로젝트도 새로운 진전을 맞고 있다”고 밝혔다고 신화통신이 전했다. SCO는 중국이 러시아와 함께 주도하고 중앙아시아 4개국이 참여하는 경제ㆍ지역안보 협력체다. ◆ 정화식 외교가 특징= 중국 언론은 시 주석이 ‘정화식 외교 전략’을 구사한다고 본다. 영락제는 정화를 보내 하사품을 주고 그 나라 특산물을 조공으로 받아오도록 했다. 정화가 개척한 해상 무역로를 따라 중국과 아프리카를 오가는 무역이 발달했다. 정화식 외교 전략은 ‘가오톄(高鐵) 외교’라고도 불린다. 가오톄는 고속철도를 가리킨다. 시 주석이 지난 7월 브라질을 방문해 내놓은 남미대륙 횡단철도 건설 제안이 이런 전략에 따른 것이다. 그는 “중국이 자본과 기술을 상당 부분 책임지겠다”고 약속했다. 중국이 대서양에 면한 브라질과 태평양에 연한 페루를 연결하는 철도를 깔면 그 철도는 남미 경제와 중국을 경제적으로 연결하는 무역로가 된다. 중국 언론은 미국이 장악하고 있는 파나마운하를 이용하지 않아도 되는 묘책이라며 이 구상을 반겼다. 남미대륙 횡단철도는 아직 구상 단계지만 중국이 주도한 아프리카 횡단철도는 2018년에 개통될 예정이다. 아프리카 횡단철도는 서부 앙골라와 동부 탄자니아를 연결한다. 이 철도가 개통되면 중국은 구리를 비롯한 아프리카산 원자재를 전보다 더 신속하고 저렴하게 수입할 수 있다. 중국은 아프리카 자원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 아프리카 횡단철도는 중국이 장기적으로 추진한 프로젝트다. 중국은 탄자니아에서 잠비아에 이르는 1860㎞ 길이의 타자라 철도를 1970년에 개설했다. 앙골라에서 출발해 콩고민주공화국 접경 지역까지 닿는 벵구엘라 철도를 복구하고 업그레이드하는 1344㎞ 구간 공사는 중국철도공사(CRC)가 지난달 초 완료했다. 남은 구간은 콩고민주공화국과 잠비아의 협궤 철로인데, 표준 철로로 바꾸는 공사가 2018년 마무리될 예정이다. 아프리카를 횡단하는 철도를 건설해 인도양 연안과 대서양 연안을 잇는다는 구상은 영국이 100년 전에 품었다. 이 구상을 중국이 실현하고 있는 것이다. ◆ 미얀마 공정, 순항하다 정지= 미얀마에 대한 대대적인 투자도 정화식 외교 전략의 연장선에서 이뤄졌다. 미얀마는 중국이 인도양에서 원유와 천연가스 등 원자재를 들여오는 전략적 요충지다. 중국은 미얀마를 통해야 이른바 물라카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 중국은 수마트라섬과 말레이반도 사이에 있는 믈라카 해협을 통해 원유와 천연가스의 80%를 수입한다. 그런데 이 해협은 미국 해군이 장악하고 있다. 게다가 일본이 믈라카해협을 집단적 자위권 행사 대상에 포함했다. 미국과 일본이 이 해협을 봉쇄할 경우 중국의 경제적인 생존이 위태롭게 된다. 중국은 인도양에 연한 미얀마 카육푸항에서 윈난(雲南)성에 이르는 가스관과 송유관을 건설했다. 가스 파이프라인은 지난해 7월부터 가동됐다. 송유관은 공사가 거의 완료돼 가동을 앞두고 있다. 미얀마-중국 파이프라인은 중국 원유 수입량의 8%를 공급할 수 있다. 원유 수입에서 믈라카 해협에 의존하는 정도가 72%로 낮아진다. 순조롭던 ‘미얀마 공정’이 전면 멈춰섰다. 민주화 이후 미얀마 국민들 사이에서 중국 기업이 과거 군부 정권과 결탁해 이권을 챙겼다는 반감이 거세지며 영향을 끼쳤다. 중국 국유 중국전력투자집단공사의 이라와디강 미트소네 수력발전소 건설 공사가 중단됐다. 이어 다른 중국 기업의 미얀마 북부 구리광산 사업이 무산됐다. 급기야 윈난성 쿤밍(昆明)에서 카육푸항에 이르는 철도 프로젝트가 지난 7월 말 착공 전 전 단계에서 가로막혔다. ◆ 일본 뺀 전방위 포석= 시 주석은 2012년 11월 중국 공산당 1인자인 총서기에 취임한 뒤 지난해 3월 국가주석에 올랐다. 시 국가주석은 10차례 출국해 30개국 가까이 방문했다. 취임 직후 러시아를 찾은 데 이어 9월 중앙아시아 4개국을 순방했다. 이어 10월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를 순방했고 올해 9월 한국과 몽골을 방문한 뒤 인도와 남아시아 4개국을 순방했다. 시 주석은 중국이 국경을 접한 국가 14개국과 해상 이웃국가 6개국 등 20개국 가운데 8곳을 방문했다. 이로써 ‘주변외교공작’에 대한 포석을 순조롭게 마쳤다는 내부적인 평가를 받았다. 북경청년보(北京靑年報)는 시 주석이 찾은 이웃 국가들을 지도 위에 표시하면 중앙아시아에서 동남아시아, 동북아시아, 남아시아를 아우르고 있음을 보게 된다며 ‘포석’ 스타일이 전방위적이라고 묘사했다. 전방위적인 외교관계를 형성하고 있지만 시 주석이 일본과 선린우호 관계를 맺으려 할지는 의문이다. 일본이 과거사를 부인하고 재무장에 매진하는 데다 그런 일본을 미국이 뒤에서 밀고 있어서다. ●중국 포위망, 김정은도 참여할까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견제하는 공동전선에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가 참여할 것인가. 