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인천아시안게임 여자 평균대 종목에서 우승한 북한의 김은향(왼쪽)과 통역을 담당한 주현상 씨
[인천=아시아경제 김흥순 기자] "공화국 기가 하늘에 올라가 크나큰 영광이다. 원수님께 더 큰 영광과 기쁨을 드리고 싶다."여자 기계체조 평균대 경기를 마친 25일. 남동체육관 기자회견장이 일순 고요해졌다. 우승의 감격을 전하는 격앙된 목소리가 분주하던 기자들의 손길을 멈춰세웠다. 북한에 금메달을 안긴 김은향(21)의 인터뷰 순서였다. 앳된 얼굴과 상기된 표정으로 소감을 말하는 그의 목소리는 질문이 거듭 될수록 톤이 높아졌다. "훈련에서의 피와 땀은 금메달의 무게와 같다. 원수님께서 '체육에서 금메달을 따는 것은 전쟁에서 이기는 것과 같다'고 하신다. 체육으로 인민들에게 기쁨을 주고 싶다."생소한 단어와 감정 표현에 영어 통역을 맡은 주현상(28)씨도 난감해 했다. 주 씨는 잠시 숨을 고른 뒤 영어 단어를 차분하게 골라 인터뷰 내용을 외신기자들에게 전달했다. 북한의 국명은 'DPRK(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로 줄여 설명하는 등 매우 신중했다. 옆에 선 북한 코치는 질문 내용과 답변을 꼼꼼하게 기록하며 여러 번 확인했다. 기자회견이 끝난 뒤에는 주 씨에게 다가가 국가 명을 'North Korea(북한)'라고 하지 않았는지 물었다.북한이 기자회견장에 등장하는 일은 아주 드물다. 기계체조 여자단체전 은메달과 이단평행봉 동메달을 딴 강영미(23)가 회견에 응했으나 답변은 틀에 박혔다. 남자 역도에서 세계 신기록을 세운 엄윤철(23)과 김은국(26)도 다르지 않았다. 평균대 종목에서 금메달을 딴 홍은정(25)은 도핑검사를 이유로 의무사항인 수상자 기자회견에 불참했다. 기자회견장에 나와도 북한 관계자들의 민감한 태도 때문에 분위기가 부드럽지 않다. 그들은 정식 국가 명칭을 써 달라거나 원수를 칭하는 '마샬(marshal)'이라는 표현을 써 달라고 요구한다. 주 씨는 "항의도 심하고 반응이 워낙 예민해 사전에 주의사항을 꼼꼼하게 점검한다. 답변을 들어보면 (북한 선수들이)인터뷰할 때는 정해진 답이 있는 것 같다. 질문과 다른 내용을 말했지만 곤란할 것 같아 추가로 물어보지 않기도 한다"고 했다. 그는 "강영미 선수를 포함해 북한 선수들을 세 번째 대하는데 조금은 요령이 생긴다. 북한이 메달을 따고 좋은 성적을 내면서 인터뷰에 응하는 자세가 조금은 부드러워진 것 같다"며 웃었다.김흥순 기자 sport@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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