김정은 제1비서는 시 주석의 뜻을 거슬러 왔다는 점에서 그럴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김정은 제1비서는 지난해 2월 3차 핵실험을 강행했고 이후 미사일을 발사해왔다. 또 지난해 말 북한 내 최고 친중파로 꼽히던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을 처형했다. 시 주석은 장성택 부장이 처형된 사실을 중국 뉴스를 보고서야 알게 된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시 주석은 격노하며 “사전에 정보를 넣어 줬다면 처형을 저지할 수 있었을 것 아닌가”라며 참모들을 질책했다고 알려졌다. 이 일화는 곤도 다이스케(近藤大介) 일본 주간현대 총괄 부편집장이 올해 1월 베이징(北京)에서 중국 외교부 관계자로부터 들었다며 월간중앙 8월호 기고에서 전했다. 이후 중국은 시 주석의 지시에 따라 북한에 대한 중유ㆍ식량ㆍ화학비료 등 3대 원조를 중단했다. 또 나선과 신의주 황금평의 동서 경제특구 개발을 백지화했다. 시 주석은 김정은 제1비서를 중국에 초청하지 않고 있다. 또 북한을 방문하는 대신 한국을 먼저 찾았다. 아베 총리는 대외관계의 큰 비중을 중국을 포위하는 외교에 둔다. 아베 총리가 비서에게 “외교 일정을 넣으라”고 지시하는 것은 “중국 포위망에 도움이 되는 외교 일정을 넣으라”는 의미라고 알려졌다. 아베 총리는 2012년 12월 일본과 하와이(미국), 호주, 인도가 연대해 다이아몬드 대열을 갖춰야 중국을 견제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북한이 여기에 참여하면 일본과 함께 다이아몬드의 꼭지점을 형성하게 된다. 아베와 김정은 제1비서의 지시에 따라 북한과 일본은 양국 관계의 걸림돌인 납북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나고 있다. 양국은 지난 5월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외교 국장급 회의를 갖고 일본인 납북자 재조사와 대북 제재 해제에 합의했다. 일본과 북한이 접근하는 데 대해 중국은 양국의 관계 개선은 이 지역 평화와 안정에 유리하다는 원론적인 논평만 내놓았다. 지난 5월 말 중국 외교부는 정례 브리핑에서 “우리는 (스톡홀름 합의) 관련 보도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며 이렇게 답했다. 중국의 속내는 복잡하다. 한반도는 중국에 있어서 미국과 일본의 동맹에 대응하는 지정학적인 중요성을 갖는다. 시 주석이 한국을 방문하고 그에 앞서 지난해 6월 박근혜 대통령을 국빈으로 초청한 데에는 이런 고려가 작용했다. 이런 가운데 전통적인 혈맹인 북한이 일본과 손을 잡을 경우 낭패가 아닐 수 없다. 중국 내부에서는 북한을 압박하는 기조를 유지할지, 아니면 체면을 버리고 대북 유화정책을 펼지 논란이 진행 중이다. 다만 일본과 북한의 관계 개선이 급물살을 탈 공산은 크지 않아 보인다. 일본은 대북관계를 주변국의 공동 현안인 북핵ㆍ미사일과 함께 포괄적으로 해결할 방침이라고 밝히고 있다. 일본은 북한과의 협상이 핵문제와 미사일 문제를 해결하는 계기나 단서가 될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짧게, 핵심 찍고가는 방문-시진핑 외교 '점혈(點穴)' 스타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외교 스타일 중 한 측면은 ‘점혈(點穴)식’이라고 불린다. 점혈은 침을 놓는 혈(穴)의 자리에 점을 찍는 일을 뜻한다. 따라서 점혈식 외교란 혁심을 찍어 방문하는 활동을 가리킨다. 시 주석의 8월 초 한국 방문과 지난 하순 몽골 방문이 그런 방식이었다고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가 분석했다. 인민일보는 둘 다 한 국가를 단독으로 방문한 사례고 1박2일로 매우 짧았다며 점혈식 외교는 기동성이 뛰어나고 효율이 좋다고 덧붙였다. 취싱(曲星) 중국국제문제연구소 소장은 “한 국가를 단독 방문하면 양측의 주요 문제를 집중적으로 토론할 수 있고, 성과도 종종 아주 실속이 있다”고 말했다. 가오페이(高飛) 외교학원 중국외교이론연구센터 주임은 “혈은 전체 판도에 영향을 주게 된다”며 “시 주석이 한국을 점혈함으로써 동북아시아 안보 상황과 관련해 북한과 일본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가오 주임은 시 주석이 지난 2월 소치 동계올림픽에 참석한 것도 점혈식 외교의 사례라고 풀이했다. 그는 “시 주석은 서방 국가들이 동계올림픽을 보이콧하는 상황에서 올림픽에 참석해 러시아의 마음을 ‘점혈’했다”고 표현했다.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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